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아이와 자라는 아빠]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방법

출근길 지나가는 약국마다 공적 마스크 구매 행렬이 보입니다. '코로나19'가 만든 아침 풍경입니다. 어린이집 등원이 또 2주 미뤄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어린이집 앱에서도 같은 소식을 알려옵니다. 4월 개학이라니요. 이해하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른 엄마·아빠들의 SNS에서도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립니다. '코로나19'가 밉습니다.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온종일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합니다. 지친 목소리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이 끊겨 소득이 없는 데다,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니 더 지칠 수밖에요.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훨씬 우울하고 힘들어했을 것입니다. 괜히 신경이 쓰여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렇다고 딱히 도움 줄 것이 없으니 ‘뭐 하고 있느냐’, ‘괜찮으냐’는 말만 건넵니다.

'코로나 블루'(코로나와 우울감의 합성어)라는 말이 먼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 됐습니다. 아내에게는 아마도 하루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아이에게는 바깥 놀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날이 계속 밝아있기를 바랐습니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집으로 향합니다. 밥 먹고 밖에 놀러 나가자는 말에 아이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하지만 나설 채비를 마치니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큰길을 세 번이나 건너야 하는 먼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먼 곳에서 오래 놀수록 아이는 오늘 밤 푹 잠들고, 아내에게는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늘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두워졌지만 오랜만에 외출한 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아이는 밸런스 바이크(페달 없는 유아용 자전거)를 타고 인적 드문 길을 박차며 쌩쌩 달립니다. 집에만 있느라 체력이 넘치는 아이에게 “열심히 달려! 그래야 푹 잠들지!”라고 목적 담긴 응원을 합니다.

공원에는 반려견과 함께 나오거나 밤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몇 명 정도 뿐이라 다행히 '코로나19' 감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가로등이 별로 없어 캄캄하고 인적 드문 공원에서 아이는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고, 나는 운동 삼아 아이 곁을 달렸습니다. 화단에 쳐진 로프에 걸리거나 비탈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면서요.

맨홀 탐사대
맨홀 탐사대ⓒ필자 제공

체력이 바닥난 우리는 다른 놀이에 접어듭니다. 아이는 손전등을 달라고 하더니 바닥에 엎드려 맨홀 구멍 탐사를 시작합니다. 아이는 맨홀 뚜껑마다 손전등을 들이대고 관찰하면서 생중계를 합니다. 꿀벌이 있네, 거미줄이 있네, 나뭇잎 한 번 넣어보겠네, 여긴 아무것도 없네, 너무 더럽네 하면서요.

"아빠도 한 번 봐봐!"

아빠를 부르는 말에 덩달아 아이 옆에 엎드려 구멍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아빠에게 참여를 권하는 모습이 무척 귀엽고 대견해 보였습니다. 요즘 과학자가 꿈이라는 이 아이의 호기심이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바닥에 엎드려 한참 놀다 보니 문득 이 넓은 공간에 우리만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우리는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시원한 공기는 해방감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가 맨홀 구멍을 들여다보기 위해 안방처럼 길바닥에 누워 뒹굴어도 괜찮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느라 종일 집에 매여 있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이에게도 필요했으니까요. 아직은 쌀쌀한 봄밤에 실컷 놀고 온 우리는 단잠에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이 길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차였습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야외에서 신체활동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습니다. 낮에는 거의 어렵지만, 밤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맨홀 탐사 이후로 밤이면 종종 나가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고 돌아옵니다. 그 먼 공원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네 놀이터에도 사람이 없어 편하게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잠깐 타임! 헉헉“ 강도 높은 술래잡기에 잠시 쉬는 6세
"아빠 잠깐 타임! 헉헉“ 강도 높은 술래잡기에 잠시 쉬는 6세ⓒ필자 제공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놀이터에 가도 아이와 함께 놀 친구 하나 없는 것이 안쓰러워 괜히 나까지 적적해지곤 했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가 어찌나 반가운지요. 나와 함께 놀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아이와 더 열심히, 지치도록 놉니다. 밤마실을 나갈 때마다 텅 빈 놀이터에서 우리는 갖가지 새로운 놀이를 합니다. 각자 다른 미끄럼틀에서 출발하는 달리기 시합, 술래잡기, 철봉 매달리기, 그네에 함께 타기, 긴 나뭇가지로 텐트 만들기 등 놀 것은 가득했습니다. 숨차고 땀 나도록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내 안에 쌓인 스트레스까지 사라졌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어 어린이집으로 정상 등원하는 날까지 '아이와 즐겁게 노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끼리만, 그것도 밤에 뛰어노는 것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아이가 자라나 나중에 '코로나19'에 관해 묻는 날이 온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집안 살림이 위축되고,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고, 외출도 마음껏 못 하는 힘든 시기였지만, 평소와 다른 활동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틈틈이 잘 놀았다고요.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만들어 낸 사람들이라고요.

낮에는 엄마와 집에 있고, 밤에는 아빠와 나가는 요즘 생활에 대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내일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몰라"라고 짧게 대답할 것 같지만요.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