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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연극배우, 직장인, 그리고 어시용… 3개 자아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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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조사를 해보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른 직업과 연극배우를 병행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연기를 위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서 하는, 또는 찾아야 하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어시용 씨는 아이돌 그룹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본부장직을 맡고 있다. 연극을 준비하고,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는 몇 개월 동안은 회사와 연습실,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낸다. 직장인이자 연극배우, 그리고 인간 어시용 3개 자아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시용 프로필
어시용 프로필ⓒ어시용

그가 연극 무대에 올랐던 가장 최근작은 ‘배소고지 이야기 - 기억의 연못’이다. 3월 1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랐던 작품으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양민학살을 저지른 임실군 배소마을의 이야기를 담았다.

말이 열흘 동안이지, 무대를 위한 연습은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낮엔 직장인으로, 저녁 시간에는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부터 나왔다. 그는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압축적으로 들려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에서 찾은 유일한 ‘질리지 않는 것’이 연기였다고 한다.

“초・중학생 때는 태권도 선수, 축구선수 뽑혀 다녔는데 공부 안 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에 고등학교도 진학했거든요. 가 보니까 공부로는 승부가 안 날 것 같더라고요.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주도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능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찾은 게 연기였어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 하는 것 같다는 시용 씨는 그중에서도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운동선수 하면서 ‘빨리 습득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태권도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랬으니까. 몸으로 하는 건 잘한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는 해 보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해 봤던 것, 하고 싶었던 것들 중 가장 어려운 게 연기에요.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또 질리지 않는 유일한 것이었어요.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을 보면, 나이를 먹어도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저는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 연기라고 생각해요.”

배소고지 이야기에서 연기 중인 어시용 씨
배소고지 이야기에서 연기 중인 어시용 씨ⓒ어시용

“연기가 가장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이냐?”라는 막연할 수 있는 질문에 그는 술술 답했다.

“나 혼자서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게 연기에요. 서로 약속한 부분이 초 단위로 지켜져야 작품 하나가 제대로 되거든요. 그 초 단위 분 단위가 모여서 한 장면이 되고, 한 장면이 끝나고 퇴장했을 때부터 피드백이 와요. 어떤 반응인지 느껴진다는 거죠. 더 민감하게 느끼면, 내가 템포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 때 상대편은 자신의 캐릭터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래서 연기는 질리지 않아요. 늘 나를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든요. 삶의 자세를 겸손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자만하면 티 안 내려 해도 다 드러나요. 그럼 관객에게 ‘똥 배우’로 판단 받죠.”

그래서인지 그는 연기를 시작하고서야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습일지 쓰다가 쓰게 된 일기에는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기록했다고. 그런 일기장에 쓰인 것들은 대부분 ‘패배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 답변도 결국 직업 자체에 관한 만족감이 해결해주는 듯했다.

“100명을 만족시킬 순 없지만, 그래도 그중 90명을 만족시켜주고 싶어요. 저는 배우도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하고…. 상업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도인이 아니라. 배우도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극단에 있는) 전석호 선배는 ‘맨날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다가 단 2시간이 행복하니 그 시간에 모든 걸 쏟아내라’라며 직업적 만족을 찾으라고 하셨었는데, 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이 연예인 매니지먼트와는 직접 연관이 될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아티스트와 회사 입장은 꽤 달라요. 서로의 위치에 서서 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서로 알게 되거든요. 하지만 일을 하니까, 공유가 안 되니까 절충안 찾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그냥 아티스트들에게는 ‘잘했다’라고만 해요. 그것 말곤 특별히…. 제가 배우라서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진 않은 것 같아요.”

살면서 해본 것 중 가장 즐거웠던 게 연기라고 하더라도, 하루가 30시간인 건 아니다. 짧은 하루를 쪼개 직장과 연기 생활을 이어간다는 건 어렵다. 그는 이 질문엔 ‘재화 없는 카타르시스는 싫었다’라는 아주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보통 (연극배우) 형님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하고 회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하지만 배수진을 치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서브 잡인거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결국 연기로 돌아와요. 연극 무대 위에서 받는 희열과 카타르시스 때문이죠. 하지만 연극은 재화는 별로 없거든요.”

여행 중인 배우 어시용 씨
여행 중인 배우 어시용 씨ⓒ어시용

그도 그런 고민에 빠졌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 결론이 바로 ‘재화 없는 카타르시스는 의미 없다’였다고.

“내가 돈 없이 연극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몇 년이나 버틸까? 1년은 버틸까? 그 고민을 순례길 걷는 내내 했어요. 그래도 특별히 느낀 게 없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확 느꼈죠. 너무 더워서 커피 한 잔 사러 나갔다가 커피숍 앞에서 멈칫했어요. ‘대책 없이 여행 다녀와서 나 돈 없는데….’ 너무 크게 느껴지는 거에요. 집에 와 남아 있던 스틱커피 타 마시면서 생각했죠. 배우로서 톱이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연기하는 사람으로 살자고.”

그렇게 직장인으로, 연극인으로 사는 그는 보통의 삶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얼굴 바꾸기’라는 그만의 방법(?)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제가 있는 곳에서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건데요, 아침에 일어나서야 ‘아 출근하기 싫다’ 이런 건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죠. 옷 입고 출근하면서는 웃는 게 먼저니까 가는 내내 ‘개구리 뒷다리’ 외치고 가죠. 퇴근 후 연습실 가는 1시간 동안은 ‘배소고지 이야기’의 면서기가 되는 거예요. 그런 준비 없이 가면 합을 맞추는 상대방도 당황하거든요. 상대방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해 여러 장치를 찾아요. 면서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찾고 노래를 찾고…. 그 1시간이 정말 치열해요. 그렇게 얼굴을 바꾸는 거죠.”

연습 중인 어시용 씨
연습 중인 어시용 씨ⓒ어시용

그에게 ‘얼굴 바꾸기’라는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유명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끝마치고 나면 “아직 배역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배우가 되어 보지 못한 입장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었다.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물었다. 아주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어이없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캐릭터 때문에 우울증이 온다? 연기할 때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끝나고도 우울증이면 그건 일이 없으니까 걸리는 거예요. 바쁘다 안 바쁘면 우울하죠. 하지만 다 끝나면 자기 인생을 살아야죠. 우리가 하는 건 빙의가 아니라 연기거든요.”

“물론 빙의에 가까운 연기도 있어요. 영화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그 사람은 10년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러브콜했고, 그때야 승낙했어요. 링컨 한 번 하려고 관련된 모든 기록을 찾아봤대요. 이쯤 되면 빙의 맞죠. 그런데, 어떤 배우가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정말 톱 위치에 오른 사람이나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유명한 배우, 힘있는 배우 아니면 기회 될 때 바로바로 다음 배역을 맡아야 해요. 이전 캐릭터에 관련한 잔상이나 우울을 맛볼 시간이나 있는지 전 이해가 안 되네요. 연극무대 내려오면 알바하러 가는 게 일상인데. 그냥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극단 창작산실 워크숍 현장
극단 창작산실 워크숍 현장ⓒ어시용

그가 속한 극단은 단체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그때 겪은 일들로 연극을 창작한다고 한다. 꽤 자주 있을법한 비행기 서류 작성 때 그는 직업란에 뭐라고 쓸지 궁금해졌다.

“저는 직장인, 연극배우라고 써요. 재화 없는 카타르시스는 제가 견딜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하지만 정신적 카타르시스는 대단하거든요. 상대 배우와 둘이 서서 내뱉는 대사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게 바로 카타르시스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할 때 진짜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그게 너무 즐거워요.”

이동현 기자

가요/방송 분야를 담당하는 연예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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