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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다산 정약용이 남긴 ‘국민 교양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개정판 출시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다산 정약용의 편지들을 정리해 출간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발간 40주년을 맞아 재개정판이 나왔다. 정약용이 유배 시기 절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들을 엮은 이 책은 대학자 이전의 인간적인 다산의 면모를 만날 수 있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방관 이종영에게 주는 글을 새롭게 추가했고, 시대 변화에 맞추어 번역과 체제, 장정을 정비했다.

이 책의 편역자이자 대표적 다산학 연구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섯 번째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세상에 공개하려고 저술한 책에서는 인간 다산의 속마음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아들‧형님‧제자들에게 보낸 그의 사신(私信)에는 깊은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둘째형님께 보낸 편지/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에는 아들들이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기를 입에 닳도록 이야기하는 모습(1~2부), 다산과 마찬가지로 귀양살이를 했던 둘째 형님 정약전을 안부를 물으며 깊고 넓게 학문을 토론하는 모습(3부), 제자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온갖 지혜를 전수하려는 모습(4부)이 각각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단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들들에게 주는 편지글이다. 다산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游)가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엄격하게 격려했다. 이 편지들에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슨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빛나는 명언들과 함께, 불의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다산의 매서운 선비정신이 담겨 있다. 편지를 읽다보면 참다운 길을 가도록 준엄하게 꾸짖는 다산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애끊는 부정(父情)이 넘친다.

또한 어렵고 어두운 유배생활에서 자신의 고달픈 삶을 토로하지 않으면서도 아들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버지의 바람을 자상히 기술하고 있어 마음을 울린다. 몰락했다 하여 자신의 일가를 스스로 ‘폐족’이라고 부르고, 그런 폐족일수록 독서와 공부에 더욱 노력해야만 함을 거듭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아버지이자 주변부 선비인 다산이 느꼈을 인생의 쓴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나 패배감에 그치지 않고 더 올곧은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아들들에게 권하는 모습에서는 다산다운 강인한 기개가 느껴진다.

제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에는 생계를 꾸리는 방법, 친구를 사귈 때 가려야 할 일, 친척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 등 다산의 생활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다산 자신의 저서를 후세에 전해달라는 전언과 함께 저술의 과정과 원칙을 정제해 제시하고 있어, 다산 사상의 큰 줄기를 압축해놓은 글로 읽기에 유익하다.

제3부에는 정약용의 강진 유배와 비슷한 시기에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둘째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들을 실었다. 이들 형제는 유배 중에서도 서간을 주고받으며 변함없는 우애를 나누었다. 정약용은 자신보다 더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형님의 건강을 염려하고 지극한 마음을 전한다. 특히 두 형제는 심도있는 학문 주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유배지에서도 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실함을 바탕으로 ‘목민심서’ 등 정약용의 빛나는 저작들이 탄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형과 아우가 동시에 불행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서로 학문적 깊이에 탄복하며 인생을 토로한 높은 수준의 서간문학이다.

제4부는 정약용이 제자와 지인에게 써 보낸 글을 선별한 것으로, 자상한 스승의 마음씨와 더불어 다산의 넓고 깊은 학문세계가 드러난다. 학승 초의선사를 제자로 삼고 시와 선에 대한 깊은 담론을 펼친 것은 너무도 훌륭한 문학론이며, 19세의 어린 소년으로 해배 후 찾아온 이인영에게 해준 이야기는 뛰어난 문장론이다. 지방관 이종영에게 남긴 두 편의 글은 목민관의 자세를 다룬 내용을 담아 ‘목민심서’의 축약처럼 읽힌다.

200여 년 전 척박한 남도 땅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한 외로운 학자의 편지가 이렇듯 오랜 기간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다산 정약용은 오늘날 조선 후기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된다. 경학(經學)과 경세학(經世學)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저술들을 남겼고, 짧지만 출세를 통해 뛰어난 재능을 실천한 바도 있다. 추사 김정희, 정인보 등 후대의 학자들도 다산을 최고의 학자로 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배생활 이후 별세할 때까지 삶의 긴 기간 그에게는 괴롭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 편지들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인간 정약용의 고통, 그리고 역경을 견디며 극복하는 적극적인 자세, 가족과 제자들을 돌보는 진솔한 내면은 그 어떤 다산의 책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해준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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