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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홀로 견디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
우효의 두번째 음반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
우효의 두번째 음반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문화인

음악을 플레이 한다.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음악의 이야기를 노랫말만 짊어지지는 않는다. 음악의 리듬과 비트가 짊어지고 멜로디가 짊어진다. 아니, 리듬과 비트가 이야기이고, 멜로디가 이야기이다. 톤과 사운드도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일부이며 전부이다. 무엇 하나도 외따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짊어진다.

그러므로 뮤지션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면 리듬과 비트, 멜로디, 톤, 사운드, 노랫말 중 하나에만 귀를 기울여도 된다. 그 중 하나에서만이라도 실마리를 찾으면 된다. 그 실마리를 잡아당기면 음악은 알았다고 듣는 이를 끌어당긴다. 듣는 이는 그 때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가면 된다.

신스팝 뮤지션 우효가 오랜만에 내놓은 정규음반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도 그렇게 들으면 된다. 음반의 제목부터 명쾌하다. 도시는 성나있고, 음반의 주인공은 탈주한다. 그 순간 음악 속 주체의 마음이 편안할 리 없다. 물론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패배감을 느끼거나 지쳐버렸을 가능성도 높다. 예술은 성공의 기록보다 패배의 기록인 경우가 더 많다. 예술은 상쾌한 해피엔딩을 그리는 대신 구질구질한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실제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다. 삶은 설명할 수 없고, 분석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은 그 모호함과 막연함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의지이며, 삶을 품으려는 갈망이다.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가듯 듣는 앨범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

12곡의 노래를 담은 이번 음반에서 우효의 목소리는 예전에도 그러했듯 활기찬 편은 아니다. 그보다 지쳐 있거나 쓸쓸해하는 쪽에 가깝다. 첫 곡 ‘Naive’는 경쾌한 비트가 곡을 주도하지만 비트에 실은 멜로디는 쓸쓸하다. 노랫말 역시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던진다. 삶의 비정한 무의미를 깨달아버린 현실은 자주 맥 빠지게 한다. 하지만 우효의 노래 속 화자는 주저앉지 않는다. 자신 안에 ‘숨어 있던 감출 수 없는 테니스 스타’를 왜 모른 척 하고, 잊으려 했느냐고 묻는다. 다시 일어날 때 너는 사랑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흔들리는 맘까지도 내게 맡겨’라고 노래할 때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 아닌 다른 이만을 응원하지 않는다. 바로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며 이 게임에서 이길 거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세 번째 곡 ‘Pizza’에서 ‘모두가 예쁘게 보이려 애쓰는 인터넷에서 남들에게 인상을 줄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남의 어리석은 관심에 부응하려고 노력할 시간도 없’다고 잘라 말하는 목소리는 건조하다. 그 건조함은 단호함보다 냉정함의 표현처럼 들린다. 우효는 곡에서 복잡하거나 화려한 사운드를 구현하지 않는다. 간명한 리듬과 선명한 멜로디의 신디사이저 사운드 뼈대 위에 노래하는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편안하거나 따뜻하지는 않다. 섬세한 내면을 지닌 이의 갈등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는 삶 자체의 부대낌을 증언한다. 어떤 식으로도 편안할 수만은 없는 삶의 본질적 어려움을 아는 목소리, 그러나 버티려 애쓰는 목소리는 자주 신산하게 들린다. 거기에 건조하게 말린 듯한 신스 팝의 사운드는 적절하게 조응한다. 대체로 간결한 연주는 고단한 내면을 반영하듯 아릿하다.

이 아릿함을 완성하는 힘은 우효가 써낸 멜로디이다. 우효는 거의 모든 곡에서 노랫말로 만든 상황을 살아있는 이야기로 완성하는 멜로디를 얹어 내놓는다. ‘토끼탈’에서 ‘행운 행운이란 없어/내 인생에 행운 같은 건 없어요/너무 큰 기대를 했나요 또다시/내 앞엔 토끼탈이 있어요/나한테 주어진 삶이/오늘도 이 탈을 쓰고/웃어요’라고 막막하게 노래할 때 멜로디는 완벽하다. 말과 다른 음악의 언어를 완성하는 멜로디의 힘은 음반 곳곳에서 출몰한다. ‘A Good Day’, ‘Brave’, ‘카메라’, ‘Sad Lounge’, ‘라면’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우효는 직관적으로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좋은 멜로디를 써낸다. 음반의 타이틀 곡은 ‘테니스’와 ‘토끼탈’이지만, ‘A Good Day’이거나 다른 곡이라도 해도 좋을만큼 이 음반에는 좋은 곡들이 많다. 특히 도시의 삶을 핍진하게 담은 ‘A Good Day’는 우울한 노랫말과 현악 연주로 표현한 슬픔을 완벽하게 결합시킨 아름다운 곡이다. 인생은 오직 당신에 대한 일일 때 오래 지속된다거나, 우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을 숨쉬는 것이라는 진술에 아트록의 질감이 배어 있는 연주가 흘러 덮일 때 음악 밖으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우효
우효ⓒ문화인

마음의 여러 목소리를 신스팝의 다양한 사운드로 보여준 우효

우효가 ‘토끼탈’에서 쓴 비관적인 정서는 ‘Other Side of Town’에서도 이어진다.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지만 너의 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날들, 계속 울라는 이야기는 도무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효의 노래 속 주인공은 도망치지 않는 삶, 사랑의 진정한 면과 용감함, 마음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열망의 간절함을 노랫말로 표현하는 가사의 표현력도 빼어나지만, 우효는 이 들끓는 마음의 여러 목소리를 신스팝 안팎의 다양한 사운드로 보여준다. 여러 곡에서 효과적인 연주의 결합과 ‘Brave’나 ‘수영’, ‘Sad Lounge’ 등에서 구현한 사운드는 우효가 신스 팝에만 머무르지 않는 뮤지션임을 인정하게 한다. 코랄 핑크를 비롯한 프로듀서의 역할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겹쳐지는 마음의 이야기와 도시의 풍경, 세련된 사운드와 감각적인 멜로디는 한 편의 예술작품이 담고 감당해야 할 내용과 형식을 온전히 담당한다. 내용과 형식이 서로 호응하고 뒷받침하며 채우는 음악은 소리의 내밀한 관계에 귀 기울여 들을 때 더욱 풍성해진다. 홀로 버티고 견디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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