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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범죄증거 무시한 검사의 이상한 핑계 “내 선에서 어쩔 수 없는 사건”
발레오전장 관련한 대법원 재판 자료사진
발레오전장 관련한 대법원 재판 자료사진ⓒ뉴스

“상고를 기각한다.”

올해 7월 25일 오전 11시 대법원 2호 법정에서 한 사업주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노조파괴 혐의가 인정된다”는 1·2심 판결에 불복한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이하, 발레오전장) 대표이사 강 모 씨가 상고해 이루어진 마지막 재판이었다. 재판의 결과는 상고 기각,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 확정. 강 씨의 노조파괴 행위가 범죄임을 확정 짓는 판결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자료들이 나왔기에, 전 재판 과정에서 모든 재판부가 일관된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명한 범죄사실이 하마터면, 검사의 손에 의해 묻힐 뻔했다.

국정감사에서 이미 결정적인 증거가 폭로되고, 고용노동부의 수사로 추가 증거자료까지 확보된 상태였지만, 담당 검사는 이를 외면했다. 관할 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이 “범죄 혐의가 명확해 보이니, 그를 기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으나, 이 또한 묵살됐다. 검사는 증거자료가 충분함에도, “증거가 없다”며 강 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수 있게 에스코트한 것이다.

이에 불복한 노동자들은 상급 검사에게 하급 검사의 결정이 타당한지 묻기 위해 ‘항고(抗告)’했다. 항고된 사건을 맡은 상급 검사는 하급 검사의 결정이 옳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던 노조파괴 피해 노동자들은 검찰의 결정이 옳은지 법원에 묻는 ‘재정신청(裁定申請)’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노조파괴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검사들은 왜 그토록 일관되게 대표이사 강 씨를 보호해주려고 애썼던 것일까?

검찰
검찰ⓒ뉴스1

“기소할지 말지는 검사가 알아서 하라”
검사의 편의를 배려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최근 대법원 재판 결과가 잇따라 나온 2010년~2017년경 노조파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공판 과정을 살펴보고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본 결과, 상당수 사건에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起訴便宜主義) 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소편의주의는 범인의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자료가 충분함에도, 검사 재량으로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제도다. 법의 재판을 받게 할지 말지를 편의상 검사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게 한 이 제도는 일본형사소송법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떡하니 명시돼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엔 검사의 비양심적인 결정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하급 검사가 내린 결정이 타당한지 상급 검사에게 묻는 ‘항고’가 있고, 또 검사가 처분한 것이 타당한지 법원에 심사를 요청하는 ‘재정신청’이 있어, 제도의 남용과 악용을 방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발레오전장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상당수 노조파괴 사건은 대부분 이 과정을 모두 밟고 재판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2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
지난 2012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민중의소리

실체가 드러난 노조파괴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수십억원을 쓸어 담았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업체들에서 이루어진 노조파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회사는 노조가 파업할 것을 예상하고, 사용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대체인력을 대거 채용한다. 공장 외부에 대체생산 설비를 미리 구축해 놓은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경비 업무를 외주화시키는 방식 등으로 노조의 파업을 유도한다. 노조가 정말 파업에 나서면, 직장폐쇄를 단행해 파업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는다. 본 공장이 멈춰도, 외부 생산시설이 이미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회사는 큰 피해 없이 직장폐쇄를 이어간다. 일을 안 한 노동자에겐 임금을 안 준다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들먹이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의 월급을 자른다. 이를 버티지 못한 노동자들은 노조를 등지고 울며 겨자 먹기로 복귀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회사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방식이다.

또 이 과정에서 대체인력이나 용역깡패를 이용해 끊임없이 노조를 자극하면서 불법을 유도한다. 만약 극단의 상황에 몰린 조합원 중 일부가 사측의 이런 행태에 맞서면 각종 고소·고발을 넣어 노조원들의 숨통을 조인다. 조합원들의 성향을 가려내 회유가 가능한 이들에 대해선 사측 노동자가 만든 제2노조에 가입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점점 기존의 노조를 무력화·와해·파괴한다.

2010년~2012년경 진행된 발레오전장의 노조파괴도 비슷했다. 파업을 유도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업무에 복귀한 일부 조합원들을 이용해 ‘조조모’라는 단체를 결성하게 해, 기존의 노조를 와해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2년 9월 23일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현재 성남시장)이 창조컨설팅 내부자로부터 제보 받은 문건을 공개하면서다. 이 중 일부 문건엔 상신브레이크, 영남대의료원 등 노조가 무너졌거나 약화된 수많은 사업장이 적시 돼 있었고, 또 일부 문건엔 발레오전장에 관한 상세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있었다.

발레오전장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노조파괴를 진행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폭로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금속노조와 발레오전장 등 노조파괴 사업장 노조는 검찰에 창조컨설팅과 발레오전장 등을 노조파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큰 파장을 낳은 폭로였기에, 검찰과 고용노동부는 곧바로 사건을 관할 지검·지청에 분배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11월 9일엔 관계 사업장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너무 늦은 압수수색이었지만, 수사기관은 일부 추가 증거자료를 확보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관련 자료사진
압수수색 관련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근로감독관 의견묵살, 증거외면, 항고기각…
검사 이상한 핑계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없어”

하지만 노조파괴 혐의가 재판으로 이어지기까진 지난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확보된 결정적 증거들을 토대로 혐의가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사업주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봤지만, 검찰은 이 의견을 무시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한 근로감독관은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노조파괴 혐의 사업주) 신변에 대해서 과장과 협의해서 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저는 자료를 보고 객관적인 판단만 했을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 내용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에 불공정하게 수사가 이루어진 각종 노동사건과 고용노동행정을 규명하기 위해 2017년 11월에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보고서에도 담겼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가 출범 이후 2018년 7월까지 수만쪽 분량의 노동부 문건을 살피고, 90여명의 전·현직 공무원들을 인터뷰해서 문제점을 도출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온다.

‘고용노동부 경주지청은 기소의견으로 수사보고 했음에도, 검사의 수사지휘에 따라 범죄사실에 대하여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함.’

근로감독관이 발레오전장 노조파괴 혐의를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올리려 했지만, 이 의견을 계속해서 돌려보내는 방식 등으로, 노동부 의견을 강제로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하게끔 수사지휘를 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에서 활동한 김상은 변호사는 “당시 근로감독관들이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며 “발레오전장, 유성, 보쉬전장 등 노조파괴 사업장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기소의견으로 판단했는데, 검찰이 다 혐의없음으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만 기소의견으로 보내고, 대부분 불기소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고 조사 내용을 설명했다.

발레오전장 노조파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대구지검 경주지청 천 모(사법연수원36기) 검사였다.

천 검사는 노조가 고소한 날로부터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2013년 12월 30일에서야 이 사건을 법원으로 넘기는데, 대부분의 범죄사실에 대해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은수미 의원이 결정적인 증거를 폭로하고, 노동부의 압수수색으로 모든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났음에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천 검사는 불기소이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발견된 문건에 대해) 창조컨설팅 대표 심종두, 전무 김주목 등은 강 발레오전장 대표의 다양한 질문에 대비하기 위한 내부 검토용으로만 사용했다고 진술하고 있고, 위 전략회의 문건 등 노조 조직 변경에 관한 문건이 발레오에서 발견된 바 없으며 … (그렇기 때문에) 직접 관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시나리오가 있고, 시나리오대로 노조파괴가 진행된 정황이 모두 포착됐음에도, 노조파괴 혐의를 받고 조사를 받고 있는 또 다른 피의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것이다. 천 검사가 근거로 댄 진술자 심종두, 김주목 등은 모두 이후 대법원에서 노조파괴 혐의로 구속된 이들이다.

반면, 노조파괴 피해 노동자들에 대해선 가혹하고 재빠른 수사가 이루어졌다.

회사의 부당함에 잔업 거부와 부분파업 등을 주도했던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장에 대해선 업무방해를 했다는 혐의로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정 전 지회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경찰도 의아해했다. 파업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크게 부딪힌 일도 없는데,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체포되는 상황이 정말 이상했다”고 말했다.

천 검사 개인 소신으로 집행한 공권력 행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속되어 검찰조사를 받았던 정 전 지회장은 천 검사로부터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정 전 지회장은 “그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다스 등으로 한참 문제가 됐을 때인데, 그런 점들과 관련 있지 않을까”라고 추정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납득할 수 없었던 노조는 상급 기관인 대구고등검찰청에 항고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26일 돌아온 대구고검의 항고사건처분통지문의 내용은 ‘항고기각’. 천 검사보다 높은 직위의 선배 검사인 심 모(사법연수원24기) 검사는 항고사건처분통지서에서 딱 한 문장으로 항고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일건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결과 이 항고는 이유 없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열심히 검토했지만, 기소할 만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4년 5월 26일 심 검사는 발레오전장지회에서 낸 항고를 기각했다.
지난 2014년 5월 26일 심 검사는 발레오전장지회에서 낸 항고를 기각했다.ⓒ기타

“법원이 그렇다면야…” 라면서도
“검찰, 법원에 증거 제출도 안 해”

노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6월 10일 노조는 대구고등법원에 천 검사의 불기소 처분과 심 검사의 항고기각 결정이 타당한지 묻는 ‘재정신청’을 제기했다.

대구고등법원은 노조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재정신청 인용률이 평균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 사건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그만큼 법관들이 보기에 노조파괴 혐의 증거가 충분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법원이 기소하라고 한 뒤에야, 검찰은 “유죄 입증이 가능할 만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 최종적인 판단 권한은 법관에게 있기에, 법원이 본 건에 대해 현 단계의 입증만으로 유죄를 선고한다면, 검찰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이상한 소결을 붙이며, 발레오전장 대표이사 강 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공판이 진행됐지만, 검찰은 나오고 싶지 않은 자리에 억지로 끌려 나온 모습이었다.

검찰이 확보된 각종 증거를 대며, 필요하면 추가 증거를 대며 노조파괴 혐의 입증에 주력하는 방식으로 전개됐어야 할 공판(公判)은 매우 답답하게 진행됐다. 노조 측이 검찰에 여러 차례 사측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추가 증거와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검찰이 법정에서 이를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을 맡았던 김태욱 변호사는 “검사가 고소인들이 제출한 증거를 캐비닛에 담아둔 채 법정에 제출하질 않아서, 우리가 법원에 별도로 제출했어야만 했다”며 “(검찰이 직접 제출하지 않고) 이렇게 제출될 경우, 정식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그저 참고자료가 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은 1심뿐만 아니라 2심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한다.

혐의 입증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은 검찰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결국 1심, 2심, 대법원 재판 모두 발레오전장 대표이사 강 씨의 노조파괴 혐의가 인정된다는 판결로 결론이 났다.

1심 재판부는 “노조 활동의 자주성을 침해한 것으로 그 죄질이 좋지 못하다”라고 했으며, 2심 재판부 역시 “충분히 (혐의가) 인정된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고,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위법은 없다”고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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