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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당신과 당신 옆 사람의 이야기
경마 자료사진
경마 자료사진ⓒ사진 = 뉴시스

경마 기수는 승마선수들처럼 부잣집에서 어릴 때부터 말 타는 것 배운 특별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대학 시절 경찰을 꿈꾸다, 뒤늦게 기수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젊은이였다고 한다. “마사회 하면 공기업이고, 경마의 꽃은 기수”라고 듣고, ‘좋은 직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수 양성소를 나와 대한민국에 100여명 밖에 없는 경마 기수가 되었다.

사고나 부상이 잦은 일터라는 핑계로, 조교사-팀장-기수, 말관리사 사이에 위계가 엄격했다. 위험한 순간엔 욕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같은 얘기 두 번 안 듣는, 센스도 좋고 성실한 기수였다. 그의 팀장이었던 말관리사는 험한 말로 가르쳐도 감사히 받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서 정이 가던 ‘태도가 좋은’ 기수였다고 기억한다.

초반 5년 정도는 성적도 아주 좋았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월등한 기수였다. 우승하면 꼭 같은 마방 소속 사람들을 모두 불러 거하게 회식을 했다. 선배들은 ‘매번 안 그래도 된다. 너도 성적 좋을 때 돈 챙겨야지’ 잔소리를 하면, “내가 혼자 우승한 거 아니다. 우리 식구들이 말 관리 잘 해줘서 우승한 거다. 이 정도 사는 거 당연하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가족들까지 불러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일년에 서너 번은 챙겼다고 한다. 같은 마방 말관리사들에게 겨울이면 핸드크림이나 내복, 여름에는 모자며 선크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 시절 조교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주변에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적당히 해도 된다’하고 얘기하면, ‘형, 저는 미안한데, 조교사가 경주 뛰다가 뛰어내리라고 하면 뛰어내릴 거예요’ 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하기도 했단다. 조교사가 시키는 대로 ‘성실히’ 살다보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 믿는 순진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부산경남 경마공원 입구.
부산경남 경마공원 입구.ⓒ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

하지만 세상은 단순하지 않았다. 말의 훈련과 경주를 책임지는 조교사는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 작전 지시는 매번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떤 때는 ‘적당히 타고 들어오라’는 것이 작전이 되기도 한다. 한국마사회법은 ‘경주에서 말의 전 능력을 발휘시키지 아니한 기수’를 중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다. 조교사의 작전 지시를 따르면 범죄자가 되지만, 작전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말 탈 기회를 주지 않는다.

5년차가 되던 즈음, 조교사의 작전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열심히 말을 몰아 2등으로 들어온 뒤로 그의 삶은 꼬여버렸다. 경마는 기수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나쁜 말을 주거나 말 탈 기회를 주지 않으면 성적이 좋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을 성적이 나쁜 기수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는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 자비 들여 해외 연수도 다녀오고, 열심히 공부해 조교사가 되었다. 조교사가 되어 마방을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마사회에서 마방을 내주지 않았다.

몇 년 연달아 마사회 내 누군가와 친해 내정돼 있었다던 사람에게 신규 마방 대부가 결정됐다. 주변에서 ‘너도 방을 받으려면, 높은 분들 밥이라도 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2019년 11월,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예전에 없던 예비합격자까지 소문대로 결정된 상황. 이는 앞으로도 몇 년 간은 기대하지 말라는 마사회 측 선포나 다름없었다. 희망을 잃은 그는 눈에 밟히는 부인과 아이들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늘로 사망 57일 째를 맞은 부산경마공원 문중원 기수 이야기다. 유족들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설 연휴에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한국마사회 측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4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 정문 앞에서 열린 마사회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1.04
4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 정문 앞에서 열린 마사회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1.04ⓒ김철수 기자

그런데 문중원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좋은’ 직장이라는 말을 듣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이런 직장이 있나 싶게 절망스러웠단 이야기. 좋은 일 있으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밥도 사고 술도 얻어 먹으며 이어지는 일상적인 일터의 리듬이 직장 생활에서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상급자와 어느 순간 틀어졌다는 이유로, 매출이 좋지 않아 밥값 못 하고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업무로 옮겼는데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아침에 깨져 버리더란 이야기.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들 그러니 참아 보자’는 충고를 듣고, ‘성실하고’ ‘태도가 좋게’ 꾸역꾸역 참았단 이야기. 해결책이 안 보이는 상황에 짓눌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져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일 하다,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많은 노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한국에서 한 해에 1만 3천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하루 평균 37명, 2시간 당 3명씩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이들이 심신이 고단해 삶을 내려놓도록 하는 요인 중 가장 많은 것이 직업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 중 약 70%는 죽기 전 직업 관련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경마기수 문중원의 얘기가 아니다. 월요일 출근길이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길’ 같이 느껴지고, 종종 퇴직하고 카페 차리는 꿈을 꾸지만 사실은 이른 퇴직은 생각도 하기 두려운, 가끔은 일과 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출구가 안 보인다고 느껴지는 당신의 이야기다. 우리 옆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노동자와 시민들이 문중원의 짧은 생을 함께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설연휴 셋째날인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 마련된 고 문중원 기수의 시민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2020.01.26
설연휴 셋째날인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 마련된 고 문중원 기수의 시민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2020.01.26ⓒ김철수 기자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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