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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시 확대’가 아니라 ‘입시 폐지’로 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학 입시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대통령 연설 뒤 “교육부의 기존 입장과 동일한 맥락”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부분 전체 대학의 정시를 일괄적으로 확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그동안 당정이 다루지 않겠다고 했던 ‘정시-수시 비율’에 대한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는 더욱 확산됐다. 이런 면에서 입시제도 개편을 검토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수시 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수능 성적에 따라 줄을 세워 대학을 가는 정시 비율을 늘리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고소득층이 더 혜택을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 지역에서 정시 비율 확대 여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가며 수시 전형을 늘려왔고, 그 결과 고교 교육도 정상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다시 되돌릴 이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로는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교육정책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 입시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 탓에 사회적으로 성숙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의 근본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학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이 만연해 있다. 입시제도는 수시로 바뀌었지만, 매번 기득권층은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거나 활용해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불평등과 학벌계급을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입시제도 개편도 이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경쟁이란 전제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어떤 입시제도를 내놓아도 기득권층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필요한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외고와 자사고 등 특목고를 폐지해 고교 서열화를 해체하고 국립대학 네트워크화와 사립대 공영화로 대학 서열체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정도만 이뤄도 학생들을 살인적 경쟁에 내모는 입시제도의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립대학 네트워크화는 아예 말도 못 꺼내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대선 공약부터 철저히 이행하면서 입시 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공정’이란 이름으로 경쟁의 형식만 바꾸고 마는 정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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