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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강사법' 빈틈 노린 대학의 횡포와 안타까운 죽음

동해안별신굿은 동해안 일대에서 어민들이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치러온 전통 의식으로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굿이다. 그런데 지난 13일 이 동해안별신굿의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고인은 4대째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악사로 살아오며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이 굿을 전승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겸임교수로 활동해온 김 씨를 가까이서 봐온 지인과 유가족에 따르면 최근까지 그를 괴롭힌 건 학교로부터의 해고통보였다고 한다. 전화 한 통으로 출강이 사실상 거부되자 크게 낙심했으며 수입도 끊겨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던 차였다. 전승지원금으로 매달 68만원으로 받았지만 이 때문에 실업급여 혜택도 온전히 받을 수 없었다.

이 죽음의 배경에는 지난 국회에서 의결된 새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이 놓여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전담해온 비정규교수의 불안정한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용과 처우를 개선하자는 게 입법의 골자였다. 그러나 이 법의 빈틈을 교묘히 노린 대학 측들이 비정규교수에게 지불할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길게는 수십 년 간 대학 강단에서 수업을 해온 교원들을 대량해고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상반기 동안 재계약 불가로 해고된 이들만도 전국적으로 1만명을 웃돈다.

고등교육 서비스를 비정규직 교원의 저비용구조에 맡겨 이윤을 뽑아내고 인력통제까지 추구해온 대학들이 지난날의 악질적 시간강사제도의 폐해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의 한계를 악용해 새로운 고통을 양산하는 꼴이다. 새 강사법은 관련 학위가 없어도 전문경력을 인정하여 예전처럼 출강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도록 열어두었지만 오히려 이들을 매몰차게 몰아낸 대학들이 많다. 김 씨 역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지난 20년 넘게 가르쳐온 대학 측이 새 강사법을 언급하며 알려온 무성의한 냉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단 김 씨 뿐이겠는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별도의 교습을 벌여서라도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예술강사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새 강사법의 허점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정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현장의 요구에 턱없이 미달하는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강사고용안정지표를 대학재정지원사업들과 연계하겠다는 애초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여전히 비용을 기준으로 비정규 교원들의 생사여탈권을 틀어쥐려는 대학들의 비정한 태도를 근절시켜야 한다. 사람을 살리자는 법이 도리어 사람을 죽이는 법으로 악용되는 이 악순환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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