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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좌파의 선택 - “버니 샌더스가 아니라면, 죽음을!”
애틀란타에서 열린 DSA 2019 대의원대회. 2019.8.3
애틀란타에서 열린 DSA 2019 대의원대회. 2019.8.3ⓒ트위터 @scottheins

편집자주/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회주의자 단체다. 이들은 민주당의 당원인 경우도 있지만, 더 많게는 독립적인 정치세력임을 자처한다.

이들에게 있어 내년 미국 대선은 어떤 의미일까? 2년에 한번씩 열리는 DSA 대의원대회 현장을 취재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소개한다. DSA는 이날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지 못할 경우, 아예 대선을 보이코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정했다. 원문은 Is ‘Bernie or Bust’ the Future of the Left?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회원은 5천 명에 불과했다. DSA는 그저 대학 축제에서 천막 하나를 차지하거나, 혹은 점심을 먹다가 누군가 잠깐 언급할 때나 들을 만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비를 내는 회원만도 5만 6천명이 넘는다. 미국 정치의 떠오르는 샛별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도 그 중 하나다. 전국 곳곳에서 당선된 지방 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직자들도 수십 명에 달한다.

대권에 도전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DSA 회원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DSA 회원이나 진배없다. 샌더스는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고 DSA 회원들 내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

2016년,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하면서 얻은 인기 덕분에 DSA 회원은 급증했다.

하지만 DSA의 놀라운 성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샌더스와 정반대에 선 인물이다. 그는 바로 최근 “급진적 사회주의”를 “아메리칸 드림의 파괴”와 연관시킨 트럼프 대통령이다. 실제로 DSA 회원의 대부분은 지난 2년 동안 이 단체에 새로 들어왔다.

DSA를 이끌고 있는 마리아 스바트는 “트럼프가 많은 사람들에게 겁을 줬다. 그래서 그들이 합류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투표하는 DSA 대의원들. 2019.8.4
투표하는 DSA 대의원들. 2019.8.4ⓒcurrentaffairs.org

8월의 첫 주말, 애틀란타에서 있었던 DSA의 대의원대회에는 약 1천명의 대표들이 모였다. DSA의 대의원대회는 2년에 한 번 씩 열리는데, 이 자리에 모인 대표들은 분명히 스바트 만큼이나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버몬트주의 무소속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가 트럼프를 물리칠 적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DSA는 지난 3월에 이미 샌더스를 공식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DSA는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다른 어떤 사람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이 트럼프와의 대선 본선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든 말이다. DSA는 “버니 아니면 죽음을(Bernie or Bust)”을 선택한 것이다.

버니가 아니라면 죽음을!

이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자 행사장에는 기쁨의 휘파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대의원대회가 열린 3일 동안 이 행사장에 넘실댔던 소리 없는 박수, 그러니까 침묵 속에서 팔을 들고 손을 흔들어대는 그 몸짓이 유난히 열광적으로 터져나왔다.

민주당의 주류에겐 이 결의안의 압도적인 통과가 어이없었을 것이다. 좌파의 원칙성 때문에 내년에 트럼프 대통령을 물리치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샌더스 본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2020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다며 “내가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면 트럼프의 패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었다.

샌더스를 지지하지만 “버니 아니면 죽음을” 결의안을 반대했던 DSA 대의원 챨스 렌츠너도 샌더스와 같은 의견이었다. “진보주의자든 좌파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를 패배시키는 것이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결의안이 DSA 회원들이 샌더스가 아닌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가지는 건 물론 아니다. 또 DSA가 경합주에서 다른 민주당 후보를 위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2016년에 DSA가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던 힐러리 클린턴을 위해 선거운동을 했듯 말이다.

그러나 이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됐다는 것은 좌파 활동가들이 얼마나 의기충천한지, 그리고 샌더스가 많은 회원들에게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로드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 지부에서 온 테아 리오프랑코스는 “버니(샌더스는 주말 내내 ‘버니’라고만 불렸다)는 DSA에서 유례없이 통합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상당수의 DSA 회원들은 샌더스의 2016년 대권 도전이 민주당을 왼쪽으로 근본적으로 끌고 왔다고 주장한다. 꽤 설득력 있는 얘기다. 특히 DSA의 대표 정책인 전국민 단일의료보험제도(Medicare for all)에 있어서 말이다.

한편 샌더스 캠프의 고문인 위니 웡은 대의원이 아닌 평회원과 관찰자로서 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 그는 메디케어포올을 대중화하는데서 DSA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DSA의 기반인 활동가들이 정책적 목표를 전진시키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도 했다.

“좀비 신자유주의(zombie neoliberalism)”는 이제 끝나야 한다

2016년 대선을 둘러싼 씁쓸함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비록 “Bernie Would Have Won(버니라면 이겼을 것이다 - 2017년의 대의원대회에서는 이 구호가 곳곳에서 목격됐다)”이라고 쓰인 큰 피켓이나 스티커들은 없었지만 말이다.

DSA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지난 대선을 트럼프의 승리보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로 간주하는 것이다.

스바트는 “월가의 좀비 신자유주의는 자유 무역과 긴축 재정으로 현재의 위기를 만들어냈다”며 “그들은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는 트럼프의 충격적 정책의 공모자들이기도 하다”라고 비난했다.

조지아주 사우스풀턴의 시의원 카리드 카마우는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거의 2000명에 달하는 샌더스 지지 대의원들과 함께 경선 과정에 대해 항의한 바 있다. 그들은 경선 결과가 “오염”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는 퇴장했고 우리가 대변했던 사람들은 대선 투표 당일 집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대의원대회에서 당시의 민주당 후보 경선만 논의된 것은 아니다.

비록 오스카 와일드가 ‘사회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많은 저녁 시간을 앗아간다는 점’이고 했다지만, 어림잡아 27세쯤이 딱 가운데로 보이는 대회 참석자들은 와일드의 농담엔 신경쓰지 않았다.

대의원대회에 앞서 토론을 진행하는 텍사스 북부지역 대표자들. 2019.8.1
대의원대회에 앞서 토론을 진행하는 텍사스 북부지역 대표자들. 2019.8.1ⓒ트위터 @DSA_NorthTexas

대의원대회에서는 새로운 운영위원회를 선출했다. 수많은 DSA의 분파모임 들의 일부인 ‘Socialist Majority’, ‘North Star’, ‘Bread and Roses’, ‘Build’, ‘Emerge and Libertarian Socialist’ 등도 자신들의 대표자 후보를 내놨다.

첫 날인 금요일 오전에는 연설이 이어졌으며 저녁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토요일에는 “얻을 것은 전세계(A World to Win)”라는 이름의 모금 행사가 열렸다. 그러니까 공산당선언에 나온 그 유명한 문구를 따서 말이다.

대의원들은 수많은 결의안에 투표했다. 보통의 회의에서 이용되는 복잡한 규칙을 따라서 말이다. 저명한 활동가인 린다 사르사우어는 후원 행사에서 “이것 하느라 5시간, 저것 하느라 5시간이 흘러간다”며 “그러는 사이에 이 나라에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며 농담 섞인 불평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자신들이 놀림을 받을 정도로 절차를 중시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결정하려 하는 진정성 때문에 그런 절차는 설득력이 있었다. 최후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보다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던 월가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의 총회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DSA는 과거의 사회주의당과 다르다

시카고 시의회에 있는 6명의 DSA 시의원 중 한 명인 카를로스 라미레즈-로사는 “여기는 이론 토론이나 하다가 당신에게 기관지를 팔려고 하는 옛날식 사회주의당과는 다르다”며 “DSA는 권력을 형성하고 행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다”고 강조했다.

1982년에 구성된 DSA는 파벌주의가 만연한 좌파에서는 보기 드물게 어떤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만들어지지 않고 단체들의 합병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창립자 마이클 해링턴의 말을 빌리자면 DSA의 목표는 민주당을 “가능한 한 최대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 가능성이 이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유색 인종 여성이며 초선 하원의원으로 공화당을 상대하는 저격수로 성장해 미국 정계에서 ‘4인방(the squad)’이라 불리는 이들 중 2명, 그러니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와 라시다 틀레입(미시건)이 DSA 회원이다.

그리고 토요일에 진행된 기자 회견에는 매사추세츠와 펜실베이니아, 노스다코타와 오리건 주의 지역 선출직이 10여 명이나 참석했다.

DSA가 구체적으로 가장 성공한 곳은 지역 단위들이다. DSA는 샌더스의 대권 도전과 트럼프 정권의 행태 때문에 생긴 에너지를 모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유급병가법을, 그리고 뉴욕 주에서는 월세통제법을 통과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또 휴스턴에서는 판사를, 메인주에서는 주 하원의원을, 그리고 콜로라도 주에서는 주 상원의원을 당선시켰다.

데니스 조이는 주택과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정책으로 몬타나주 빌링스의 시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고 했다.

20세기 초, (내년 민주당 전당대회 개최지인) 밀워키 같은 도시에서 맹위를 떨쳤던 “하수구 사회주의(sewer socialism,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도시를 정화한다는 의미로 쓰였다)”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조이는 “대문을 두들기고 그런 것에 대해 얘기했다”며 “가로등들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DSA대의원대회 행사장에 설치된 부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물품들. 2019.8.3
DSA대의원대회 행사장에 설치된 부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물품들. 2019.8.3ⓒ트위터 #dsacon2019

대회장 안이 DSA 창립자 해링턴의 솔직한 주류 정치에 대한 참여주의로 가득했다면 장외는 장난기 어렸던 ‘점령하라’ 정신이 지배했다.

급진적 출판사인 헤이마켓북스와 사회주의 잡지인 자코뱅은 여기저기서 물건을 팔았다. 녹색 완장을 찬 진행요원 중 한 명은 탁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그 빈 탁자에는 손으로 쓰여진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파시즘 반대운동의 조직화 및 전략전술/공식적인 것이 아님/(그냥 나치들을 미워하면 된다)”

또, DSA메딕스라는 그룹은 무료로 말린 과일과 채소, 비타민C 가루, 여러 종류의 차, 귀마개, 휴지와 콘돔 등을 나눠줬다.

“버니 아니면 죽음을” 결의안이 주목을 가장 많이 받기는 했지만 대의원들의 대화는 주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한 모자 돌리기(Pass the Hat)” 결의안에 관한 것이었다.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면 모든 지부에 매월 100달러씩 지급함으로써 DSA 중앙의 기금을 급격히 재분배했을 것이다. 이 결의안은 부결됐다.

‘자본주의자’를 지지해야 하는가?

하지만 참석자들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도 활발히 논의했다. “버니 아니면 죽음을”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의원들은 경제적으로 좌파적 시각을 보이지만 스스로를 “자본주의자”라 부르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에 대한 호감을 표했다.

캘리포니아의 변호사로 작년 당내 경선에서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에 맞섰다가 패배하고 내년에 다시 그녀에게 도전할 예정인 샤히드 부타르는 샌더스를 지지하지만 “캘리포니아 민주당의 양자 결선투표제 경선에서 펠로시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샌더스 지지자지만 누가 대선 후보가 되건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한 인터뷰에서 DSA의 수장 스바트는 “많은 회원들이 워렌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워렌 상원의원이 “버니와는 아주 다르다”고 덧붙였다. 스바트는 “워렌의 권력이론과 사회변화이론에는 대중운동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대중운동 없이는 그 어떤 변화도, 특히 노동자 계급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19인의 DSA중앙집행위원 기자회견. 이런 기자회견은 2년 전에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19.8.3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19인의 DSA중앙집행위원 기자회견. 이런 기자회견은 2년 전에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19.8.3ⓒ트위터 @scottheins

이런 믿음이 내년에 사실로 확인되든 되지 않든, DSA가 진정한 운동이자 대중의 일부를 품은 운동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1985년부터 DSA회원이었던 이자크 엡스타인은 DSA가 이렇게 성장한 사실이 놀랍지 않으냐는 질문에 관해 ‘지성의 비관’와 ‘의지의 낙관’을 섞어 답했다.

“이제 겨우 5만 6천 명인데요, 뭐. 현재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백만 명은 됩니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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