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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구사대에서 ‘노동자의 사제’가 된 신부의 절박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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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대 신부가 지난 9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내부에서 농성 중인 요금 수납원들과 악수하는 모습.
김정대 신부가 지난 9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내부에서 농성 중인 요금 수납원들과 악수하는 모습.ⓒ김정대 제공

"저는 고통이 있는 사람들한테 가야 해요. 고통 앞에 중립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파하면, 우리와 연결된 하느님도 아파해요. 고통 앞에서 물리적인 중립은 지키는 것은 제가 볼 때 하느님답지 않아요. 한 사람이 고통을 느낄 때 그 고통을 그 사람부터 분리시키는 감정이 '연민'이죠. 저는 곧 연민이 하느님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 가야죠."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농성장은 그에게 '지붕 없는 성당'이다. 그는 노동자들의 아파하면 그곳으로 간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김정대(57) 신부를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천주교 예수회 한국 관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30년째 사제의 길을 걸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미사를 하고 있다.

그는 기륭전자, 유성기업, 파인텍, 콜트콜텍, 삼성 해고자 김영희 씨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곁에서 기도해 왔다. 김 신부는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미사 하러 가는 이유에 대해 그들의 투쟁에 '윤리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막는 구사대에서 이탈한 노동자는 '위험한 사람'이 됐다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천주교 한국 관구에서 김정대 신부(57)를 만났다. 2019.10.08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천주교 한국 관구에서 김정대 신부(57)를 만났다. 2019.10.08ⓒ민중의소리

그는 신부가 되기 전 '평범한 노동자'였다. 김 신부는 1988년 반도체 조립공장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다. 1989년 한여름,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회사가 노조에 가입이 안 된 사무직과 관리자 직원 70명 정도를 불러다가 파업을 방해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70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관리직이었던 그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거기서 스크럼을 짜서 노동자들을 막는 거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끌려가서 그 앞에 있었어요. 충격이었어요. 내가 '구사대'였구나 느낀 거죠." 구사대(救社隊)는 회사를 구하기 위하여 모인 무리라는 뜻으로, 회사 측이 만든 노동 운동 파괴 조직을 말한다.

그는 회사 전체 직원 420명 중에 350명 정도가 노조에 가입했고, 주로 여성 조립공 노동자였다고 설명했다.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일관성이 있는데 이게 깨진 느낌이었어요. 일종의 멘붕이 온거죠. 한편으로는 굉장히 서글픈 거예요. 내가 이런 바닥까지 쳐야 하는 건지. 또 한편으로는 나를 이런 곳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고요."

결국 그는 회사를 이탈했다고 한다. 2박 3일이 지나고, 회사에서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다. 파업은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회사는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문책하듯이 인사위원회를 진행했다.

"그곳에 가니까 몇사람이 있었고, 다들 금방 면담이 끝나고 나갔어요. 그런데 저는 한 시간동안 사장하고 설전을 벌였어요. 이건 내 '양심'의 문제인데, 당신네들이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설전을 벌인 거예요. 그러니까 사장이 저한테 '위험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회사의 요구에 따르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사람'인가, 아니면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회사'는 '위험한 회사'인가, 그는 묻고 싶었다. 사장과의 설전 이후 그는 한달 출근 정지를 당했다.

"김 주임, 거기서(인사위원회) 무슨 얘기해야 하는지 몰랐어? 아직까지도 대학생이야?" 인사위원회 면담 이후 그와 친했던 직장 선배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거기서 무슨 얘기해야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안했을 뿐이에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 같으면 당신 자식을 키워놓고 거기서 그 사람들 하라는 대로 살라고 할겁니까?"

그는 그때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한없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외롭고 서글펐다고 말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그는 구사대라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체험 이후, 그는 1990년 2월 예수회에 입회해 수도사의 삶을 살게 됐다.

2008년 노동자들을 위한 첫 길거리미사 "노동자들을 통해 하느님을 봅니다"

그는 제일 처음 농성장 미사를 했던 게 '기륭전자'라고 말했다. 기륭전자 투쟁은 '불법파견' 투쟁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년부터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은 벌금 500만원만 내고 아무런 시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

노조의 1895일간의 투쟁의 끝에 2010년 10월 회사는 국회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거쳐 노동자 10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자들은 2013년 5월 회사로 출근할 수 있었지만, 회사는 복직자들에게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또 회사는 노동자들 모르게 2013년 말 회사를 이전한 뒤 이듬해 11월 회사를 폐업했다.

그는 2008년만 해도 길거리미사가 생소했고, 낯선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처음에는 신자들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미사를 하는 일이 어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소연(당시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씨가 단식을 오래 하고 있었을 때였다고 미사 당시의 기억 떠올렸다.

"그때 가서 그 사람들한테 '당신네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봅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개인의 어떤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고 비정규직 불법파견에 대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싸움이니까요. 중요한 싸움이고 아무도 못하는 것을 그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옆에 있어주세요' 노동자의 절박한 기도,
"우리 사회가 약자 중심으로 가야 건강한 사회"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천주교 한국 관구에 김정대 신부 자리에 걸려있는 손피켓과 손수건의 모습. 2019.10.08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천주교 한국 관구에 김정대 신부 자리에 걸려있는 손피켓과 손수건의 모습. 2019.10.08ⓒ민중의소리

사무실 한켠 그의 자리에는 '직접고용 쟁취, 우리가 이긴다!'는 손팻말과 함께, '톨게이트 직접고용'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보라색 손수건이 걸려있었다.

그는 최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내부에서 농성 중인 요금수납원들을 위해 미사를 다녀왔다. 현재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에서 한달이 넘게 농성 중이다.

김 신부는 도로공사 본사에 농성하러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차단하고 고립시킨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거거든요. 거기에 제가 들어갔다는 건, 못 들어가게 막혀있는 곳에 잠시 구멍을 뚫는 역할을 한 거죠. 그분들한테 큰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로 가는 싸움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그는 이날 농성장에서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미사를 진행했다. 그는 희망적인 내용이 미사의 주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농성하고 있는 신자들 중에 몇 사람한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본인들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감동을 받으면서 읽는 모습이었다고 당시 미사를 설명했다.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의 어느 부분이 내 마음을 건드려요. 이게 하느님께서 내 옆에 있다는 사인이고 기도죠. '나한테 뭐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넘어서서 진짜 절박한 기도는 '하느님 내 옆에 있어주세요'거거든요. 그리고 '내가 옆에 있잖아' 이런 걸 확인 시켜주는 거에요."

그의 말을 듣고, '기도' 마치 '연대'와 같은 의미로 느껴졌다.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을 때, 누군가 함께해줄 것이라는 연대의 확신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저는 죽기 전에 모든 노동자들이 총파업 하는 거 보고 싶어요. 세상이 아마 놀랄 걸요. 노동자들이 이런 사람들이었구나하고..."

"노동자만큼 중요한 사람들이 어딨어요. 예를 들어 청소 노동자들이 쓰레기를 3일만 안치우면 우리 사회는 쓰레기 더미가 될 거고, 농부가 농사를 안 지으면 먹을 거 어떻게 구해요. 그리고 운전기사가 운전 안 하겠다고 하면 우리 대중교통 못 타요. 얼마나 불편한 지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동자들을 올바르게 대접 안하는 사회는 잘못된 거죠. 노동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보고 마치 머슴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온 해고노동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고공에 오르고, 단식을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고 파업하고 시위하던 노동자들은 경찰에 진압되거나 연행된다. 가장 위험한 작업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맡겨지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고 죽는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몸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신부는 사제로서 노동자들의 고통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또 그는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은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며, 아파하는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손안에 상처가 나고, 내 몸이 이걸 무시하면 이건 덧나잖아요. 그래서 이것 중심으로 살아야 해요. 우리 사회가 약자 중심으로 가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강자 중심으로 가면 우리사회 아픔은 끝없이 넘쳐나고 반복될 거예요."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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