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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라는 따뜻한 집을 짓다 _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편집자 주 - 설에 이어 이번 명절에도 불평등한 인간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경제학자 네 명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고뇌와 분투를 되짚어보면서 사람이 먼저인 경제, 모두가 행복한 경제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존 F. 헬리웰(John F. Helliwell) 명예교수는 ‘행복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국제연합(UN)은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3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간한다.

행복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의 경제적 행복을 규정하는 요소는 모두 여섯 가지다. UN은 이를 바탕으로 157개 나라의 행복경제학 순위를 매긴다. 참고로 올해 발간된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의 행복경제학 순위는 54위였다.

여섯 가지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GDP)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나(건강기대수명) △얼마나 자주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나(자유로운 삶의 선택) △우리는 이웃과 사회에 얼마나 관용적인가(관용성)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고 깨끗한가(부패인식)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는 벗이 있는가(사회적 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2016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헬리웰 교수는 여섯 가지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회적 지원’을 꼽았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고 돌봐줄 벗의 유무’가 인간 사회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계행복보고서』는 이 분야의 점수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할까? 각 나라의 복지 수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왜 복지 수준인가? 헬리웰은 “내가 어려울 때 국가가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도와주는 벗이 된다면 그 국가의 국민은 행복하다”라고 설명한다.

실로 멋진 이야기 아닌가? 나를 귀찮게 여기거나 나를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가 아니라 나를 벗으로 여기고 내가 어려울 때 나의 쉼터가 되어주는 국가! 장담하는데 그 나라의 국민들은 진정으로 행복할 것이다.

따뜻한 가정 같은 국가를 꿈꾸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아버지, 혹은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로 불린다. 그는 192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사회주의에 매료돼 사회주의자가 됐지만, 혁명만이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비그포르스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민중들의 삶이었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는 당장 민중들의 삶을 돌볼 구체적 정책이 더 절실하다고 믿었다.

그가 도입하려고 했던 정책 중에는 연간 2주 동안 유급휴가 도입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제도지만 당시 자본가들은 이 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1년에 무려 2주나 쉰다고? 그것도 열 받는데 유급이라고? 노는데 왜 월급을 줘야 하나?”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비그포르스가 도입하고자 했던 출산수당이나 양육수당도 마찬가지였다. “지가 지 새끼 낳는데 국가가 왜 도와줘?”라는 반발이 극심했다. 게다가 비그포르스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강화하려 했다. 그리고 이 정책 탓에 사민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자고로 세금 더 내라는 정치인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는 법이다(자신이 과세 대상이 아닌데도!).

비그포르스는 이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그포르스는 자신의 꿈을 민중들에게 더 쉽게 설명해 줄 인물을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적임자는 1932년부터 1946년까지 스웨덴 총리를 지내는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이었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기타

한손 총리는 초등학교 중퇴 경력의 최하층 노동자 출신이었다. 그 덕에 한손 총리는 노동자 민중들의 언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손 총리는 비그포르스의 꿈에 적극 동조했고, 그의 전매특허인 민중들의 언어로 복지국가의 꿈을 요약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국민의 집’이라는 개념이다

한손이 해석한 비그포르스의 꿈은 이랬다.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바로 가정을 확대한 것이다. 가족끼리는 이기적이지 않다. 가족끼리는 노부모를 돌본다. 가족끼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한다. 이것이 가족이라면, 국가는 바로 그런 가족 같은 국가여야 한다. 한손 총리의 명연설에 담긴 비그포르스의 꿈을 읽어보자.

좋은 가정이란 언제나 평등, 배려, 협조, 도움이 가득한 곳이다. 규모를 확장해 이를 민중들과 시민들로 이루어진 가정에 적용해 보자. 지금 이곳에서는 형식적인 평등, 즉 정치적 권리의 평등이 지배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계급사회로서 여전히 소수에 의한 독재가 판을 치고 있다.

각종 불평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대궐 같은 집에 살건만, 어떤 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그저 오두막이라도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하면서 손 모아 빌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혹시나 큰 병에 걸릴까, 일자리를 잃게 될까, 온갖 험한 일들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정말로 스웨덴 사회가 선량한 시민들의 가정이 되어 줄 수 있으려면 각종 계급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사회적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하며, 경제적 균등화를 달성해야 하며, 노동자들이 경제의 관리자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며, 민주주의는 사회적 경제적 차원 모두에서 적용되고 또 완전히 실현되어야 한다.

시장을 넘어서는 사랑의 힘

‘국민의 집’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가족을 경제학과 상관이 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가족을 경제학에 대입하면 주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이기적 인간과 시장 만능주의라는 개념은 박살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가족끼리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다. 세배를 예쁘게 한다고 세뱃돈을 갑절로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명절 때 남는 음식은 주류 경제학 입장에서 볼 때 공급 과잉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막기 위해 시장 경제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다. 친척들 불러놓고 동그랑땡 한 접시를 8700원에 팔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면 공급과잉은 해결될지 몰라도, 그걸 가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족에게는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가족을 기반으로 살아간다면, 왜 국가가 가족 같은 사회가 돼서는 안 되는가? 이 개념이 형성되면 국가가 노인 복지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 자식이 부모님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이 취업을 못해 고생할 때 부모가 밥을 안 주나? 보수주의자들은 청년수당 같은 복지정책에 대해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며 난리를 피우지만, 국가가 국민의 집이라면 이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된다. 심지어 헬리웰 교수의 행복경제학에 따르면 이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시장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국민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국민의 집’과 같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는 사회는 장담컨대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은 이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돈과 시장은) 거주할 집에 대한 욕구는 채워주지만, 나 자신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줄 수 없다.

돈으로 사실상 어떤 도구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만들어 준 도구와 그에 얽힌 이야기는 살 수 없다. 돈으로 노래를 살 수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를 살 수는 없다.

밴드를 집에 불러 노래하게 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위해 노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연인이 불러지는 세레나데가 얼마나 내면 깊숙한 욕구를 채워주는지 우리는 안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 1881~1977) = 스웨덴 할란드 주의 주도 할름스타드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언어에 소질을 보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에도 독일어와 스웨덴어를 가르쳤다. 학문적으로도 비그포르스는 경제학자가 아닌 언어학자였다. 1919년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 비그포르스에게는 스웨덴 경제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책무가 부여됐다. 1925년 재무부 장관을 맡은 이래 두 차례에 걸쳐 17년 동안 재무부 장관으로 스웨덴 경제를 이끌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보다 빨리 확장재정의 필요성을 역설해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철저한 반핵주의자로서 1962년 스웨덴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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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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