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친고죄 폐지’ 잊은 법원, 피해자 처벌불원에 ‘성폭행 강지환’ 집행유예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배우 강지환(42·조태규)이 1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9.07.12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배우 강지환(42·조태규)이 1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9.07.12ⓒ김철수 기자

술에 취한 여성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배우 강지환(본명 조태규·42) 씨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약 5개월 만에 석방됐다.

법원은 강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면서도, ‘피해자들과 합의했다’ 등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에 법원이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합의’하면 처벌을 면해준다는 메시지를 줘, 사실상 ‘친고죄 폐지’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최창훈)는 5일 준강간·준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강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 120시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3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강 씨가 여성 1명을 강간하고, 다른 1명을 강제 추행한 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강 씨가 피해자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점도 인정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 측이 강 씨를 ‘용서했다’라고 추정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들이 입었던 피해 내용, 사건 당시 강 씨의 사리 분별 능력 정도, 피고인에 대한 현재 피해자들의 감정 상태 등을 주변 사정으로 참작했다“라고 밝혔다.

강 씨 혐의가 인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주요 양형 이유는 ‘피고인에 대한 현재 피해자들의 감정 상태’인 것이다. 재판부는 강 씨 측이 지난달 21일 결심공판에서 제출한 피해자 2명과의 합의서, 처벌불원서를 근거로 피해자의 감정 상태를 해석했다.

피해자의 ‘처벌불원’이 감형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 씨 혐의 중 일부인 성폭행 양형기준이 2년 6개월~5년인 점, 피해자가 2명인 점, 강 씨가 혐의 일부를 부인한 점 등을 고려하면, 재판부가 강 씨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배우 강지환(42·조태규)이 1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고 나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2019.07.12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배우 강지환(42·조태규)이 1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고 나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2019.07.12ⓒ김철수 기자

합의 경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합의서 등을 근거로 피해자의 감정을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위험하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피해자가 자신보다 대단한 상대를 고소한다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합의했을 수도 있다. (피해 이후) 일단 신고는 했지만, 이후 (가해자 측이 자신을)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에 합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합의가 주요한 양형기준으로 들어가면 가해자들이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송 사무처장은 “성폭력 사건은 주로 업무·혈연 등 긴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 사건도 업무상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더 집요하게 괴롭히며 합의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6월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됐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가해자가 재판에 넘겨질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성범죄 친고죄 폐지 전까지 피해자는 가해자의 ‘합의 종용’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는 사례가 많았다. 가해자가 법정에 서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강 씨 사건 재판부는 친고죄 폐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친고죄가 있던 시절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고 지인들까지 괴롭혀 합의를 종용했었다. 피해자 의사에 의해 합의한 게 아니었다”라며 “이 판결 이후 모든 가해자가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 어떻게든 합의를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 감정 상태’를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하면서도 “성범죄 특성상 피해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보기 어렵다. 강 씨는 합의가 됐다는 점에 그쳐서는 안 되고,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물기를 생을 다할 때까지 참회하는 것이 맞다”라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법원, 강지환 어려웠던 무명시절까지 고려해
“여성 있기에 사람 있다” 차별적 인식까지

재판부는 가해자가 힘들게 살아온 점을 고려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강 씨는 주변 사람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강 씨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려웠던 무명시절을 거쳤고, 나름 성실하게 노력해왔다고 글을 적어 냈다”라며 “그 글 내용이 진실이길 바라고, 강 씨가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다짐이 진심이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강 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만을 걱정했다. 강 씨는 “이 자리에 서기 위해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라며 “힘들게 올라온 만큼 그 자리에 있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더 늦기 전에 예쁜 가정도 끄리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여성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강 씨에게 “여성이 있기에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고 앞으로 더 노력해서 밝은 삶을 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재판부는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기준으로 여성을 타자화하는 발언이다. 여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차별적 관점이 깔려있다”라며 “이런 재판부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니 참담하다”라고 비판했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