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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오늘도 “짜증 난다”는 말을 토해낸 나에게 필요한 처방전
없음

오후 8시, 사무실에는 A씨를 포함해 3, 4명 정도만 남아있다. 타자치는 소리만 가득했던 그때 돌연 정적이 흘렀다. A씨가 무심코 손을 뻗다가 그만 노트북에 커피 한잔을 모두 쏟아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트북 키보드는 고장났고, 순간 A씨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남아있는 업무는 어떻게 해야 하나부터 수리비만 해도 수십만원이 들 텐데, 이번 달 통장은 또다시 '텅장'이 되겠구나까지. 끝내는 매사 조심성 없는 내 성격이 원망스러워 "하, 짜증 나"라는 말이 입 밖에 튀어나왔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자책으로 이어지던 감정 탓에 일은 집중이 안 되고, 그럴수록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왜 나는 오늘도 '짜증'이 나서 일을 그르칠까.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느낀 감정이니 다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옳은 걸까.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와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감정코칭연구소의 최헌 대표다. 쉽게 말해 내 감정을 함께 들여다 봐주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일이란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 봐준다고?
감정과 거리두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감정 코칭 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감정 코칭 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내 감정인데 다른 사람이 들여다 봐주는 게 정확한가요?'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 질문에 최 대표는 의외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또 자신의 역할은 '코치'라는 이름처럼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틀어서 감정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정말 감정적인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의견인 것도 있고,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다 섞여있어요. 우리는 그것을 분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내 감정이고 화가 난 상태라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류하면, 불필요한 감정들까지 다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앞에 언급했던 A씨의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A씨가 노트북에 커피를 쏟은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은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다음 수리비에 대한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레짐작한 것이기 때문에 '짜증을 내더라도 서비스센터에 가서 정확한 수리비를 확인한 후에 내자'라고 마음을 다독인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정리하면 일에 지장이 갈 정도로 짜증 낼 만한 '거리'는 사실상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훈련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훈련은 '적기'다. 주술 관계나 맞춤법이 틀려도 되고, 욕을 실컷 써놔도 된다. 어차피 남이 볼 글이 아니니 얌전 차릴 필요는 없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면 펜을 들고 지금 내 생각을 모두 적어보는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려면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할 텐데, 마음은 사실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떠오르는 걸 글로 막 적는 것입니다. 화났으면 화났다고 적고, 짜증 나면 짜증 난다고 적고, 젠장, 이런 말도 다 적어도 되고요. 한차례 폭풍이 지난 후에 그 글을 보면, '이걸 내가 왜 미리 걱정하고 있지', '이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어'라고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처럼 최 대표는 감정도 '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내 감정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 게 최 대표의 주장이다. 불필요한 감정은 서랍 속에 넣어두고, 필요한 감정을 상황에 맞게 꺼낼 수 있도록 감정과 거리를 두는 훈련을 하다 보면,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는 제 감정은 무조건 저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니까 내가 화를 내도 어떻게 할 수 없어, 이게 나니까'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저를 분리할 수 있고, 그걸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꾼다면,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커리어우먼으로 불리며 바쁘게 살던 중
어느날 몸에 나타난 이상 신호

감정코칭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감정코칭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물론 최 대표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회사 내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았음에도 스스로에게 야박한 사람이었다.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땐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비난하는 삶이 반복됐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고, 걱정하는 데에 쓰는 시간도 많아졌다.

"원래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도 저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능력도 안 되는 애가 결국 이것밖에 못 하면서 왜 하고 싶다고 했냐'는 식이었죠. 자기비하의 끝판왕이랄까요. (웃음) 운동을 하루만 안 가더라도, 스스로에게 벌을 줬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 생각보다 꽤 많을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날들은 10여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중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을 회상하던 최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최 대표의 인생에서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자궁내막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억울함이 확 밀려 오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 자기관리도 열심히 한 사람인데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나 싶었어요. 진료를 받고 나오는데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온 몸이 찌를듯이 아프더라고요. 그때부터 이 감정들이 뭔지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요."

이후 최 대표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관련 자격증도 따면서 인간의 감정에 대해 파고들었다. 독학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훈련도 병행했다고 한다. 최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5년~10년정도 "삽질"을 한 후, 자신이 터득한 방법을 3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된 후 가장 큰 변화

감정코칭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감정코칭연구소 최헌 대표가 31일 책 '내 감정에 서툰 나에게' 등 책과 관련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감정을 다스린 후 최 대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엔 큰 걱정 없이 행복했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전엔 다른 사람들이 절 보면 항상 화를 내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걸 '화난다', '짜증 난다'는 말로만 표현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짜증 난다', '화난다'는 말 안에 있는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고, 불필요한 감정 때문에 낭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죠.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이만큼 살만해졌으니까 그만해도 돼'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제가 힘이 생기니까 다른 사람한테 나눠줄 에너지도 생겼어요."

오늘 하루도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힘든 하루를 보냈을 테다. 초조하기도 하고,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고, 결국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자책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을 너와 내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를 바꾸고 싶다면, 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게 시작이 될 수 있다. 최 대표가 감정코칭에 나선 궁극적인 이유도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감정코칭을 받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단지 일상생활을 힘 있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고,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무기력하다면,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쏟아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럼 정말 시원해진답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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