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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내 아들에게” 구의역 참사 4주기, 9-4 승강장에 붙은 포스트잇
23일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붙은 고 김태규 수원 건설노동자 유족의 포스트잇.
23일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붙은 고 김태규 수원 건설노동자 유족의 포스트잇.ⓒ민중의소리

“또 한 명의 내 아들 김군에게. 그곳에서 아픔, 고통, 분노 모두 다 내려놓고 편안히 잘 지내렴. 태규를 형제처럼 같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 또 한 명의 엄마가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교통공학 수업 시간엔 언제나 안전한 교통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하지만, 당신 한 명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꼭 안전한 교통 만드는 데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 비슷한 또래가, 김 군에게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하청노동자 김군이 역 내로 진입하는 전철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지 4년이 흘렀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가 점검하던 구의역 스크린도어엔 수많은 국화꽃이 놓이고, 포스트잇이 붙었다. 2019년 4월 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일용직 노동자 故 김태규 유족,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비정규직 故 김용균 유족, 그리고 그 동료들과 시민들의 포스트잇이다.

23일 오후 구의역 대합실 2층 및 승강장 문 9-4 앞에선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엔 故 김태규 수원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의 누나 김도연 씨 등 산재피해자가족모임 ‘다시는’과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들, 이은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정의당),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故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해선 원하청 사업주 모두 처벌토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이를 통해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해 발생하는 참사가 멈추기를 바랐다. 추모행사 참여 시민들은 “우리가 김 군이고, 우리가 김용균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라고 외쳤다.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는 23일 구의역 대합실 2층 및 승강장 내선 9-4에서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는 23일 구의역 대합실 2층 및 승강장 내선 9-4에서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을 열었다.ⓒ민중의소리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 뒤 구의역 승강장에 붙은 포스트잇.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 뒤 구의역 승강장에 붙은 포스트잇.ⓒ민중의소리

故 이한빛 PD의 포스트잇 “오.늘.도 수고했다”
故 김태규 누나 “이대론 참사 막을 수 없다”
용인 시민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토록 강제해야”

추모행사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 차원에서 약식으로 진행됐다. 행사 참가자들은 4~5명의 참가자 발언을 듣고 곧바로 승강장으로 올라가 구의역 김군의 죽음을 추모했다.

조상수 궤도협의회 상임의장(철도노조 위원장)은 “구의역 참사 뒤 우리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는 직영으로 전환되었고, 2인1조 근무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다른 지하철과 철도에선 구의역 참사의 원인이었던 외주화 및 민영화가 여전히 진행되는 등 우리 지하철, 철도, 대한민국의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모든 국민들에게 생명, 보건안전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데, 이제 이 분야에서도 그런 인식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철도안전법 등 안전 관련법들이 제정될 수 있길 바란다. 이를 위해 조합원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 건설노동자 故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연 씨는 지난 15일 열린 故 김태규 사망사고 공판에서 검찰이 시공사·발주처 대표는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현장 소장·차장, 승강기 제조업자에게만 혐의를 적용한 것과 관련해 “무엇이 무서워서 (건설현장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벌금 100만원, 1000만원으론 절대 참사를 막을 수 없다”라며 원청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이번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선 故 이한빛 PD가 구의역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구의역을 방문해 붙였던 포스트잇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구의역 참사가 발생했던 2016년 5월 이한빛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의역 참사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며 그가 남긴 포스트잇 내용을 전했다.

故 이한빛 PD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PD로, 해당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된 2016년 10월 26일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뒤 진행된 진상조사를 통해 그동안 방송계에서 쌓여온 병폐가 드러나면서, 방송계 제작환경의 큰 변화로 이어진 바 있다.

23일 구의역 승강장 9-4 스크린도어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
23일 구의역 승강장 9-4 스크린도어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민중의소리

구의역 김군처럼 지하철 노동자였던 이은주 21대 국회의원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불운해서 우리 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을. 미리 예견된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또 외면했다. 제정됐으면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38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다짐했다.

예정된 발언이 모두 끝나고, 참가자들은 구의역 승강장으로 올라가 내선 9-4 스크린도어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추모행동을 이어갔다. 추모행사를 위해 준비된 이동식 스피커에서 나오는 ‘잊지 않을게’ 노래가 승강장에 울려 퍼졌고, 시민들은 서울교통공사 안전요원들의 통제를 받으면서 김군을 추모했다.

국화를 9-4 스크린도어 앞에 내려놓은 대학생 김지원(20·용인시 거주) 씨는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이란 짧은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였다. 김 씨는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다치고, 죽고, 너무 슬픈 사람들이 많지 않나”라며 “그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메시지를 적었다”고 말했다.

이어 “4년이 지났는데 별로 바뀐 게 없다”라며 “기업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부품으로 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봤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니 제도를 통해 강제적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시민들의 추모행동은 성수역과 강남역 승강장에서도 진행됐다. 구의역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행사가 끝난 뒤 성수역과 강남역으로 이동해 2013년 성수역에서 일하다 숨진 심 모 씨(37)와 2015년 강남역에서 일하다 숨진 조 모 씨(28)를 추모했다.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에 참여해 포스트잇을 적는 시민들.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에 참여해 포스트잇을 적는 시민들.ⓒ민중의소리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에 참여해 포스트잇을 적는 시민들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에 참여해 포스트잇을 적는 시민들ⓒ민중의소리
23일 구의역 대합실 2층에서 열린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이 끝난 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승강장에 올라가 사고 현장에 국화를 내려놓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김군을 추모했다.
23일 구의역 대합실 2층에서 열린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이 끝난 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승강장에 올라가 사고 현장에 국화를 내려놓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김군을 추모했다.ⓒ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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