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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의 새벽편지] 먼 봄
할미꽃 앞에서
할미꽃 앞에서ⓒ사진 = 김해화

먼 봄

별들 말하네 기다려 봐 봄이 올거야
초승달 말하네 좀 더 기다려봐
그믐달 말하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꼭 봄이 올거야

아지랑이 말하네 봄이 오고 있어
새싹 말하네 꼭 온다구
꽃들 말하네 봄이야 봄

바람 말하네 저기 봄이 가네
빗방울 말하네 벌써 지나갔는데
햇살 말하네 병신 병신

겨울에 일 끊겨
아직 얼어붙어 있는 공사장
그 겨울 일옷 벗지 못한 사람들
웅크리고 웅크리고
떨고 있는디

봄은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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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봄은 아직 멀었어요. 천지 간에 봄꽃 흐드러지지만 아직 봄이 먼 사람들 참 많을 거여요.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랍니다.

일 없는 날이 보름 스무날 넘게 이어지면 며칠은 방구석에 숨어 지냅니다. 그러다가 숨 막히면 산에 가서 꽃을 만나기도 하지만, 벌이가 없으니 지출도 두려워서 먼 산은 쉽게 길을 나서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며칠 방구석에 숨어서 지내지만 요즘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서지 않을 핑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댈 수 있으니까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세상이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이런 시기에 극단적 불평등 사회인 남한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세상이나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견딥니다.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견뎌보는 것이지요.

어저께 한 해 꼭 한 번 가는 산에 다녀왔습니다. 지난해는 깽깽이 꽃철이 지나 꽃은 못 보고 안부만 확인하고 왔는데 올해는 첫 꽃을 만나고 왔습니다. 제법 깽깽이풀이 많았던 곳인데 사람들이 뽑아 가버려서 거의 사라지고, 그때 너무 어려 살아남았던 3포기가 아직 무사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주위 환경도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어져서 더 고마운 일이지요.

한 번 맺은 인연이라 이렇게 한 해 한 번 안부를 확인한다고 찾아가지만, 깽깽이풀이나 할미꽃, 복수초, 노루귀 같은 꽃들은 야생화 판매하는 곳에서 비싸지 않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몇 천원 밖에 하지 않아요. 자생하는 꽃들은 옮겨 심어도 잘 살지 않으니 제발 캐지 말아주셔요.

돌아오는 길에 할미꽃 뵙고 솜나물 봄꽃도 만났습니다. 누군가 할미꽃밭 다녀가면서 할미꽃 한포기를 캐 갔어요. 할미꽃은 자생하는 꽃 캐다 심으면 살리기 힘드는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접치재의 히어리는 한창이어요. 순천시의 숲가꾸기 학살 이후 새로 돋아났던 새순들이 자라 이제는 숲의 모습을 갖추었답니다.

하루 일이 있다고 전화 왔는데, 취소되었다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힘드시지요? 우리 함께 잘 견디면서 모두가 반갑게 맞이할 봄 세상을 향하여 가보자고요.

김해화 시인·공사장 철근노동자

공사장 철근노동자, 시인, 민족작가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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