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기자수첩] ‘임금 370억’보다 ‘청년 고용 확대’를 선택한 부산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가 2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가 파업 첫날인 10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파업출정식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부산지하철노조가 2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가 파업 첫날인 10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파업출정식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11일 밤 부산지하철노조와 부산교통공사의 2019년 교섭이 타결됐다. 9일 저녁 최종 교섭이 결렬돼, 다음날 아침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지 이틀만의 일이었다. 11일 노사 잠정합의안이 마련됨에 따라, 노조는 파업을 철회하고 12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이날 노사는 ▷신규인력 540명 채용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로의 근무형태 변경 ▷임금 0.9% 인상 등에 대해 합의했다.

해당 합의안의 핵심은 ‘신규 인력 확충’이다. 노사는 “야간 근무 축소를 포함한 근무형태 개선, 52시간제 시행, 각종 법 개정에 따라 필요한 인력과 관련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청년고용 증대를 위해 정원 대비 540명을 시에 증원 요청한다”고 합의서에 명시했다. 인력 충원에 따라 근무형태 개선도 이루어지게 된다.

노조는 지난 4월 교섭 시작 때부터 ‘인력 확충’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부산지하철 노선이 연장되고 시설물이 늘어났음에도 그에 따른 인력 충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선 연장구간이 개통됐지만, 충분한 신규인력이 보충되지 않았고 기존 지하철노선 인력 180여명이 이 구간에 투입됐다. 한정된 인력이 더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아졌으며, 1인 승무, 1인 역사 운영이 이뤄지고 지하철 시설물 유지 보수 주기가 연장되는 등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될 상황에 놓였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주52시간제가 시행되고, 각종 산업안전관련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필요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부산지하철 노동자(자료사진)
부산지하철 노동자(자료사진)ⓒ민중의소리

인력 충원이 절실했기에, 사측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동자들은 ‘파격 제안’을 했다. 본인들이 향후에 받게 될 ‘임금 370억’을 포기할 테니, 공사가 이 재원을 신규 인력 채용에 사용해달라고 했다.

앞서 노조는 공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 3건을 냈다. 이 중 한 건이 2015년 7월 부산지법에서 판결났는데, 상여금과 가계보조비 등 4개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 1심 판결에 따르면, 앞으로 공사는 임금으로 매년 300억 원씩 노동자들에게 추가 지급해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2020년부터 70억 규모의 휴일 수당(노조 추산)도 주어야 한다.

노조는 인력충원을 조건으로 이 ‘통상임금 상승분’과 ‘공휴일 확대로 인한 수당’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또 통상임금과 관련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기간에 대한 추가 소송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1270명 신규인력 채용을 요구했으나, 310여명 채용 계획을 가진 공사 측과 간극이 커 대화에 진통을 겪었다. 교섭을 진행하며 노조는 742명 채용에서 550명 채용까지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 사측도 497명까지 채용 규모를 늘렸다.

이와 함께 노조는 4.3% 임금 인상안을 올해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인 1.8%(공무원 임금인상률)까지 낮췄다. 하지만 공사는 임금을 동결하고, 그 재원으로 인력확충을 하겠다고 버텼다. 노동자들에게 370억을 내놓고 임금도 동결해야 합의해주겠다고 한 셈이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걸고 파업에 나섰다. 파업 이틀 만에 다시 교섭에 나선 노사는 신규인력 540명 채용, 임금 0.9% 인상 선에서 합의를 봤다. 인력 확충이 노조 최종 제시안에 근접한 정도로 마무리 된 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률을 절반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부산지하철노조는 지역 공공기관 노조 중에 규모가 제일 크다. 우리가 임금을 동결하거나 물가상승률 이하로 협의하면, 우리보다 조직력이 약한 기관들의 노사협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0.9%로 임금인상률을 낮춘 건 조합원들의 인력 충원에 대한 요구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줄인 0.9%면 조합원 1인당 평균 연간 100만원에 못 미치는 돈인데, 그것보다는 청년 고용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밝혔다.

부산교통공사 이종국 사장(왼쪽)과 최무덕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오른쪽)이 12일 극적인 교섭을 통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는 이에 따라 파업을 중단하고, 12일부로 업무에 복귀한다.2019.07.12
부산교통공사 이종국 사장(왼쪽)과 최무덕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오른쪽)이 12일 극적인 교섭을 통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는 이에 따라 파업을 중단하고, 12일부로 업무에 복귀한다.2019.07.12ⓒ부산지하철노조

이번 부산지하철 노사 합의로 올해 부산시엔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540개 생기게 됐다. 당초 사측 계획보다 230명이나 신규 채용이 늘어났다. 2018년 부산지하철공사 신규채용인원 341명에 비해서도 200명 정도 확대됐다. 이를 통해 현장 인력이 보강되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부산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이같은 조치는 모두 노동자들의 양보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생활인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올 돈을 털어내서, 청년 고용과 시민 안전에 쓰기로 한 셈이다. 공사가 고령자 등 무임승차로 수년 간 적자를 보는 점을 고려해 양보를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기업이 예산을 투입해 청년 신규채용 규모를 230여명 늘린다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면 대서특필되고 조명을 받는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기근 속에서 엄청난 결단과 용기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지하철노조의 양보는 이에 상응하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파업 종료, 파업 타결 등에 대한 보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나은 정규직 노조의 파업이나 시위를 무조건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편향된 시선이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한 선택을 우리 사회가 의미 있게 평가하고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정규직-비정규직 차이를 넘어 연대하고,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며 사회개혁을 위해 나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이소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