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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우리 시대 아파트와 그 속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욕망,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두산아트센터

우리 사회에서 결혼하면 누구나 내 집을 꿈꾼다. 내 집을 가지고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외겠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내 집은 대부분 아파트를 의미한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금상첨화이고 안되면 마음속에 점 찍어둔 그 아파트여도 좋다. 십 년에서 이십 년 가까이 고생고생해 내 집에 입성하게 되면 기분은 천하를 얻은 듯하다. 이제 어엿한 아파트 입주민이 된다. 집값의 절반이 대출이지만 집값이 조금씩 오르는 재미에 퇴직까지 갚을 이자 걱정은 잠시 넣어 둔다. 남은 것은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하며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 집만 마련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지만 막상 내 집을 마련하고 나서도 우리의 삶은 그닥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쉴 새없이 하루를 살아간다. 좀 더 넓은 아파트와 좀 더 큰 차를 사는 것으로 목표가 업그레이드될 뿐이다. 우리의 삶은 이상하게도 늘 미완성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어린 시절 홀로 서울에 올라 온 준식은 힘들게 고생하며 교사가 된다. 오늘은 아홉번의 청약실패 끝에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이다. 아내 미숙은 열심히 새 아파트를 쓸고 닦는다. 이제 언제 오를지 모를 세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철새처럼 싸던 이삿짐도 안녕이다. 그때 십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이복동생 민우가 나타난다. 갈 곳이 없는 민우는 준식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준식의 아내 미숙은 점차 민우와 가까워진다. 한편 준식은 윗사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는 것이 녹록하지 않지만 준식의 삶은 그런대로 완벽해 보인다. 그런데 아내 미숙이 이상하다. 생전 하지 않던 화장을 하며 민우와 준식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더없이 완벽해 보이는 삶이 완벽해야 할 그 시점에 조금씩 균열을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이 사는 곳은 녹천이다. 노루가 살던 개천이란 뜻이지만 현재 그곳은 공장폐수가 흘러 악취가 풍기는 버려진 개천이다. 아마 아주 오래전에는 노루가 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버려진 개천이 되었고 폐수와 뒤엉켜진 똥들로 가득하다. 그 위로 높은 아파트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준식의 집이 바로 그곳이다.

무대는 아파트와 녹천이 한 곳에 존재한다. 실평수 16평 정도의 23평 아파트는 딱 서민아파트 평수이다. 그 23평 아파트를 위해 준식과 아내 미숙은 현재의 행복을 돌볼 틈도 없이 살아왔을 것이다. 꿈의 내 집은 곧 폐수와 똥이 가득한 녹천바닥이 되기도 한다. 그 같은 무대 설정은 우리가 사는 화려한 도시도 알고 보면 녹천같은 도시의 찌꺼기 위에 세워진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아내 미숙은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짐을 싼다. 꿈의 내 집을 마련했지만 살며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미숙의 말에 준식은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 미숙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정의와 도덕을 외치다 수배자로 도망 다니는 민우를 보며 준식의 삶을 남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숙도 정작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준식도 그렇다. 분명 무언가를 놓지고 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숙과 준식은 결국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연극의 독특한 설정은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배우가 두세 가지 역할을 하다 보면 자기 역이 끝나면 무대에서 사라지고 다시 다른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 연극은 무대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습실의 풍경처럼 무대 위에서 다른 인물이 되어 등장하고 다시 앉아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이창동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현실감 있는 언어로 사랑받는 윤성호 연출이 각색을 맡았고 신유청 연출이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작품마다 독특한 구성을 만들어내는 신유청 연출의 개성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공연날짜:2019년 5월 14일~6월 8일
공연장소: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시간:100분
관람연령:14세 이상
원작:이창동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제작진:각색 윤성호/연출 신유청
출연진:송희정, 박희은, 김신록, 이지혜, 조형래, 우범진, 하준호, 김우진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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