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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고졸 출신이 장벽 넘으려다…” 윤중천 상황 이입해 ‘성폭력 무죄’ 준 법원

‘별장 성범죄’ 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1심에서 각종 성폭력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십 명의 여성에게 강간·성추행·불법촬영 등 온갖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 속에서도 극히 일부 혐의만 인정돼 기소됐으나, 그마저도 법원은 면죄부를 줬다.

이에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강간문화로 유지되는 남성 카르텔을 법원이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여성 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또 한 번 회피했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8) 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9.05.22
‘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8) 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9.05.22ⓒ김철수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15일 윤 씨의 강간치상·특수강간 등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공소 기각 등 판결을 내렸다. 다만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알선수재 등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14억 8천여만 원 추징도 명령했다.

이 사건이 ‘별장 성범죄’로 불린 만큼, 윤 씨의 핵심 혐의는 강간죄였다. 윤 씨는 A 씨를 2006년 겨울경부터 이듬해 11월 사이 3차례 성폭행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불법 촬영물 등으로 협박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과 성관계를 맺도록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의 쟁점은 강간죄에 대한 공소시효였다. 마지막 피해가 12년 전인 2007년 11월에 발생해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조사를 통해 공소시효가 15년인 강간치상 혐의를 윤 씨에게 새롭게 적용했다. 윤 씨에 의한 성폭력 피해로 2008년 3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A 씨의 의료 기록을 근거로, 정신적 상해를 인지한 진단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강간 피해와 정신적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윤 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의 진술을 의심하며 “피해자의 PTSD가 당시 강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본 뒤 “다른 사정들에 의해 PTSD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A 씨 측 이찬진 변호사는 “(피해와 상해 사이) 인과관계에 일정 정도 의심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며 “가해자들이 표현한 성 접대 프레임과 달리 피해자가 겪었던 성폭력 피해 부분을 구분해서 판단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뉴시스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했다. 재판부는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특수강간의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됐지만, 윤 씨 사건은 개정 전 발생해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면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개별 강간 혐의 중 2006년 피해는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2007년 피해는 고소 기간이 지나 공소시각 결정한다고 밝혔다.

윤 씨가 A 씨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불법 촬영했다는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번복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점, 실제 불법 촬영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해 사실 자체가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자리에 본인이 참석했고, 사람이 많았다면 헷갈릴 가능성이 있음에도 피해자 진술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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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재판부는 특히 양형이유를 밝히며 윤 씨의 처지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씨는 시골, 고졸 출신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던 중 장벽을 넘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하다가 성범죄·사기 등 범행을 저질렀다”라는 취지로 윤 씨 삶의 경로를 읊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재판부가) 가해자에 빙의한 듯 말을 했다”라며 “성범죄 피해자를 겪은 여성들이 눈앞에 둔 장벽은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피해자는) 가해자끼리의 연대, 경찰·검찰·법원의 연대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 등 장벽을 넘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이 사건을 성범죄가 아니라 ‘성 접대’로 보고 과거에 뇌물죄를 적용했으면, 윤 씨가 법정에 정상적으로 설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을 탓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씨의 별장 성범죄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하므로 양형의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선고 직후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사법부는 사실상 오늘 죽었다. 사법부가 말하는 정의는 무엇이냐.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혀도 되는 것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오늘 재판은 별장 성범죄 피해 사실 6년 만에 가해자에 대한 첫 선고다. 그런데 법원은 여성을 성적 도구화해 자신들의 유흥과 이익을 위해 거래하고 착취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라며 “성인지적 관점에서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 절실한 이 시점에 오늘 법원은 간절한 여성 시민의 호소를 묵살했다”라고 비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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