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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그 처참함을 극복하기 위한 뜨거운 외침 _ 장 지글러

*편집자 주 - 설에 이어 이번 명절에도 불평등한 인간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경제학자 네 명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고뇌와 분투를 되짚어보면서 사람이 먼저인 경제, 모두가 행복한 경제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악한 악마가 있다. 이 악마는 스산한 광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것도 열 살이 채 안 된 어린이들만을 집중적으로 말이다.

악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진다. 아직 자신의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순진한 어린이들이 악마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잔인한 악마는 정확히 5초에 한 명씩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 혹시 글을 읽으면서 5초가 지나갔다면 조금 전, 또 한 명의 소중한 어린이가 악마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 악마의 이름은 ‘영양실조’다. 영양실조는 순전히 먹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는 상상도 못하지만, 세계에는 단지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이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이 무려 8억 5000만 명이나 된다.

숫자를 잘 봐주기를 부탁드린다. 85명이 아니다. 850명도 아니다. 8500명도 아니다. 인류의 10%가 넘는 숫자, 무려 8억 5000만 명이다. 그리고 이 영양실조 탓에 10살이 채 안된 어린이들이 5초에 한 명 씩 죽는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도, 암에 걸려 죽는 것도 아니다. 단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이다.

굶어죽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장담컨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진행되는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단지 먹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그 간단한 해결책이 없어서 사람이 죽어간다.

인류를 굶겨 죽이는 것은 투기 자본이다

2015년 반기문 사무총장이 이끌던 국제연합(UN)은 ‘어젠다 2030’을 UN의 새로운 목표로 제시했다. 2030년까지 지구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어젠다 2030이 이전까지의 계획과 달랐던 점은 UN의 목표가 ‘기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아를 완전히 없애는 것’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어젠다 2030의 목표는 기아의 완전한 종식이었다.

하지만 스위스의 사회학자이자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는 이 계획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지글러는 “29쪽에 이르는 문서 어디에도 기아를 종식시키기 위한 효과가 있는 구체적 방책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UN의 계획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기아의 완전한 종식은커녕 최근 3년 사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의 숫자는 되레 늘고 있는 추세다.

장 지글러
장 지글러ⓒ민중의소리

이유가 뭘까? 지글러는 UN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굶어죽는 사람을 살리자”는 호소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글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곡물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투기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격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곡물 가격도 당연히 곡물을 필요로 하는 수요와, 그 곡물을 공급하는 생산자 사이에서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제 곡물 가격은 곡물시장이 아니라 시카고 곡물 거래소라는 금융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이 금융상품의 가격은 ‘곡물의 수요’가 아니라 ‘펀드매니저의 수요’에 의해 정해진다. 즉 펀드매니저들이 곡물 금융상품을 더 많이 사겠다고 나서면 곡물 가격이 상승한다는 이야기다. 곡물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말이다!

2008년 세계 곡물 파동이 벌어졌다. 당시 옥수수 가격은 1년 만에 31%, 쌀은 74% 대두는 87%, 밀은 130%나 올랐다. 도대체 왜? 기록적인 대흉년으로 곡물 공급이 급감했거나, 기록적인 인구 증가로 곡물 수요가 급증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해에는 기록적인 흉년도 없었고, 기록적인 인구 증가가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고작해야 “인도와 중국의 경제가 발전해서 중산층이 늘어나 곡물 수요가 급증했다”는 식의 한심한 분석만 내 놓았다.

웃기는 이야기다. 인도와 중국 중산층이 2008년에만 급증했다는 게 말이 되나? 본질을 비켜가니 이런 코미디 같은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지글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농업 원자재에 대한 투기가 수백만 명을 기아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2008년 프랑크푸르트, 도쿄, 런던의 거래소는 폭락했다. 금융위기 탓에 수천 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규모 투기 세력은 증권거래소를 떠나 농업 원자재 거래소로 몰려들었다. 이 거래소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시카고 거래소다. 완벽하게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전 세계의 포식자들은 오늘날 쌀, 밀, 옥수수, 콩, 완두 등을 투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천문학적 이득을 얻는다. 경제학자 하이너 플라스벡은 2008년 1사분기 곡물 가격 상승분에서 투기자본이 가져간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37퍼센트에 이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금융자본의 투기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곡물 가격이 급등하니 곡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곡물 회사들도 떼돈을 벌었다. 전 세계 곡물시장의 75%를 장악한 5대 곡물 메이저, 즉 카길, ADM, 루이 드레퓌스, 붕게, 앙드레 등 5개 회사의 식량 파동 당시 이익은 전년에 비해 무려 40% 이상 늘어났다.

헤지펀드의 농경지 약탈

기아의 또 다른 본질적인 이유는 헤지펀드들의 남반구 농경지 약탈이다. 지금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분의 1을 먹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소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무려 8억 5000만 명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왜냐고? 옥수수를 소에게 먹인 뒤 그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팔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옥수수를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팔면 돈을 별로 못 벌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회사들이 아프리카 빈민들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옥수수를 사 줄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2007년부터 시작된 바이오 연료 열풍도 곡물 파동의 한 원인이었다. 옥수수에서 나오는 전분을 이용하면 에탄올이라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이 에탄올을 가공해 연료로 만들면 석유나 석탄에 비해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수많은 대기업들이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이 여기에 돈을 대기 시작하면서 남반구의 농토는 사람이 먹을 곡물이 아니라 자동차에 넣을 연료를 생산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지글러는 이런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폭로한다.

스위스 로잔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아닥스 바이오에너지(Adax-Bioenergy)는 최근 세계 최빈국인 시에라리온에서 2만 헥타르의 땅을 매입했다. 이 회사는 그 땅에 바이오에탄올 제조에 쓰이는 사탕수수를 심을 예정이다.

이 같은 약탈에 필요한 대금을 지원하는 세계은행이나 유럽투자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의 논리는 한마디로 사악하기 그지없다. 아프리카 농부들의 생산성이 너무도 낮으므로 그 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산자들’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로잔에 근거지를 둔 약탈자들이 차지한 땅은 아프리카 농부들, 특히 벼농사를 짓는 수천 가구의 삶의 터전이었다. 아닥스는 한껏 너그러움을 과시한다. 제한적인 수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이들 농부들의 자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약속한 급여는 일당 1만 레온, 다시 말해서 1.8유로에 불과하다.

결국 인류의 10%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현실의 원인은 자본의 탐욕 탓이었다. 금융자본과 곡물자본이 희희낙락하며 벌어들인 돈은 그냥 돈이 아니라 수 억 명에 이르는 민중들의 목숨 값이다. 사람을 굶겨 죽여 놓고 그 굶주림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자들, 이들을 기업이라 불러야 하나? 살인마라고 불러야 하나?

자본의 폭주를 멈춰야 한다. 적어도 사람의 목숨을 돈벌이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지글러는 이 고통을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지글러는 자신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2011년 개정판 서문을 이렇게 맺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장 지글러(Jean Ziegler, 1934~) = 스위스 중부의 휴양도시 툰(Thun)에서 태어났다. 베른 대학과 제네바 대학에서 법학과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글러는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열렬히 지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1964년 게바라가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 지글러는 그를 위해 손수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1963년 사회민주당 소속 제네바 시의회 의원으로, 1981년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으로 각각 당선됐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UN 인권위원회 소속 최초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임명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아의 실태를 파악했다. 지글러는 실천적 사회학자로서 스위스 은행에 검은 돈을 맡기는 전 세계 독재자 및 범죄자들과도 오랜 투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지글러는 스위스 극우파에게 종종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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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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