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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주노동자에게 가짜 종이돈 주는 악질 고용주가 말해주는 것

이주노동자를 ‘현대판 노예’로 악랄하게 착취한 사례가 발각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경북 영천시에서 농장파견용역업체를 운영하는 한국 사장 A씨는 지난 2년간 이주노동자들에게 임금 대신 자기가 만든 장난감 종이 쿠폰을 일당으로 지급했다. ‘가짜 종이돈’으로 임금을 받은 피해자 규모는 200여 명 정도로 피해액은 3~4억원대 규모라고 한다.

이 용역업체를 통해 농장일을 소개받은 이주노동자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12시간을 마늘, 양파, 사과 농장에서 일을 하고 일당 7만 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용역업체 사장으로부터 돈을 제때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1만원, 5만원, 7만원, 10만원이라고 써있는 종이 쿠폰을 현금 대신 받았다. 게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악용해 신고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너희들이 신고하면 벌금을 받거나 잡혀갈 수 있다. 딸과 사위한테도 문제가 생긴다.”라면서 겁을 주고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언젠가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희망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우리 근로기준법에서는 임금 지급은 현금으로, 근로자에게 직접, 전액을,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가짜 종이돈’을 준 용역업체는 근로기준법 43조를 위반하였기에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대상이다. 업체 사장은 지불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는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는 인식 탓에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고통을 준 죄질을 감안 할 때 용역업체 사장은 구속으로 죗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 ‘현대판 노예’라고 불릴 정도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가짜 종이돈 사건이 아주 희귀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연한 임금체불이 그렇다. 참여연대가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분석한 임금체불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임금체불피해 노동자 수와 임금체불액은 꾸준히 증가하여 2018년에는 약 57만 명의 피해 노동자와 1조 7,445억원의 체불액을 기록하고 있다. 임금체불은 노동력을 팔아 생활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일임에도 체불사업주는 꾸준히 늘고, 법과 행정은 제대로 된 피해구제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국가 중 7번째로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여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선전하는 시대이다. 첨단기술과 혁신,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며 위기의식이 조장된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선진국이고 누구를 위한 혁신과 경제성장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류역사가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선 이후 짧은 기간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발전도 있었지만 노예제, 식민지와 같은 대규모의 착취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가짜 종이돈을 받은 이주노동자들만을 현대판 노예라고 할 수 있을까. 57만명의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 산재로 사망하는 하루 6명의 김용균, 853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현대판 노예라고 부르는 것이 지나칠까.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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