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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 세대의 노래, 한 시대의 노래
브로콜리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studio broccoli

브로콜리너마저가 첫 데모 싱글을 발표하며 데뷔한지 13년. ‘앵콜요청금지’로 당대의 청춘을 사로잡은 지 12년이 지났다. 1집 ‘보편적인 노래’에 이어 2집 ‘졸업’을 내놓은 것도 어느새 9년 전이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브로콜리너마저도 나이 들었고, 브로콜리너마저를 듣던 청춘도 나이 들었다. 세월은 빛나던 청춘조차 청춘이라는 말 앞에서 멈칫하게 만든다. 어떤 뮤지션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이미 졸업해버린 브로콜리너마저는 이제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라고 조언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돌아온 ‘브로콜리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는 그동안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통 젊음들이 경험하는 사회와 관계의 피곤과 불편, 그로 인한 자책과 상처를 섬세하게 대변함으로써 음악의 차이를 만들었다. 현실의 크고 작은 부당함을 모른 척하지 않고 그래도 자기의 목소리를 내보려는 마음.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눈 맞추려는 마음은 2010년대를 살아가는 젊음이 9와숫자들, 로로스 등의 노래와 함께 브로콜리너마저에 귀 기울이게 했다.

그리고 9년만에 내놓은 정규 3집 ‘속물들’은 조금 더 직설적이다. 졸업한 이들이 사회로 진입하고 기성의 권력과 마주하면서 부딪치고 발견한 사회의 실체, 그리고 함께 부대끼며 발견한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담은 듯한 노래들은 여전히 정직하고 냉정하다.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라거나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이라는 첫 곡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의 노랫말은 우리가 알고 있던 브로콜리너마저와 다르지 않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에는 항상 자만이 없고, 허세가 없었지만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라는 노랫말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체념이 함께 배어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넘어설 수 없는 인식의 차이 앞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는 마음에는 묵은 고단함과 단념이 묻어난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새 음반에는 이처럼 애쓰기 어렵고, 나아지기도 어려운 현실 앞에서 길들여지는 모습이 들어있다. 타이틀곡 ‘속물들’의 노랫말 속 “우리는 속물들/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이라는 노랫말 뿐만 아니다. “꽤 비싼 건물도 요즘은 빈 자리가 많다고/하지만 그런 거라도 가지고 싶어”라는 노랫말은 홀로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대의 안간힘 같은 욕망을 가감 없이 기록한다. 거대한 사회의 벽 앞에서 무기력한 개인은 살아남기 위한 생각 이상을 꿈꾸기 어렵고, 변화의 가능성을 신뢰하기도 힘들다. 브로콜리너마저가 모든 세대, 모든 젊음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해도,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이 이 노래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은 노래가 위로나 희망이 되는 역할과 다른 기능이 있음을, 브로콜리너마저가 다시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들에서도 브로콜리너마저는 보편적인 삶의 매듭과 바람을 포착하고 기록함으로써 이번 음반 역시 오늘 많은 이들의 초상으로 확장한다.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라는 노랫말이나,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일/나만 삼키면 없어지는 일/나를 삼키고 없어지는 일/나만 괜찮지 않은 일”이라는 쓸쓸한 노랫말에 공감하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브로콜리너마저는 현실의 냉정한 기록으로만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어/어떤 인간들을 만나도/우아함을 잃지 않는 건/그저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노랫말과 “너는 왜 이렇게 못돼 처먹었니 하고/말하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세요/인생 혼자서 사는 거 아니라고 하면서/주변에 민폐 끼치지 맙시다”라는 노랫말은 선의를 선의로 지킴으로써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았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때로 싸워야 한다면 기꺼이 싸움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타협하거나 묻어가는 일이 성장과 성숙으로 곡해되었던 세상에서 브로콜리너마저는 “좁아지는 길/손에는 몇 장 남지 않은 카드/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점점 줄어가는 의자/텅 빈 운동장”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기성세대, 다른 어른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는 다짐의 노래가 더욱 뭉클해지고,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을 자요/우리에겐 세상이 꿈이니까”라는 노랫말에 담은 연민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브로콜리너마저 3집 ‘속물들’
브로콜리너마저 3집 ‘속물들’ⓒstudio broccoli

노래 자체의 맛을 살리는데 더 집중한 앨범 ‘속물들’

브로콜리너마저는 멋들어진 연주나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노래 자체의 맛을 살리는데 더 집중하면서도 노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그 차이는 노래를 부르는 보컬의 변화로 만들기도 하고, 노래의 비트 차이로 만들기도 한다. 또한 곡을 주도하는 악기를 바꾸거나, 연주의 강약을 조율하는 방식, 그리고 포크 록과 팝 사이를 오가면서 변화를 만드는 방식 모두 음반을 더 흥미롭게 들을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서른’이나 ‘행복’. ‘아름다운 사람’을 들으면 브로콜리너마저의 매력이 윤덕원이 써내는 노래 자체의 힘에서 출발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정직한 보컬, 핍진한 노랫말의 서사, 자연스럽고 울림 큰 멜로디를 효과적으로 버무린 노래는 브로콜리너마저가 자신의 노래를 듣는 세대를 이끌고 그래도 다른 세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 세대를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견디고 결국 그들을 퇴학시킴으로써 스스로 졸업한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어떤 노래는 이렇게 한 세대의 노래가 되고, 한 시대의 노래가 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그들과 함께 끝내 닿을 세상이 한없이 궁금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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