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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자유로운 앙상블의 충만한 조합
JB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
JB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제공 = JB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

하마터면 배장은의 새 음반 이야기를 빠트릴 뻔했다. 배장은이다. 무려 배장은이다. 한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를 이야기할 때 혹시라도 배장은을 거론하지 않으면 모두 엉터리다. 곽윤찬, 송영주, 이선지, 이지영, 임미정, 임인건, 조윤성, 한지연, 허대욱과 고희안, 남메아리, 윤석철, 이명건, 이지연, 이한얼, 전용준 등의 재즈 피아니스트들을 이야기할 때 우열을 가리기는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배장은이 2006년부터 지금까지 내놓은 6장의 음반 증 하나라도 놓친다면 2000년대 이후 완전히 다시 쓴 한국 재즈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배장은은 그만큼 중요한 뮤지션이어서 이제 중견이라는 호칭이 당연하다.

그런데 배장은은 2013년 음반 ‘JB’를 내놓은 후 6년이나 새 음반을 내놓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침묵이 길어지는 이유는 바쁘거나 지쳤거나 둘 중 하나. 음악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여성 뮤지션의 현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뿐. 그래서 ‘JB Liberation Amalgamatio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새로운 음반은 오랜 기다림을 뽀득뽀득 씻어내기 충분하다.

“조합이 빚어내는 자유로운 앙상블”

제이비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구축한 퀄텟의 특징은 젊은 한국 재즈뮤지션들과 함께했다는 점이다. 기타 이수진, 베이스 신동하, 드럼 신동진으로 구성한 멤버 중에는 배장은의 이전 음반과 달리 해외 뮤지션이 없다. 그럼에도 자유와 합동을 표방하는 팀의 지향을 표현하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다.

음반 수록곡 8곡 가운데 제프 버클리의 곡 ‘Grace’와 스팅의 곡 ‘A Thousand Years’를 제외한 곡들은 대부분 배장은이 썼다. 두 번째 곡 ‘Zahara De La Sierra’만 신동하의 작품인데, 모든 편곡을 함께했다고 썼을 만큼 음악에는 네 뮤지션의 손길이 고르다. 실제 연주를 들어도 배장은 쪽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는다. 배장은은 이수진, 신동하, 신동진과 대등하게 역할을 배분하고 여일하게 퀄텟다운 연주를 들려준다. 네 명의 연주자는 한 곡 안에서 듀오, 트리오, 퀄텟의 구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계속 만나고 헤어진다. 각각의 조합이 빚어내는 자유로운 앙상블의 충만한 조합은 이 음반의 가장 큰 동력이며 매력이다. 누구도 두드러지지 않는 순간이 없고, 허술하지 않는 데다, 잠시도 매끄럽지 않은 어울림이 없다. 한 명의 뮤지션이 떨어뜨린 물방울 같은 울림에 다른 뮤지션이 어떻게 반응하며 조화를 이루는지, 그래서 첫 울림이 어떻게 이어지고 번지는지, 계속 이어지는 울림 속에서 각자의 뮤지션들이 어떻게 조응하며 곡을 쌓고 자신의 색을 입히는지, 제이비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의 연주는 느끼며 파악하고 그리며 듣는 순간의 연속이다.

첫 곡 ‘감출 수 없는 비밀’을 시작하는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휘감는 이수진의 몽롱한 기타 연주는 이 음반이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계속 들려주면서, 근사한 앙상블로 채울 것임을 예고한다. ‘감출 수 없는 비밀’에서 배장은에 이어 배장은&이수진&신동하&신동진으로 이어지는 연주는 다시 배장은의 솔로로 돌아와 멜로디 메이커 배장은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배장은은 연주를 독점하지 않는다. 그는 곧 뒤로 물러나고 이수진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다른 소리의 순간들을 이어간다. 첫 곡에서 연이은 등장과 퇴장으로 연출한 조합은 ‘감출 수 없는 비밀’의 아련함을 더 내밀하고 자유롭게 확장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각자의 플레이로 하나의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물들일 줄 아는 연주는 모두가 서로의 배경이자 중심 없는 중심이 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직 듣는 이들만 행복해질 것이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기를”

두 번째 곡 ‘Zahara De La Sierra’에서는 아예 이수진이 곡을 주도한다. 역동적으로 스페인의 시에라를 더듬는 기타 연주는 안정적이며 풍부한 베이스 연주와 무정형의 드럼 연주로 한층 멋스럽다. 곡의 중반에서 들려주는 듀오와 트리오, 퀄텟 사운드의 교차는 여행의 역동을 충분히 재현한다. 변화무쌍하기로는 ‘모란봉’도 만만치 않다. 터트리며 속주로 잇는 연주의 명쾌함이 멜로디컬한 즉흥연주로 이어지는 순간은 짜릿함의 연속이다. 배장은의 플레이는 일관되게 다정하면서도 농염하고, 이수진의 기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 음반에서도 라이브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재즈는 순간의 변화가 전체를 뒤흔들고 판가름하는 장르인데, ‘모란봉’의 숨 가쁜 인터플레이와 사이키델릭한 여운은 다른 곡의 서정이 팀의 전부가 아님을 내비친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모란봉의 변화무쌍을 절감할만큼 네 연주자의 플레이가 싱싱한 곡이다.

반면 ‘피보나치 보름달’은 편안하고 여유롭다. 기타와 피아노의 협연에 베이스의 농밀함이 이어지는 연주는 그 자체로 수학자보다 달빛 흐뭇한 밤이다. 그리고 제프 버클리의 곡을 편곡한 ‘Grace’는 원곡보다 격하고 비감하다. 곡의 뼈대는 일렉트릭 기타가 주도하는데, 다른 연주자들은 즉흥연주의 맛을 더 짜고 맵게 요리한다. 순간의 손맛은 내내 오묘하고 짜릿하다. 배장은의 1집에서 짧게 마무리했던 ‘Liberation Amalgamation’은 이번 음반에서 앞선 세 곡의 패기를 잇는 자유분방한 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 음반의 수록곡들이 일관된 메시지나 의미 있고 통일된 서사를 구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팀의 이름과 동일한 연주의 태도는 서로 다른 곡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기 충분하다. ‘A Thousand Years’에서 연달아 선보이는 연주의 다채로움과 자신만만함은 배장은의 새로운 조합이 성공적임을, 지난 9월에 내놓은 이 음반이 올해의 주요한 재즈 작품임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한다. ‘Feel Like’의 펑키한 연주까지 들으면 안다. 다른 주제와 리듬에도 불구하고 번잡스럽지 않고 꽉 찼으면서도 자유롭다는 여운을 남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오직 듣는 이들만 행복해질 것이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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