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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계몽’과 먼 음악의 힘
밴드 쏜애플 음반 '계몽'
밴드 쏜애플 음반 '계몽'ⓒ해피로봇레코드

음악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싶은 음악이 있다. 소리의 뒤, 아래, 혹은 그 너머에 비밀스러운 세계가 잠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음악. 하지만 음악은 흐르다 멈추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찰나의 소리들. 그 너머와 바깥을 파헤쳐보려 한들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을 리 없다. 음악이 멈췄을 때, 허공에 음표의 여운과 소리의 파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팽이관에 희미한 주름살 하나 더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밀려오고 날아와 마음을 두드리고 건드렸음에도 파장과 여운 역시 보이지 않는 영혼에만 남는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때, 가끔은 허둥거리고 당황한다. 보이지 않는 소리들로 보일 것만 같은 세계를 감지하게 하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음악은 세상에 신비로움이 멀지 않음을 새벽꿈처럼 일러주고 사라진다.

밴드 쏜애플
밴드 쏜애플ⓒ해피로봇레코드

쏜애플의 창작집이자 하나의 세계, 음반 ‘계몽’

4인조 밴드 쏜애플이 5년만에 내놓은 정규음반 [계몽]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10곡의 노래를 담은 이 음반은 쏜애플의 창작집이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맑고 투명하지 않고, 흐릿하고 은밀하다. 자신보다는 체념, 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까운 정서로 바라본 자신과 세상의 이야기는 자주 모호하고 때로 그로테스크하다. “부른 적 없는 손님은/기어코 문을 열고/들어오고 말 거야//아끼는 옷을 찢고선/나를 매달아 발밑에다/불을 피우겠지”라는 첫 곡 ‘마술’의 가사부터 시적이고 드라마틱하지만 친절하지 않다. 어떻게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나 서사의 기승전결을 명징하게 연결할 수 없는 노랫말들은 쏜애플의 이야기를 던지는 동시에 낯설게 아니 몽환적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충실하다. 이 음반의 많은 곡들은 그 낯섦과의 충돌을 의도하고 있으며, 그 낯섦과의 충돌을 통해 사이키델릭한 세계와의 조우를 위해 집요하게 연출했다.

작사/작곡/노래를 맡은 보컬 윤성현의 목소리부터 대개의 남성 보컬이 지닌 질감보다 카스트라토의 질감에 가깝다. 극적으로 연출한 느낌에 다소 과잉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보컬의 질감은 음반의 드라마를 최선두에서 이끈다. 윤성현의 보컬은 마술 같은 신비로움과 모호함을 부풀리고 잔뜩 부푼 감정을 아찔하게 찌른다. 일렉트릭 기타를 비롯한 악기들로 쌓은 사운드는 보컬과 조응하면서 음악의 사이키델릭함을 완성할 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비트로 드라마의 완급을 조절하고 확장한다. 그리고 악기의 등퇴장과 비트의 변화를 자주 연출해 음악의 모호하고 무정형한 무드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모든 사운드가 모호하지만은 않다. 윤성현의 보컬과 함께 곡을 주도하는 일렉트릭 기타는 또렷하고 인상적인 리프를 반복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만든다. 첫 곡 ‘마술’부터 ‘수성의 하루’,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넓은 밤’ 등의 노래들은 감각적인 리프의 멜로디로 탐미적인 쏜애플의 음악을 완성한다. 때로 모호한 세계, 잠시도 평온하지 않은 마음을 노랫말로 낯설게 재현하고, 강렬함과 감각적인 여운을 함께 전달하는 사운드의 어울림은 쏜애플의 음악을 서정적이면서 선명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음악으로 인지하게 한다. 타이틀곡인 ‘2월’이나 ‘로마네스크’, ‘넓은 밤’ 등에서 비트의 완급을 조율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구성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 역시 음반 전체의 변화무쌍함을 강화한다.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영롱한 쏜애플의 표현력

그런데 [계몽] 음반은 전체적으로는 자괴감에 빠지거나 때로 위악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를 보일 때가 많다. “미끄러지기만 할 텐데 뭐할라고/아직 절반도 안 살았는데” 같은 노랫말에서 부각되는 태도는 절망이나 반성보다 자기 연민과 자조이다. “아무래도 이 세상이 이제 곧 끝나버릴 것 같아/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노랫말에서 보이는 비관적이고 조급한 태도 역시 자기 안에 머무르는 이의 태도이거나 젊음의 특징일 수 있다. 기쁨의 크기보다 더 기뻐하고, 절망의 크기보다 더 슬퍼하는 태도는 아직 덜 좌절하고 덜 포기한 젊음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자기애와 성마름조차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번 음반에서 쏜애플의 표현력은 영롱하다. 때로 예술작품은 특별하거나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버리는 작법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계몽] 음반은 리듬과 구성의 자유로움과 능수능란함, 멜로디의 선명함, 드라마틱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의 깊이로 인상적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넘치는 음악 속 감정의 높이는 감정 안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만큼 과잉에 가까워, 동어반복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모든 예술작품이 새로운 인식과 가치를 깨닫게 해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예술작품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고, 그 감정을 탐닉할 수 있게 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계몽’과는 멀리 서 있는 음악도 힘은 세다.

필자 사정으로 연재가 하루 늦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바랍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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