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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vs 샌더스 : 외교정책의 차이는 극명하다
TV토론에 앞서 인사하는 샌더스와 워런. 2019.7.30
TV토론에 앞서 인사하는 샌더스와 워런. 2019.7.30ⓒAP/뉴시스

몇 세대 동안 미국 좌파에서 진행된 가장 중요한 전투가 현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편에는 버니 샌더스가 있다. 그는 1912년 유진 뎁스가 미 대선에서 6%를 획득한 이래 자칭 사회주의자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 가까이까지 가 본 사람이다. 다른 한 편에는 엘리자베스 워런이 있다. 그녀는 자유주의적인 하버드 교수 출신으로 파산법을 전공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자가 최소 향후 10년간 미국 진보 정치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직접 인정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두 후보자의 차이점을 덮으려고 한다. (정치,사회, 문화를 다루는 뉴욕 잡지인) 《뉴욕》의 애드 킬고어가 요약했듯 “대부분의 언론이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를 민주당에서 왼쪽 차선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동료 진보주의자로 취급한다.”

샌더스와 워런이 어떤 면에서는 “매우 유사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유사성으로 인해 현대정치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법과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덮여서는 안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영역은 바로 외교정책이다. 미국 대통령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인 외교정책 말이다.

두 사람의 정책뿐만 아니라 그런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를 살펴보면 두 후보가 미국이 세계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만약 당선된다면 미국의 외교정책이 매우 달라질 것이라는 게 분명해질 것이다.

민족국가를 넘어

얼핏 보면 샌더스와 워런의 외교정책은 매우 흡사하다.

둘 다 방위비를 줄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원조를 늘리고 “끝없는 전쟁들”을 종식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넘어서 제왕적 대통령을 권한을 축소하기를 원한다.

둘 다 다국적기업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힘을 키우고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관계를 변화시키며 방위업계의 정책적 영향력을 제한하려 한다. 또 둘 다 선거개입을 한 러시아를 처벌하고 대서양 동맹을 재확인하며 국무부와 미국 외교를 전반적으로 강화하면서도 세계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다자간 접근법을 수용하려 한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 워런과 샌더스의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는 가정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가 드러난다.

국제연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좌파에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워런의 민족주의이다. 세계 문제에 대한 그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말이다.

워런은 외교정책에 관한 연설과 글을 통해 자신이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싶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워런은 냉전 이후의 모든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 이후 제국(empire)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지키고 싶어 한다.

워런의 “모두를 위한 외교정책(A Foreign Policy for All)”은 결국 민족국가를 정치와 역사의 자연법적 주체로 간주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외교정책에 불과하다.

반면 샌더스는 세계에서 미국이 할 역할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샌더스에게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는 미국의 “리더십”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로 하는 변변한 일자리와 먹을거리, 깨끗한 물, 교육, 의료혜택과 주택을 갖춘 글로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샌더스는 미국 정치 일반에서 활용되는 민족주의적 수사 - 여기엔 워런도 포함된다 - 와는 완전히 다르게 “인류의 연대에 기반한 세계 질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인류로 하나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 싶다는 점을 강조한다.

워런이 선거운동을 하며 “미국 경제와 미국의 노동자, 미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 샌더스는 “전 세계의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의 몰락 현상을 뒤집기 위해 세계 경제 질서를 바꾸겠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전복되어야 할 세계 경제 질서란 “미국의 노동자이 시간당 1달러도 못 벌는 베트남 노동자나 사실상 현대판 노예로 일하고 말레이시아의 이주 노동자들과 경쟁시키는 것”이다.

워런과는 달리 샌더스가 가장 좋은 의미로서의 세계주의자(globalist)인 것이다.

미국 외교의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 외교정책의 역사에 대한 샌더스와 워런의 이해를 비교하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샌더스의 공감능력이 크게 부각된다.

뻔한 얘기겠지만, 워런 또한 자유주의 제도권 세력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이룬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민주주의와 인권, 모두의 삶의 경제적 수준 개선”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의 구축이라고 주장한다.

워런은 이 세계 질서가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인정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미국의 외교정책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워런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미국의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이다.

슈퍼마켓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찾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2019.6.1
슈퍼마켓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찾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2019.6.1ⓒAP/뉴시스

미국 역사에 대한 샌더스의 이해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보다 정확하다.

샌더스는 워런과는 달리, 또 다른 어떤 민주당 대선 출마자와도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약속한 바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샌더스는 여러 연설을 통해 미국이 소위 “미국의 세기”에 벌인 수많은 범죄를 강조했다. 195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덱 정권을 전복하고, 19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으며,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살인 정권들을 지지한 것” 등을 들면서 말이다.

샌더스는 미국이 “미국의 시대”에 자행한 만행을 실제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제 미국의 힘을 기꺼이 제한하려 하는 것이다.

일례로 샌더스는 베네수엘라와 관련된 한 성명서에서 “미국은 부적절하게 중남미 국가에 개입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단언했고 “미국이 그 길을 다시는 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워런은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요 후보자들 중 유일하게 샌더스의 외교정책만 남반구(Global South)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CFR)가 미국-아프리카 관계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샌더스와 워런이 한 대답을 비교하면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워런은 아프리카에서 “부의 집중, 도둑정치와 부패”를 퇴치하고 “투명한 국정 운영과 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개혁을 지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샌더스는 워런의 암묵적으로 위계적인, 그러니까 미국이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식의 접근방식과는 반대로 “미국은 아프리카가 글로벌 의제를 설정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의견을 묵살하고 아프리카를 빈곤으로 몰고 간 19세기와 20세기의 제국주의/식민주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샌더스는 수 세기동안 이어진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의 억압을 뒤집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 정치의 객체가 아닌 주체인 세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샌더스가 이렇게 식민지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점령해 비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5개 지역 중 하나인 푸에르토리코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실제로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수도인 산후안의 카르멘 유린 크루즈 시장을 선거운동본부의 부본부장 중 하나로 임명했다.

결국 샌더스가 워런의 민족주의적 정치를 거부하고 전 세계에 “노동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글로벌 진보운동”을 조직할 것을 주장한다. 샌더스는 자신의 “목표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에 기반한 관계들”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얘기한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을 이끌어 왔고 지금도 워런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우월주의적, 민족주의적 가정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두 사람의 인식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워런의 민족주의적 인식틀과 샌더스의 세계주의적 인식틀 간의 차이는 두 사람이 향후 미국이 직면할 지정학적 과제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를 가져온다.

워런에게 미국이 향후 몇 년간 직면할 가장 큰 문제는 “아시아의 지배를 두고 장기적인 갈등을 겪을 중국, 유럽을 위협하는 팽창주의적인 러시아”, 그리고 “무너지는 베네수엘라의 국가 조직과 그것이 인근 국가들에 가져올 혼란”으로 대표되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 닥쳐올 불안”이다.

워런에 따르면 미국의 엘리트들은 국제관계에 대한 비전에서 계속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또, 워런은 아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서반구 전체를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역으로 상정함으로써 명백히 민족주의적인 미국 헤게모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암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샌더스는 미국이 직면할 미래 과제가 기후변화와 세계적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샌더스는 이런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인도,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샌더스는 미국이 “커다란 군대와 강력한 핵무기, 전 세계에 걸친 동맹국가와 함께 팽창주의적인 목표를 지닌 강대한 적(adversary)”을 둔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는 것을 지적한다. 오히려 현재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국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국제관계에 대해 탈국가주의적(post-nationalist understanding)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가진 막대한 힘 때문에라도 미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조차 샌더스는 미국이 국제적 협력 촉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샌더스가 마샬플랜과 UN의 창설을 미국의 2차 대전 이후의 최대 업적이라고 말한 건 이런 맥락이다.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열린 기후포럼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2019.9.19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열린 기후포럼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2019.9.19ⓒAP/뉴시스

샌더스는 세계적인 운동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할 과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 운동은 민족주의가 아닌 “함께하는 번영과 안보 및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비전“을 가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샌더스는 이렇듯 국가 간의 외교 뿐만 아니라 민중 차원(people-to-people)의 외교도 핵심적이라고 본다. 지정학에 대해 원대한 비전을 가진 것이다.

국제주의로 돌아가기

그렇다고 샌더스의 외교정책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샌더스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 기지를 어떻게 할 지에 관해 명확한 답을 준 적이 없다. 방위비를 줄이겠다고는 여러 번 얘기했지만 800여 개에 이르는 해외 미군 기지를 없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샌더스가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히면 좋을 것이다.

둘째, 워런 지지자들이 샌더스에게 상세한 정책(detailed a set of plans)이 없다고 비판하는 건 일리가 있다. 물론 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샌더스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 그러니까 미국의 외교정책 관련 논의를 확장해 미국이 세계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논의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술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미국의 기본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대통령 선거에서 내놓을 일련의 구체적인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자들이 올바른 본능을 갖추는 것이다. 샌더스는 자신이 다른 어떤 후보자보다도 미국의 힘이 가지는 한계와 비극을 이해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샌더스의 외교정책에 관한 마지막,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판은 그것이 때때로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이다.

샌더스는 기후변화와 세계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 인도 같은 권위주의적인 국가들과도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샌더스가 러시아의 블라드미르 푸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으로 구성된 “새로운 권위주의의 축”이 미국과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해 우려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샌더스가 ‘권위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역설적으로 이를 가장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입장 또한 샌더스가 밝혀준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민주사회주의적 국제주의의 전통에 부합하는 유일한 후보라는 것은 명백하다.

샌더스는 미국 외교정책의 탐욕적인 역사를 인지하는 유일한 후보이다. 그는 또한 탈국가주의적 미래를 꿈꾸는 유일한 후보이자, 미국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자기 주제로 삼는 유일한 후보이다.

샌더스가 당선된다면 그는 미국 국민이 자기 국가를, 그리고 미국과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지도 모른다.

기사출처:On Foreign Policy, Bernie Stands Alone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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