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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법정에도 못 갈 가능성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CCTV 영상 캡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CCTV 영상 캡처ⓒ온라인 커뮤니티

한 여성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한 남성이 나타나 문으로 손을 뻗었다.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히자 남성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남성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현관 비밀번호를 풀려고 시도했다. 남성은 계단에 숨어있기도 하고 주변을 서성이다가 10여 분 뒤에 빠져나갔다.

지난달 28일 새벽 6시 2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조 모(30) 씨는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수십 미터가량 쫓아 주거침입을 시도했다. 조 씨의 범행이 찍힌 건물 폐쇄회로(CC)TV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자 조 씨를 ‘강간미수’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범행 다음 날 경찰은 조 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긴급체포했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7일 경찰은 구속된 조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 적용될까?

조 씨는 법정에서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로 유죄를 받을 수 있을까?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에 처하는 중범죄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형법상 강간죄보다 형이 높다.

법조계에선 경찰이 조 씨에게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조 씨가 유죄를 선고받기는커녕 법정에도 서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서혜진 변호사는 “개별 현관이 아닌 공동현관을 침입해도 주거침입죄를 인정하는 판례가 있다. 경찰은 조 씨의 주거침입죄가 완성됐다고 보고, 조 씨가 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협박한 점을 강간 착수 행위로 봤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그러나 수사기관에서 조 씨의 구체적인 협박 행위 입증에 실패한다면 해당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조 씨가 ‘문 열어라, 문 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 등 협박을 했다면 강간 착수 행위가 맞지만, 음성이 녹음되지 않은 CCTV 영상만으로는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만으로는 무리한 법리 적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라며 “강간죄 구성요건인 협박 판단에서 최협의설 판례를 적용해 좁게 해석하는 한계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에서 조 씨는 ‘새벽까지 술을 마셔서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 씨의 진의를 알 수 없어서 기소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는 “조 씨가 집에 들어가 성폭력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강도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성범죄를 의도했다는 객관적 증거 등이 나오기 전에는 강간미수로 기소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받는 A씨(30)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한 건물에 사는 여성의 집에 따라 들어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9.05.27.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받는 A씨(30)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한 건물에 사는 여성의 집에 따라 들어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9.05.27.ⓒ뉴시스

경찰이 사건 당시 미흡한 초동조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무리한 혐의를 적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누군가 벨을 누르고 있다’라는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빌라 건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주변만 둘러보다 3분 만에 돌아갔다.

피해 여성은 CCTV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른 시간이라 어렵다며 직접 확인한 뒤 다시 연락하라고 답했다. 아울러 출동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또 오면 그때 신고하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검·경이 상향해서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법원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피해자는 무슨 죄를 적용하던 가해자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자신이 보호조치 등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무죄가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강간 문화’에서 주거침입=강간 고의

이 사건 이후 일상에서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를 근절하는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스토킹법 제정 논의는 그중 하나다. 스토킹 범죄는 여성 대상 강력범죄의 전조 현상임이 많은 연구를 통해 드러났지만, 경범죄로 취급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 부과 등으로 처벌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스토킹법이 제정돼도 이 사건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보통 스토킹법에서 정의하는 스토킹 범죄는 행위의 ‘지속성·반복성’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같이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주거 등에 억지로 들어가기 등이 단 한 차례 일어났다면 스토킹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토킹의 의미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스토킹은 스스로 진화하는 범죄”라며 “상상 이상의 범죄가 계속 실현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토킹 범죄를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 형성을 침해하는 일련의 행위로 포괄 규정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스토킹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는 반박도 나온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벨기에 등은 스토킹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지속성·반복성을 포함하지 않기도 했지만 특이한 사례”라며 “지속성·반복성을 빼면 행위의 무게가 확 떨어진다. 그러면 처벌의 정도도 떨어뜨려야 한다. 전반적 스토킹 자체가 가벼워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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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여성들이 주거침입을 강간 고의로 인식한 배경에 대해 법원이 귀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혜정 부소장은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여성들의 경험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이 쫓아오거나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등 행위를 성폭력 암시로 인지한다”라며 “강간 문화에서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할 수 있는 존재’로 상정되고, 가해자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공포를 즐기며 암시만으로 이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길거리든 엘리베이터든 집이든 모든 공간이 여성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강간 문화로 가득 채워졌는데, 정작 여성들이 공포를 느낄 때는 강간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과잉 반응하냐는 식으로 되묻는다”라며 “성폭력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단절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사후 처벌이 아닌 범죄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혜진 변호사는 “경찰이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이 중요하다. 사건이 여러 번 발생하고 나서 경찰이 개입한다는 건 결국 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을 피해자 혼자서 감당하라는 말이다”라며 “경찰이 위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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