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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뉴딜-신자유주의-붕괴-‘그리고’ 2020년 대선

편집자주/미국 대선이 내년으로 다가왔다. 개별의 흥미로운 사건들을 제외하고 이번 미국 대선이 놓여있는 지형은 어떤 것일까?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Democracy at Work의 창립자인 리처드 울프는 이번 대선에 영향을 미칠 근본적 이슈로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온 노동자들의 분노와 배신감을 지적했다.

미국의 독립적 대안매체인 카운터펀치에 실린 그의 칼럼을 소개한다. 원문은 American History and the 2020 Electi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과 유사한 상황인식을 갖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제언도 나온다. 기사 끝에 첨부된 람 이매뉴얼의 글을 참조하면 된다. 이매뉴얼은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후보자들이 득표를 위해 내세우는 이슈가 무엇이건, 2020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슈들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슈는 계속 누적되어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이다.

노동자들의 수입과 재산은 197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기업들의 수익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은 충분히 우울해졌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상대적 지위가 하락한 이들이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적으로 강등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실질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소비도 정체됐고, 정부 정책부터 정치인들의 관심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지원도 위축됐다.

문화적으로는 핸드폰이나 트랜디한 술집, 화려한 운동 경기장들이 일반화됐지만 그런 삶을 누리기 위해 드는 비용을 대는 건 점점 어려워졌다.

모기지나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를 통해 이런 새로운 비용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게 됐지만, 그 결과로 만들어진 부채로 인해 노동자들은 예전과는 다른, 그리고 더 심한 재정적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다.

2차 대전 이후의 미국의 핵심적인 사회적 약속 중 하나였던 노동자의 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는 믿음도 퇴색하고 있다. 고등 교육기관에 대한 주 정부들의 지원이 감소하면서 그 비용이 학생들에게 전가됐기 때문이다. 노동자 가정의 상대적 소득과 재산이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 말이다.

학자금 부채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노동자 가정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줬다. 빚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독립하고 자기 가정을 꾸리며 자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자책감과 부모에 대한 의존, 그리고 점점 커지는 부채에 대한 불안감은 노동자 가정에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했다. 마약류 진통제 남용 위기가 발생했고 자살률과 우울증, 그리고 총기난사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배신감과 분노에는 중요한 역사적 뿌리가 있다. 미국은 분명히 변했다.

배신 당한 ‘뉴딜’

트럼프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사람들의 뇌관을 건드렸다. 이 구호가 그 뇌관이 왜 그렇게 예민한지를 오히려 알 수 없게 포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미국 역사의 특정 측면은 다가오는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대대적인 확장재정을 포함한 정부 정책으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견뎌냈다.

그 중에는 (인종이나 성별, 그리고 다른 형태의 차별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사회보장 제도와 실업 수당, 그리고 중앙 정부가 수백 만 명의 실업자를 고용한 정책 등이 그것이다. 또 첫 최저임금법과 전국노동관계법(NLRA)같은 핵심적인 법안들도 있었다.

이런 정부 정책들이 어우러져 소득과 재산에서 노동자들의 상대적 지위를 높였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미국을 위한 진정한 “뉴딜(New Deal)”, 그러니까 앞으로 국가가 나아갈 새로운 경로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전례 없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연속적인 대선 승리는 미국이 확고하게 이 길을 걸을 것임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은 공화당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종차별주의적, 종교적, 반이민자적, 혹은 민족적인 호소에 경도된 몇몇을 빼놓으면,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노동자들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영향력 아래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관심과 지원,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이 당연히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됐다.

노동자들은 또 공화당이 1930년대의 지배적인 입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설령 공화당이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장악해 모든 것이 바로잡힐 것이라 믿었다. 미국 노동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인 것 같았다.

대체적으로 봤을 때 1940년대와 50년대, 그리고 6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이런 믿음이 강화됐다. 흑인들과 다른 취약계층이 주로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독점했던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방 정부가 (공공 주택이나 고속도로 같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인프라 프로젝트로 앞장섰고, 주 정부들은 노동자 계층을 타겟으로 한 공공 고등교육제도를 만들었다.

사회적 포용의 범위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신좌파는 더 폭넓고 빠르게 기존의 소외계층을 끌어안을 것을 가장 중요한 요구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 이는 이런 상황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모든 것이 변했다.

(노조를 약화시킨 1947년의 태프트-하틀리법과 같은) 이전의 패배나 후퇴 움직임이 강화돼 미국 노동자 계층에 대한 보편적인 배신이 일어났다. 1930년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자 미국의 재계는 뉴딜을 부분적으로 피해나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게 됐다. 기업들과 그들의 동맹세력은 전면적인 공격을 펼치며 뉴딜을 완전히 뒤집으려고 했다.

레이건이 권력을 장악하자 공화당은 오른쪽으로 움직였고 민주당은 공화당의 우클릭으로 비워진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양대 정당은 훗날 신자유주의라 불리게 된 입장으로 점점 수렴됐다.

신자유주의로 수렴된 민주당과 공화당

양대 정당은 감세나 탈규제화 등으로 정부의 경제 개입 정도를 줄이고 사기업과 “자유” 시장의 역할을 높이는 데 공감했다. 이견이라고 하면 그 속도에 불과했다. 공화당은 빠른 변화를 원했고 민주당은 정치경제의 우클릭으로 발생하는 피해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미국이 좀 더 천천히 변하기를 원했다.

재계와 그 동맹세력의 전면적인 공격은 이윤에 대한 뉴딜의 제한들로부터 미국 기업들을 풀어주기 위한 재계의 세 가지 이니셔티브를 대부분 비판없이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재계의 첫 번째 이니셔티브는 두 가지 현대 기술 변화에 힘입었다. 제트 엔진과 현대적인 통신이 그것이다. 제트 엔진 덕에 기업 경영진이 세계를 쉽고도 빠르게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해졌고, 현대적 통신 덕분에 기업들이 미국 본사에서 세계 모든 곳에 있는 지부나 공장들을 실시간으로 감독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기술이 합쳐져 미국 제조업체들은 예전보다 훨씬 쉽게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게 됐다. 해외의 훨씬 낮은 임금과 일자리를 애타게 창출하고 싶어하는 각국의 정부는 해외로 생산라인을 이전한 미국 기업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그러니 경쟁업체들도 먼저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공화당은 열성적으로, 그리고 민주당은 좀 더 주저하면서 세계화를 받아들였다.

미국 재계의 두 번째 이니셔티브는 해외 이전이 수월하지 않은 (예를 들어 서비스업에 있는) 자본가들로부터 나왔다.

이들은 미국에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오면서 이익을 증대시켰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들어왔다.

미국 재계의 세 번째 이니셔티브는 노동 절약 기술을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초기에는 자본가들이 컴퓨터를 들여왔고 그 이후 로봇을, 그리고 현재는 인공 지능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자리들이 해외로 이전되거나 자동화로 인해 없어졌고 이민자들로 인해 미국 노동시장의 공급이 증가했다. 이때부터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 임금이 정체돼 버렸다.

미국의 노동자 계층은 뉴딜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1970년대 이후 임금 정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았지만 노동자 계층이 바로 배신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 계층이 두 가지 방법으로 이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실질 임금의 정체는 수백만의 여성이 유급 노동시장에 합류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에 따라 취업 경쟁률이 높아졌다.

둘째로 노동자 계층의 부채가 증가했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모기지와 자동차 대출 외에 엄청난 카드 빚과 학자금 빚을 짊어지게 됐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난 25년간 노동자 계층의 소비는 계속 증가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노동자 계층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돈벌이를 하는 식구가 둘 이상이 돼야 했고, 빚을 더 많이 져야 했지만 말이다.

임금 대신 빚이 끌어올린 경제는 결국 폭발했다

한편 임금의 정체와 증가하는 빚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는 호황을 누렸다. 주식시장의 거품으로 상위 10%의 자산이 늘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화당과 “중도” 민주당의 지지는 더 커졌다.

이들은 “신경제(new economy)”, “뉴 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표준)”, “이데올로기의 종말(즉 사회주의의 종말)” 등에 대한 자기들의 과대 선전을 실제로 믿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유토피아주의가 유행했다.

하지만 증가하는 소비자들의 부채는 결국 터져버릴 거품임이 증명됐다. 2000년도의 닷컴광풍과 2008년의 대대적인 금융 붕괴를 통해서 말이다.

미국의 노동자 계층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연달아 세 번 충격을 받았다.

우선 노동자들은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진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금은 정체됐고 부채 수준이 지속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면서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은 지쳐 버렸다. 노동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노동자 계층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2008년부터 대기업과 대형 금융기관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려고 경쟁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주로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말이다.

오랫동안 우파가 집착했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다. 아래로부터 경기를 살리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남은 건 낙수경제(trickle down economics)였다. 실제 내려가는 건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빚에 빠져 허우적거린” 주택 소유자들은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반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줘 집을 사도록 했던 금융기관들은 모두 구제됐다.)

마지막 충격은 긴축(austerity)이었다. 죽음에 직면한 자본가 계급을 살리기 위해 수 조 달러를 썼던 정부가 갑자기 “재정 적자가 너무 많아졌다”며 긴축으로 돌아선 것이다.

미국 노동자 계층 중 많은 이들이 감당하기에는 이 세 번의 충격이 너무 컸다.

이들은 공화당엔 처음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에게는 배신감을 느꼈다. 민주당은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고 실제로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민주당이 너무 약했거나 신자유주의에 너무 깊이 침습돼 있었다.

책임은 “워싱턴” 정계 전체에게 있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계층의 분노는 언론에까지 미쳤다. 언론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실체를 밝히고 그들의 배신을 비난하는 대신 양당의 립서비스를 있는 그대로 전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반란의 리더를 기다렸다

물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차악’인 민주당을 계속 지지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어느 정당 출신이건 양당의 과두 지배층을 향한 노동자 계층의 분노와 배신감을 대변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다. 선거 결과를 뒤바꾸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말이다.

샌더스보다 트럼프가 이를 훨씬 더 날카롭고 분명하게 해 냈다.

샌더스와 트럼프 모두 두 정당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자기 정당의 지배층과 선을 그었다. 이민자들과 교역 상대국, 그리고 동맹국에 대한 거침없는 적대적 행동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트럼프는 공화당이 지지해온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샌더스가 내세운 ‘그린 뉴딜’은 민주당의 고전적인 입장과의 단절보다는 그것의 진보적 버전에 가까웠다. 샌더스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부른 것이 최소한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도록 주입받아 온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이기는 했고, 또 그것이 민주당의 전통과의 중요한 선긋기를 의미했지만 말이다.

비슷한 배신감을 느낀 유럽의 노동자 계층도 자국의 주류 정당들에게 등을 돌렸고 이는 2019년 5월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선거에서 영국의 나이젤 파라지나 보리스 존슨,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등 트럼프와 비슷한 인물들이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중도우파적 주류와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유럽에서의 신좌파와 제도권의 사회주의 정당들로 대표되는 중도좌파 간의 대립은 미국과 비슷하게 그리 심하지 않다.

유럽의 신좌파는 대부분 친환경적이고 막연하게 반자본주의적이다. 한마디로 신좌파는 구좌파보다 더 진보적이지만, 진보적인 정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진보의 종류가 같은 것이다.

현재까지는 단 한 사례에서만, 그러니까 프랑스의 ‘노랑 조끼’ 운동에서만 우파에 맞서고 우파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 즉 새로운 표현방식과 집단행동 양식을 찾아낼 좌파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노동자 계층 중 가장 분노한 이들은 기성 정치와 확실하게 맞서는 세력을 선호했다.

트럼프의 악의적인 트윗, 파라지나 존슨, 혹은 살비니의 무절제한 발언은 이들의 정서와 맞아떨어졌고 이들의 표를 얻게 해줬으며 이들 속에서의 인기를 계속 키우고 있다.

좌파 쪽에서는 노랑 조끼의 사례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의 2020년 대선에서도 이들 양극단화된 노동자 계층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일단 바이든으론 안된다

위에서 요약한 역사는 2020년 미 대선에서 유념해야 할 교훈을 주고 있다.

민주당이 예전의 담론이나 상징들, (조 바이든과 같은) 인물들로 돌아간다면 2016년부터 민주당이 저지른 정치적 실수와 민주당이 겪은 실패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과거지향적이었던 밥 돌이 1996년 공화당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처럼 바이든은 민주당에게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밥 돌은 교훈을 얻었는지 2016년에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를 지지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 출신 정치인은 돌이 유일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승리 가능성이 있는 다른 후보들이 샌더스보다 더 좌파적인 입장을 명확하고 강력하게 취하지 않는 한, 민주당에게 대선 승리를 안겨줄 가장 좋은 후보는 샌더스라는 점이다.

샌더스보다 더 좌파적인 입장 중 하나는 노동자 계층의 고충을 쇠퇴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로 규정하고 체제 변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계적인 자본주의적 기업에 기반한 경제에서 노동자 협동조합들에 기반한 경제로의 전환과 같은 체제 변화 말이다.

샌더스나 샌더스보다 더 좌파적인 후보가 민주당에 남아있는 것도 위험하다. 민주당의 후보로 대선을 치르는 것은 유권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그렇게 하면 그나마 남아있는 민주당의 선거조직이나 무조건 민주당을 찍는 민주당의 골수 지지층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미국의 정치는 지금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수십 년 동안 일어날 일이 단 몇 주 만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레닌의 말을 또 한번 적용할 수 있는 시기다.

갤럽과 여타 기관들의 여론조사가 뚜렷이 보여주듯 사회주의가 재발견되고 다시 존경받고 있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동안 사회주의적인 사상이나 토론 및 정책을 진지하게 가르치거나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억압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재발견 과정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민주당 구좌파의 사상이나 구시대적인 케인즈주의 경제학이 재평가되고 있다. 새로이 활력을 찾은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이미 그런 한계들을 시험하고 뛰어넘고 있다.

“민주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초기적인 지지가 다양한 사회주의적 입장으로 성숙해지고 있으니 사회주의 운동들을 이해하고 제도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 또한 곧 등장할 것이다.

민주당이 2020년 대선을 어떻게 치르는지에 따라 민주당이 역사적 교훈을 이해했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 등장하는 사회주의적 좌파의 속도와 디테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이 있다.

새로운 사회주의 좌파의 규모와 기세, 그리고 일반 대중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의 지지율을 감안하건대, 이 움직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가 전체 미국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50년간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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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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