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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나라 미국, 흑역사 파헤치면 건국 주역들의 동상도 철거해야 한다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의 조지 워싱턴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됐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인종차별주의자로 지목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20.6.18)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의 조지 워싱턴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됐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인종차별주의자로 지목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20.6.18)ⓒAP/뉴시스

편집자주/백인 경찰에 의해 자행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함께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과 같이 인종차별주의자로 지목된 미국 건국 주역과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 곳곳에서 이들의 동상이 곤욕을 치르고 있고, 뉴욕시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동상 철거를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폴리시’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If Americans Grappled Honestly With Their History, Would Any Monuments Be Left Standing?

미국은 탄생부터 심각한 위선의 나라였다. 미국에는 처음부터 자유와 억압이 공존했다. 심지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제퍼슨의 가정에서조차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위선의 심장부에는 인종차별이 있다. 남북전쟁과 노예제 폐지, 개헌, 그리고 각종 인종차별금지법, 그 어떤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 건국 이후 244년이 지난 지금,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앞두고 미국 국민은 여전히 거리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며 이 도덕적 난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최근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이 힘없는 흑인을 무릎으로 질식시켜 무자비하게 죽인 사건이 시위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에도 명확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당시 ‘미국이 드디어 이 문제가 해결하는구나’ 하는 희망이 잠시 번졌을 뿐,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미국의 혼란스러운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지난 6월 19일 미국에서는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된 날을 기념하는 준틴스(Juneteenth) 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백인들은 준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 함정이다. (해리스의 신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절반이 준틴스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많은 흑인들은 ‘준틴스 데이’인 6월 19일을 그들의 독립기념일로 기린다. 하지만 이러한 준틴스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백인이 많다는 얘기는 인종차별이 아직도 미국 국민의 머리와 가슴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종차별을 둘러싼 논쟁은 미합중국 건국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고통스러운 논쟁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건국 공신들은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상징적인 기념물이 모여 있는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는 미국 국민의 추앙을 받는 토머스 제퍼스의 동상이 있다. 동상에는 그가 초안을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문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이 “자명한” 진리라고 선언한 대목이다.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의 동상.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사진:2016.7.8)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의 동상.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사진:2016.7.8)ⓒAP/뉴시스

미국 교과서에는 제퍼슨이 노예 소유주의 삶을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시대를 거스르지 못한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었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퍼슨이 원칙적으로는 노예제를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맞다. 하지만 제퍼슨이 남긴 수많은 편지와 글에는 그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서 자기 노예들을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으로 생각했으며 그들을 은행대출 담보로 활용했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제퍼슨은 흑인을 백인과 비교하는 것은 “당나귀를 말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쓰기도 했다. 제퍼슨은 몬티첼로 저택에서 흑인 자녀를 노예로 부리며 서빙을 시키면서도 그들이 자기 자식임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 또한 노예 소유주였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워싱턴은 독립전쟁 중 군복무를 한 흑인을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자는, 상대적으로 깨어있던 동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안에는 자신이 깊이 신뢰했던 알렉산더 해밀턴도 동참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미국 건국의 주역들 간에도 인종 문제와 관련한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는 점이다. 제퍼슨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관점을 가졌던 워싱턴은 유서에 자신의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중요한 선례를 남긴 유일한 건국 주역이었다.

미국 대통령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조셉 엘리스는 너무나도 중요했던 버지니아 출신의 두 사람, 워싱턴과 제퍼슨이 흑인에 대한 처우 문제와 관련해 매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미국 역사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엘리스는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많았음에도 이를 다 놓친 미국 건국 시기를 “세익스피어 비극”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엘리스는 워싱턴과 제퍼슨이 남북전쟁 때 생존했다면 워싱턴은 북부의 편을, 제퍼슨은 남부의 편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뉘앙스 차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격론 속에 묻혀 버렸다. 미국은 격동의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다시 인종차별주의적인 과거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수정 헌법 제13조(노예제 폐지)와 제14조(흑인의 동등한 권리 보장), 그리고 1960년대 민권법과 투표권법 등 인종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법안들이 뿌리깊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였다기보다는 증상 완화제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체 왜 미국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역사를 실제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포장해야 하는가? 이제 미국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언급했듯 미국인들은 역사적인 기념비나 기념 건축물들을 세우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인종차별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는 이러한 기념물들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논쟁으로 이어졌다.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 모인 시위대.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인해 미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0.6.23)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 모인 시위대.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인해 미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0.6.23)ⓒAP/뉴시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논쟁에 불을 붙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인종차별폐지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며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시위대 한 명을 살해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양쪽 시위대에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며 “미국이 남부군 장군들의 동상을 철거하기 시작하면 대체 어디에서 선을 그을 것인가? 그 다음에는 워싱턴과 제퍼슨의 동상을 철거해야 하는가? 너무 어리석다!”라고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트럼프는 남부군 장군의 이름을 딴 유명한 미군 기지들의 명칭을 바꾸지 않겠다고 덧붙이며 최근에도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어리석다고 비난한 그 방침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지난주에 뉴욕 시의회 의원들이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에게 시청의 제퍼슨 동상을 철거하자는 청원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고, 미주리대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들이 학교 광장의 제퍼슨 동상을 철거하자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는 시위대가 6월 초 커다란 워싱턴 동상을 쓰러뜨려 얼굴을 성조기로 감싼 뒤 불을 붙였고, 6월 중순에는 볼티모어에 있는 워싱턴 동상이 훼손됐다. 동상 기단에는 빨간 페인트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없애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6월 21일에는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이 입구에 있는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동상에서 루즈벨트는 말에 타고 있고 그 아래에서 원주민과 흑인 남성이 루즈벨트를 시중들고 있다.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성명서를 통해 “이 동상이 노골적으로 흑인과 원주민을 인종적으로 열등하며 백인의 지배하에 놓인 사람들로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철거 사유를 밝혔다. 참고로 루즈벨트는 워싱턴, 제퍼슨, 링컨과 함께 러시모어 산에 두상이 조각돼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 동상. 루즈벨트는 말에 타고 있고, 그 아래에서 원주민과 흑인 남성이 루즈벨트를 시중들고 있다. 뉴욕시는 이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2020.6.22)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 동상. 루즈벨트는 말에 타고 있고, 그 아래에서 원주민과 흑인 남성이 루즈벨트를 시중들고 있다. 뉴욕시는 이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2020.6.22)ⓒAP/뉴시스

그러나 루즈벨트나 미국의 건국 주역이었던 대통령들의 동상을 철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나쁜 역사와 함께 좋은 역사마저 내던져 버리면 대체 어떤 나라가 남게 되는 것인가? 버지니아주의 첫 흑인 대법관이었던 존 찰스 토마스가 지적했듯 “제퍼슨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는 완벽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의 1963년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제퍼슨이 말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자명한 진리를 언급하며 이를 “모든 미국인이 상속받게될 약속어음”이라 했다. 물론 바로 다음 대목에서 미국이 흑인에게만 이 약속어음에 대한 지불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말이다. 워싱턴과 제퍼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노예를 부렸지만 그는 미국 헌법을 만든 일등 공신 중 하나다. 수정 헌법 제1조는 흑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행사하는 바로 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다.

학자이자 언론인으로서 곧 출판되는 “우리는 왜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나? 트럼프 랜드에 있는 한 흑인 남성”의 저자인 이삭 베일리는 “워싱턴이나 제퍼슨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공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면서도 그들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베일리는 “워싱턴이나 제퍼슨의 동상들은 남부군 동상들과는 다르다. 남부를 기리는 기념비, 건축물과 동상들은 주로 20세기 초반과 그 이후에 흑인들의 민권 확대에 대한 반발로 세워졌다. 이 동상들은 노골적인 백인우월주의를 표현하고 말 그대로 미국을 배신했던 자들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일리는 워싱턴과 제퍼슨을 기리는 일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까지는 쉬운 얘기다. 워싱턴이나 제퍼슨과 같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위대한 업적 때문에 그들을 기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나치와 협력했다가 나중에는 미국을 도와 달에 사람을 보내고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각종 기술을 전수해 스마트폰이나 GPS 등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을 기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홀로코스트에 협력한 자들이 나름의 공이 있다고 그들을 기리자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의 원죄로 수익을 얻고 범죄에 직접 참여한 부유한 백인 남성들을 이렇게 쉽게 기리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 논쟁은 국제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이었던 윈스틴 처칠 전 총리의 동상이 훼손됐다. 처칠은 인도의 독립을 격렬하게 반대했고 마하트마 간디를 ‘반쯤 벌거벗은 이슬람 놈’이라 비하하기도 했다. 또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시위를 통해 우리는 미국을 존경하거나 모범사례로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에 동참하며 각자의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에 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국제적인 관심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세워질 때부터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는 외국에서 “사람이 아닌 법”에 기반한 첫 공화국을 건설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줬다. 미국 건국 공신들은 외국에서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줄기차게 받았다. 영국 왕실의 독재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던 1775년 영국 작가 사무엘 존슨은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자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자유를 부르짖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마르키 드 라파예트처럼 미국 건국 주역들의 지지자이자 절친이었던 사람들도 미국인들에게 노예제 폐지를 간청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에 맞서 싸워 미국의 국민 영웅이 된 폴란드의 군 엔지니어로 영어를 제대로 못했던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는 변호사였던 제퍼슨에게 전 재산을 노예 해방과 교육에 써달라는 유서를 작성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퍼슨은 이 유서를 실행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250년 동안 이어진 상처가 너무나 깊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현재 2급 살인으로 기소된 백인 경찰관이 질식시켜 살해한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재확산으로 미국의 경찰이 어느 정도로 소수 인종을 억압하는 백인 미국의 상징이 됐는지가 드러났다.

애틀랜타부터 미니애폴리스에 이르기까지 경찰들은 최근 계속해서 무방비의 흑인들을 죽였다. 이로 인해 준틴스 데이도 씁쓸한 날이 돼 버렸다. 이날은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 2년 후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부군의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텍사스에 도착해 텍사스의 노예제 폐지를 선언한 날이다. “과거 노예 소유주와 노예들의 인적권리와 재산권은 완전히 동등하다”던 그레인저의 약속도, 남북전쟁으로부터 “자유의 새로운 탄생”이 일어날 것이라던 링컨의 선언도 실현되지 못했다.

“불완전한 신:조지 워싱턴, 그의 노예들, 그리고 미국의 탄생”과 “산의 주인:토마스 제퍼슨과 그의 노예들”의 저자인 헨리 비엔섹은 “아직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뿐”이라며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백인들이 카메라가 있어도 그 앞에서 버젓이 그런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흑인들을 총으로 쏘고 죽인다”라고 통탄했다.

이처럼 골이 깊게 패인 감정에 다시 불씨가 당겨진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몫을 톡톡히 한다. 트럼프는 애초에 미국의 “갈색화”를 두려워하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적인 두려움을 확산하고 이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학자 샤론 머피는 “어떤 면에서 보면 트럼프가 이 문제를 봉합하고 있던 반창고를 뜯어버린 상황”이라고 했다. 머피는 6년전 흑인이었던 마이클 브라운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총맞아 죽었을 때보다 더 많은 백인들이 최근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틴 루터 킹은 1960년대 당시에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보다 행동하지 않는 온건파 백인들을 비판했다. 어떻게 보면 지난 트럼프 정권 3년이 온건파 백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0.6.2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0.6.23)ⓒAP/뉴시스

에두아르도 포터는 최근 출간한 “미국의 독”에서 뉴딜 때부터 이어져 오던 사회복지에 관한 합의가 수혜자들인 소수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반감으로 전반적으로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대통령학의 대가 엘리스는 “애초에 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는 백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트럼프 정권을 거치면서 드러났다”며 “이들의 눈에는 시위자들이 폭도로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시위들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신념이 진짜 무엇이었는지, 그리하여 미국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비엔섹과 같은 역사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동상들을 철거하지 말고 동상에 새겨진 문구를 고쳐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노예제를 폐지하라고 워싱턴을 끈질기게 설득하다가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남부 출신의 젊은 백인 존 로렌스 중령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이들의 동상을 새로 세우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남부 출신인 언론인 베일리는 “우리는 최소한 동상이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설명하려고 해야 한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우리가 만든 거대한 기념비와 건축물에서 말이다. 이 장소들이 더 이상 즐거운 방문지로 인식돼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기렸던 이들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구조적인 강간과 살인 및 노예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노예제를 통해 부자가 됐음을 더 많은 미국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 건국 공신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기준을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또 제퍼슨이나 매디슨 같은 이들의 천재성은 시대를 초월했음을 지적하는 역사학자들도 많다. 안 그랬으면 미국은 여전히 왕정 하에 있을 거라며 말이다. 엘리스는 “건국 공신들은 많은 측면에서 천재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거대한 공화국을 구상했고 정교분리도 구상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엘리스는 “그러나 그들은 인종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구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는 일생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는 휘몰아치기도 하고 급출발하기도 한다. 현재 미국 국민은 미국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규정할 수 있는 역사적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아직 지나가지 못했다:버락 오바마와 인종 문제”의 저자인 토마스 서그루 뉴욕대 역사학 교수는 흑인과 소수인종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팬데믹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조지 플로이드 시위가 오바마의 취임으로 인종 평등을 꿈꾸기 시작했던 미국을 잠에서 격렬하게 깨웠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의 당선 즈음에는 미국이 드디어 흑역사를 극복하고 흑인 민권운동 시대를 지났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 이후에 찾아온 것은 “화이트래시(사회적 진보나 변화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였고 이어 인종갈등이 증폭된 트럼프 시대가 도래했다.

서그루는 “1960년대 이후의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이 다루지 못한 이슈가 너무 많았다”며 “그중에서 가장 질긴 문제점들은 경찰의 인종차별과 그보다 더 광범위한 인종간의 불평등, 점차 확산되고 있는 거주지, 학교, 도시에서의 인종 분리 등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해답이라는 건 없을 것이다. 경찰의 치안 유지는 제도적인 인종 분리와 맞물려 있다. 내부 개혁을 얘기하지 않고는 경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엘리스는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서는 기념관의 인물들 사이에 비극적이라 할 수 있는 무언의 대화가 날마다 오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셔널 몰에 가서 링컨 기념관과 제퍼슨 기념관, 그리고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으면 이 세 명의 거물 간에 오갈 대화가 떠오른다. 제퍼슨은 노예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행동도 취할 용기가 없었다. 링컨은 그럴 용기가 있었지만 다양한 인종이 같은 사회에서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하는 마틴 루터 킹이 있다. 킹은 제퍼슨이 발행한 약속어음의 대금을 수령하기 위해 왔다고 말할 거다.”

약속어음 대금은 아직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날을 기념하는 준틴스(Juneteenth) 데이였던 6월 19일 미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마틴 루터 킹 조각상 앞에서 한 소년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백인 경찰에 의해 자행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0.6.19)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날을 기념하는 준틴스(Juneteenth) 데이였던 6월 19일 미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마틴 루터 킹 조각상 앞에서 한 소년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백인 경찰에 의해 자행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는 항의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0.6.19)ⓒAP/뉴시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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