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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에몬의 음반 ‘네가 없어질 세계’
에몬의 음반 ‘네가 없어질 세계’ⓒ에몬

진작 쓰려고 했던 리뷰가 많이 늦었다. 싱어송라이터 에몬(Emon)의 정규 2집 [네가 없어질 세계]가 나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7월 17일에 발표한 음반 [네가 없어질 세계]는 제목처럼 너라고 부르는 가깝고 소중한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 모음이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진동을 포착한 노래

이 음반은 제목에서 제시한 [네가 없어질 세계]의 단절과 부재 가능성에 대해서만 노래하지는 않는다. ‘네가 없는 세상이 단 하루도 없었으면 해’는 제목처럼 네가 없어져버린 세상의 두려움을 “네가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난 어쩌면 하루 종일 울 수 있을걸”이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다른 인종’에서는 “믿고 싶은 말들만 귀를 기대어 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됐네”라는 노랫말로 불화하는 관계의 불편함과 고통을 노래한다. ‘숨 쉴 때마다’는 “숨 쉴 때마다 너를 생각한다는 그 말은 거짓말/매 순간 하늘을 볼 때도 나는 다른 생각을 해”라고 자신의 다른 속마음을 노래하다가, “아직 난 준비가 안 됐는데 커져만 가는 너의 그림자가 너무 싫어”라는 노랫말로 자신의 의지보다 커져버린 애틋한 마음을 고백한다.

소중한 관계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소중한 관계가 된 이후에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보고 다른 가슴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게 진짜 소중한 것은 너를 알고 있는 나”라는 노랫말처럼 다른 이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는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상대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마련인 자기중심성이 모든 관계의 차이와 장벽을 만든다. 에몬은 이번 음반에서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진동을 다양하게 포착한다. 두근거리고 들뜨는 진동부터 식고 멈춰버린 마음의 폐허까지 모두 기록한다. ‘남겨진 로봇’에서는 “그리움 가득한 날들/이제는 아무도 없네”라는 노랫말로 “고장 나 버려진 작은 로봇”처럼 “낡고 초라해진 마음”을 노래하고, “끝나지 않을 밤을 지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라며 사랑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반면 ‘Poor Love’에서는 “나를 모르는 그대는 내 이상형/다가가면 분명히 깨질 사랑”이라고 “이대로 그저, 바라만 보”는 마음의 낮은 자존감과 단념을 감추지 않는다. “힘든 사람을, 좋아하는 버릇”을 털어놓는 노래 ‘머리끝’도 관계의 달콤함보다 “네 안의 결핍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면서 고단할 수밖에 없는 관계의 특별하고 강력한 마력에 대해 들려준다. “어디에서 언제라도 네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날 그 날을 꿈”꾼다고 고백한 ‘어디에서 언제라도’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렇게 관계의 명과 암, 빛과 그림자가 한 장의 음반에 들어있다. 그 사이에서 들뜨고 처지고 가라앉으며 오락가락하는 마음도 함께 들어있다. 생략하거나 감추지 않는 진솔한 목소리는 누구나 경험했을 상승과 하강의 경험, 그 속에서 깨닫는 자신과 관계의 눈부시고 남루한 실체를 마주하게 한다. 현실은 오직 낭만적이기만 하지 않고, 반드시 비극적이기만 하지 않아 기쁨과 슬픔이 서로를 꽉 껴안고 있다. 자긍과 한탄 사이에서 서성이고 비틀거리는 관계의 속성을 모두 노래하는 에몬의 음악은 깊다.

관계의 명과 암, 빛과 그림자가 들어있는 음반 ‘네가 없어질 세계’

특히 에몬은 노래 속 이야기의 상승과 하강의 낙차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쓸쓸함이 배인 에몬의 목소리는 들뜨지 않을뿐더러 한없이 처지지도 않는다. 에몬은 서늘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기쁨과 서러움을 모두 껴안으며 노래한다. 덕분에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도 노래 속 감정의 이면과 기저까지 바라보게 한다. 그곳을 바라보는 에몬의 자리에 서게 하고, 언젠가 그곳에 서 있던 자신의 기억을 끌어오게 한다. 감정을 부풀리거나, 감정의 한복판에서 맹렬한 파장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보컬의 안정적인 톤이 지향하는 태도는 듣는 이들이 부담 없이 노래 안으로 걸어 들어와 오래 머물 수 있게 한다.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노래들 사이에서 에몬의 노래가 더 특별해지는 이유이다.

에몬의 노래를 빛나게 하는 힘은 에몬의 보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에몬은 드럼, 바이올린, 베이스, 신디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클라리넷, 퍼커션, 피아노 같은 악기들을 곡마다 효과적으로 활용해 정갈한 사운드를 구축한다. ‘네가 없는 세상이 단 하루도 없었다면’이 미디엄 템포의 담백한 팝을 만들어냈다면, ‘다른 인종’에서는 신디사이저와 드럼/퍼커션으로 리드미컬하면서 영롱한 사운드를 깔끔하게 펼친다. 소규모의 악기를 적시적소에 등퇴장 시키며 음악을 연출하는 에몬의 감각은 넘실거리듯 밀려오는 ‘숨 쉴 때마다’의 사운드에 이르면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맑고 투명하면서 은근한 음악의 빛은 ‘남겨진 로봇’을 비춘 다음,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의 고즈넉함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간다. 절제하면서도 절제했다는 인상도 주지 않을 만큼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 덕분에 에몬의 음악은 편안하다. 편안함을 소리의 편안함으로 실제화하고, ‘Poor Love’에서는 시타르를 이용해 몽롱한 질감을 만들어낸 후 신디사이저와 팅샤 등으로 아찔하고 아련한 슬픔을 한결 같이 수수하게 펼치는 음악은 11년차 뮤지션 에몬의 다른 음악까지 들어보라고 권한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음악들을 베게 옆으로 끌어당기게 한다. ‘머리끝’의 리듬감과 멜로디의 중독성과 ‘숨 쉬듯 크리스마스’의 서정성까지 에몬의 음악은 잡아 당기고 풀어 놓으며 매력을 빼곡하게 쌓아 올린다.

세상이 재미없고 지루하다 해도, 잔인하고 비관적으로 무너지는 것 같다 해도 누군가는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애쓴다. 덕분에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세상은 똑바로 흘러 음악이 멈추었을 때도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모를 수 없게 한다.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에몬의 음반이 흐르는 순간동안 만날 수 있는 음악의 깊이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선사하는 충만한 기쁨을 오밀조밀 누리게 한다.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최소한 에몬의 음악을 듣지 않고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싱어송라이터 에몬(Emon)
싱어송라이터 에몬(Emon)ⓒ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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