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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왜 서둘러 삭발했을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2019.09.16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2019.09.16ⓒ김철수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17일 일정은 '미정'이었다. 바로 전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감행하고 촛불 농성까지 마쳤던 만큼, 향후 행보는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튿날 아침까지 황 대표의 삭발 이후 일정이 결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황 대표가 이렇다 할 계획도 세우지 않고 삭발하기로 서둘러 결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 대목이다. 그의 일정은 이날 오전 11시를 넘겨서야 기자들에게 공지됐다. ▲오전 11시30분 단식 중인 이학재 의원 격려 방문 ▲오후 2시 제2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 ▲오후 6시 조 장관 임명 규탄 광화문 1인 시위 ▲오후 7시 광화문 집회 참석이 그것이다. 그렇게 황 대표의 '장외투쟁'이 또다시 시작됐다.

황 대표의 삭발은 추석 연휴 내내 조 장관 임명을 빌미로 문재인 정권을 향해 펼치던 공세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이에 항거하는 뜻으로 삭발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여론을 환기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오히려 추석 전에 삭발을 하든 촛불을 들든 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가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나서 서두르듯 삭발을 한 데에는 다른 정치적 셈법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추석 민심 보고대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추석 민심 보고대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조국 대전' 속에서 또 흔들린 자유한국당 리더십

황 대표의 행보는 지난 4월 말 '패스트트랙 충돌' 때와 비슷하다. 당시 황 대표는 전국을 순회하는 장외투쟁으로 바닥으로 추락했던 지지율을 지지층 결집으로 일정 부분 끌어올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이 '조국 반대'의 여론을 '반사 이익'으로 얻지도 못할 만큼 상황이 다시 악화되자, 황 대표는 기존 방식을 넘어 더욱 강력한 투쟁 방안으로써 '삭발'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리더십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식하고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황 대표의 삭발은 9월 정기국회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 자유한국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같은 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이에 발을 맞추듯 이번 정기국회를 '조국 파면 관철 및 헌정 농단 중단 국회'로 만들겠다고 엄포하면서도, 이번 주에 예정돼 있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을 뒤로 미뤘다. '조 장관을 국무위원으로 인정해 국회에 출석시킬 수 없다'는 궁색한 이유에서다.

이른바 '조국 대전'을 치르는 동안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와 리더십 위기론이 당내에서 번지기 시작한 것도 황 대표가 삭발까지 나서게 된 배경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조 장관 인사청문회를 맡았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야당 대표가 삭발하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나오는 건 밖에서 홍준표 전 대표 같은 분들이 '조국 장관을 낙마시키지 못하면 당 지도부는 그만둬라' 이런 식의 공격을 하기 때문"이라며 "자유한국당 내부적 사정, 개인적인 공천 문제, 이런 것 때문에 삭발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당 '전략통'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내부의 불안을 외부투쟁을 통해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학재 의원 농성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2019.09.17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학재 의원 농성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2019.09.17ⓒ정의철 기자

공교롭게도 박근혜 구치소 나온 날 황교안 삭발

황 대표가 삭발한 날이 공교롭게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깨 통증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던 날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날은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수감된 뒤 900일째에 처음으로 구치소 바깥 생활을 시작한 날이었다.

황 대표에게 박 전 대통령은 마치 계륵과 같다. 절대적인 지지층 결집을 위해선 황 대표도, 자유한국당도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긋기 어렵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반(反) 조국 연대'를 디딤돌로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과 보수통합을 시도하려는 황 대표에게 박 전 대통령은 걸림돌이 된다.

이때 장기 입원의 이유로 구치소 밖을 나오게 된 박 전 대통령에게 이목이 쏠리기 시작하면서 보수진영 내에서 또다시 '박근혜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과 선 긋는 다른 보수 야당과 통합을 추진하려던 황 대표로선 부담스러운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이를 두고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 연대' 김정현 대변인은 삭발을 감행한 황 대표를 향해 "혹시 입원 때문에 구치소를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제1야당 대표의 위상이 흔들릴까 봐 그러는 것인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의도와 무관하게 황 대표의 삭발은 결과적으로 지지층의 시선을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자신에게 쏠리게 하는 효과도 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제1야당 대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과시한 셈이다.

이에 '박근혜 석방' 요구에 앞장서고 있는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 쾌유 기원 광화문 집회'에서 "머리 깎을 날이 없어서 900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병원 가는 날 머리 깎고 앉아 있냐.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장소도 보면서 X 싸라는 말 있지 않냐"라며 황 대표의 삭발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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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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