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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사회의 안전을 위해 철거된 죽음

어느덧 극심한 공포의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되었다. 격리와 단절이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안전이 되었다. 누군가는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근대 이후의 오래된 통념이 깨지는 사회적 순간이 도래했다고 말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개별적인 몸들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퍼지는데 유용한 하나의 호흡네트워크 였던 것이다.

방역당국은 새로운 바이러스 대응법으로 서로 간의 접촉을 피할 것을 우리 사회에 주문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역 방향은 ‘과도한 대응’인데, 이 때문인지 정부의 대응이 과도하면 할수록 유능한 정부라는 인식이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얻었고, 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도와 경향에 대한 정보들이 축적되고 있다.

코로나19 경향 중 하나는 전례없는 ‘빠른 전파력’이다. 이는 신천지교회의 대규모 집회를 빠르게 관통했다. 모든 언론은 이들의 ‘반사회성’이 감염의 원인인듯, 연일 신천지 특집을 내놓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소재 신천지교회를 폐쇄하겠다고 밝힌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천지예수교 서대문시온교회에 폐쇄를 알리는 공문이 붙여있다..   2020.02.21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소재 신천지교회를 폐쇄하겠다고 밝힌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천지예수교 서대문시온교회에 폐쇄를 알리는 공문이 붙여있다.. 2020.02.21ⓒ김철수 기자

하지만 코로나19의 빠른 전파력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은 어떤 밀집의 양상이다. 신천지교회로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 정신병원과 장애시설에 감금된 사람들은 단순히 모여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폐쇄되었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감금되었든 사회적으로 밀려나 모여들었든, 이 사회가 안전하다는 상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엄폐물처럼 존재해왔다.

어느 시대나 전염병과 이단종교, 감금된 사람들이 있어 왔다. 그것들이 특정 조건에서 ‘발흥’할 때 우리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이 사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우리와 같은 호흡네트워크 안에서 나의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각성하게 된다. 각성된 위험은 생존과 안전을 위해 새로운 연결의 원리들을 발명하는 사회적 힘으로 모여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안전하게 연결될 권리들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수고 보다 혐오와 공포의 전파력이 훨씬 빠르다. 그것은 정확히 코로나19 이전, 우리 사회가 그려낸 차별과 배제의 경로, 불평등의 경로가 만든 고르지 못한 호흡네트워크의 지도를 따라 전파된다.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대응’은 외신들이 보도하듯, 이러한 지도를 충실히 그리고 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바이러스의 경로를 차단하고 확산의 길목을 막기 위해, 모든 연결의 형식들을 사회 안전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방역에 어려움을 겪을수록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사회의 전면적 통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故) 문중원 기수 농성 천막을 행정대집행을 강행하려 하자 이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을 경찰들이 끌어내고 있다. 이날 서울시와 종로구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고(故)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등 단체가 설치한 천막들을 코로나 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철거했다. 2020.02.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故) 문중원 기수 농성 천막을 행정대집행을 강행하려 하자 이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을 경찰들이 끌어내고 있다. 이날 서울시와 종로구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고(故)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등 단체가 설치한 천막들을 코로나 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철거했다. 2020.02.27ⓒ김철수 기자

얼마 전 서울 세종로에 있는 고 문중원 기수의 추모공간이 철거되었다. 유가족과 소수의 시민이 촛불을 켜고 죽음의 해결을 염원하던 공간은, 경찰 12개 중대와 수백 명의 용역반이 투입되고 이들을 막는 노동자 시민이 모이면서 많은 인원이 밀집하고 뒤엉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철거 용역 청년은 노동자 시민을 향해 침을 뱉었다. 저항하는 노동자와 몸싸움을 하며 옷을 벗기는 사이, 용역반원들은 어느새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웃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폐쇄된 집단에게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집회 해산을 통해 방역의 사법화로 향하는 정부의 얼굴을 비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연결의 정치 대신, 보이는 것을 파편화시켜 잠복하게 만드는 치안은 모든 사회적 해결을 유보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사회의 보수적 반동화를 창궐하게 한다. 시민의 안전을 방기한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는 다르게, ‘사회의 안전’을 위한 과도한 대응이 현 집권세력의 몰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 코로나 정국 속에 철거된 한 노동자의 추모공간이 그 시작점이 될 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묻는다.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난 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정부와 시민들에게 묻는다. 노동자의 죽음이 철거된 폐허 위에 세워진 안전이 우리들이 바라는 사회의 안전인가?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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