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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3일

3일.

3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만약 팔을 들고 벌을 서라고 한다면 3일은 너무 긴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간다면 3일은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귀국행 티켓을 발권받으러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3일은 나쁜 것을 하기엔 너무 긴 시간, 좋은 것을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떨까? 어떤 것을 배우기에 3일은 긴 시간일까, 짧은 시간일까?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복사기로 양면 복사를 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3일은 너무 길다. 인지기능이나 신체기능에 제약이 없다면 복사기라는 물건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아마 30분이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일이 있을까? 3일만 배워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이것저것 많겠지만 나는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숙련도가 필요한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생각나진 않지만 3일이면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는 일들은 아주 단순한 것들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병원엔 아주 기상천외한 걸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외과 중환자실 간호사가 하는 일을 3일이면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의 발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미친 거 아니냐’는 말이 튀어 나갈 뻔했다. 나보다 병원 경력이 2~3배는 되는 하늘 같은 선배에게 욕지기가 나올 뻔 했다.

드라마 용팔이의 한 장면.
드라마 용팔이의 한 장면.ⓒSBS 캡쳐

간호사에게 주어진 트레이닝 기간은 3일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작년 12월에 신생아중환자실로 발령을 받은 신규간호사가 아기 환자들을 보는 것이 힘들다고 호소하며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자살 충동 등 심각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던 그 간호사는 어렵게 꺼낸 부서이동 요구가 묵살되자 견디기 힘들어져 무단으로 결근을 하기도 하고 사직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사직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아온 것이 바로 나였다. 어떻게 입사한 서울대병원인데, 얼마나 오고 싶었던 병원인데 제대로 일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이렇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소아 파트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지원한 적도 없는데 소아 파트 중에서도 헬이라고 하는 신생아중환자실에 배치된 것이다. 부서이동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성인 파트에서 아무도 널 원하지 않는다, 네가 사직한다고 해서 이미 모든 절차가 진행 중이니 얼른 사직서나 쓰라는 강요뿐이었다.

그 신규간호사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아픈 아기들, 죽은 아기들을 보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상태였지만 검사 결과 몸 상태 역시 매우 나빠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건강 상태가 염려가 되어서 우선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 결과 4주간의 병가를 받게 되었고, 그 사이 병원과 싸워서 힘겹게 부서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결정된 부서가 성인 외과 중환자실이었다.

외과 중환자실도 병원 내에서 힘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지만 그 신규간호사는 소아 파트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부서이동이 돼서 너무 다행이라고 뛸 듯이 기뻐하던 그녀는 결국 사직을 하게 되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독립 후에 1개월 남짓 일한 그 신규간호사에게 병원이 제시한 트레이닝 기간은 고작 3일이었다. 3개월이 아니라 3일이었다.

한 대학의 간호학과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예비 간호사들이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이어받아 생명 존중 등의 실천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한 대학의 간호학과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예비 간호사들이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이어받아 생명 존중 등의 실천을 다짐하는 의식이다.ⓒ뉴시스

환자는 A4용지가 아니다

신생아는 단순히 성인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작은 인간이 아니다. 신생아들, 혹은 주 수를 못 채우고 1~2킬로그램, 혹은 그보다 더 작은 몇백 그램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가지는 문제점들과 치료접근 방법, 약물 투약 방법, 사용하는 의료기기 등 모든 것이 성인 환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심지어 심박동수같은 활력 징후의 정상범위까지 다르다.

성인파트에서의 임상경력이 8년이 넘는 나도 3일간 배워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는 건 절대 무리다. 당연히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그게 독립 후 1개월 된, 그 후에 4주간이나 병가로 쉬었던 신규간호사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나는 트레이닝 기간을 3일만 주겠다는 병원 측의 얘기를 듣고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당신네들이 지금 저 간호사를 죽이려 하는 거라고, 저 간호사가 자살이라도 하면 책임질 거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애써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항의하자 늘려준 기간이 6일이었다. 2배로 늘려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신규간호사들의 트레이닝 기간, 그리고 부서이동시 트레이닝 기간은 법적으로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3개월을 주든, 3주를 주든, 3일을 주든 병원의 마음이다.

수시로 응급상황이 터지고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있는 중환자실도 마찬가지다. 복사기로 양면 복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생명을 다루는 것임에도 그러하다. 복사를 하다가 잘못되면 다시 하거나 잘못 인쇄된 종이를 이면지로 재활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A4용지가 아니다.

“저희 신규간호사의 실수로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더 건강한 새 아주머니로 바꿔드릴게요.”라고 할 수 없다.

“저희 신규간호사의 실수로 아드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데려가셔서 이면지처럼 재활용이라도 하실래요?”라고 할 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신규간호사는 사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직하면서도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를 위해 여러모로 애써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런데 이렇게 사직한다고 해버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나는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불구덩이에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아 줘서, 무리하지 않고 포기해줘서, 못 할 것 같다고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너무 고마웠다. 아무튼 너는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포기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혹시라도 네가 잘못된 선택이라도 한다면 나는 네가 사직을 종용받을 때 사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운 죄로 그 마음의 짐을 평생 갖고 살아가야 했을 테니까.

그 간호사가 이 글을 읽게 될진 모르겠지만 나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실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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