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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세상에 하나뿐인 칠판

“오늘 늦어. 둘이서 밥 먹고 먼저 자.”

아내의 문자 메시지.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프리랜서인 아내의 경제활동이 다시 시작되어, ‘칼퇴’ 후 육아를 전담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몸은 피로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와 둘이서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매주 월요일엔 중고서점으로 향합니다. 중고서점 어린이 코너에 전시된 장난감들이 아이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는 난관이 있지만, 중고거래 애호가이자 인터넷 최저 가격 검색이 일상인 자린고비 아빠를 이길 순 없습니다.

- 여기선 구경만 하는 거야.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아이는 이제 장난감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어느 날 자석 글자 교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아빠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나 아직 글자 모르잖아.
- 글자 알고 싶어?
- 응.

아빠가 거절할까 봐 약간 망설이며 꺼낸 말이었습니다. 아이 표정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어쩐지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반가웠습니다. 여섯 살인데 글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걱정을 못 들은체 하며, 아이가 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왔던 차였기 때문입니다. ‘남들처럼 우리 집에도 자석 칠판이 하나쯤 있어서 아이가 자석 글자를 갖고 놀 수 있게 해주면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석 글자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지는 않았습니다. 붙일 만한 곳을 먼저 마련하지 않는다면, 자석 글자는 바닥에 나뒹굴어 집을 어지럽히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석 칠판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가격이나 크기가 통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 하나 만들자.’ 아이를 위해 자석 칠판을 만들어주기로 합니다.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고, 자석 ‘칠판’이 아닌 자석 ‘벽’을 만들기로 작정하고는 인터넷 배송이 가능한 최대 사이즈의 함석판과 여러 준비물을 함께 주문했습니다.

이따금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자문합니다. 일하느라 아이와의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아쉬움 때문일까요. 여섯 살짜리에게 좋은 아빠란 ‘시간을 들이는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코로나 방호복이나 의수를 만들어주는 아빠들의 소식을 가끔 뉴스에서 봤습니다. 세상에 좋은 아빠들은 자식을 위해 단 하나의 한정판을 만들어 내고 있더군요. 내 주변에도 아이를 위해 블록 놀이용 책상을 손수 제작한 아빠가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만들지 궁리하고, 시간을 들여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무게를 두는 육아 방식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아이를 위해 칠판을 만들기로 한 지금, 나도 얼추 그들처럼 좋은 아빠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실리콘으로 자기 이름을 그리는 아이
실리콘으로 자기 이름을 그리는 아이ⓒ사진 = 오창열

재료는 다 준비되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조심스러워집니다. 사흘이나 뜸을 들이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함석판이 벽에 잘 붙을 수 있도록 실리콘을 바를 차례, 이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시키기 위해 아이에게도 실리콘 건을 쏴보게 했습니다. 먼저 쏜 실리콘이 마르기 시작할 정도로 오랫동안 열중해서 뭔가를 실컷 그립니다.

- 뭘 그린 거야?
- 내 이름을 썼어.

회색 실리콘으로 쓴 그 이름은 마치 쟁반에 누워있는 낙지와 비슷했습니다.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글자에 관심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내 몸보다 크고 넓은 함석판을 벽에 신중히 붙인 후 화이트보드 시트지로 마감을 했습니다. 마침내 자석 화이트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시트지만 붙이면 끝이야!
이제 시트지만 붙이면 끝이야!ⓒ사진 = 오창열

내내 곁에서 구경하던 아이에게 묻습니다.

- 세상에 하나 뿐인 칠판이야. 어때?
- 아빠 최고야.

아이는 엄지를 세워 보이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정말 기분 좋을 때 나오는 그 밝은 표정이 너무 귀엽습니다. 맞아, 이 맛에 선물하는 거지.

- 수현아, 이제 자석 붙여보자!

자석 글자를 꺼내 아이와 이리저리 붙여봅니다. 아이는 세상에 없는 글자를 만들어놓고는 묻습니다.

- 아빠, 이건 무슨 글자야?
- 우와! 아빠도 처음 보는 글자네!

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인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아빠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칠판 위에서, 어떤 글자가 만들어져도 뭉클합니다. 집안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사진 자석도 벽에 붙입니다. 지금 보다 더 젊은 시절의 아빠 어깨 위에 아이가 목말을 타고 있습니다. 우리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하나뿐인 아들, 하나뿐인 글자, 하나뿐인 아빠, 하나뿐인 칠판
하나뿐인 아들, 하나뿐인 글자, 하나뿐인 아빠, 하나뿐인 칠판ⓒ사진 = 오창열

잠자기 전, 오늘 하루 중 어떤 것이 제일 즐거웠는지 묻자 칠판을 만들고 글자 놀이를 한 것이라고 대답하며 “내 친구 윤제에게도 칠판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일편단심 윤제 사랑입니다.

- 넌 누구랑 노는 게 제일 좋으니?
- 윤제.
- 그다음은?
- 소은이.
- 그다음은?
- 태강이.
- 아빠는 언제 나와?
- 아빠는 없는데?
- 아빠는 칠판 만들어 줬는데?
- (고사리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말 그만하고 자자.
- 그래 자자.
- 아빠 사랑해.
- (아이를 끌어안으며) 아악! 나도!!

아이와 키득키득 대화를 나누며 잠을 청하니 하루의 피로가 몰려듭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틀린 글자는 쓰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속하게 될 때, 세상에 하나뿐인 글자는 더이상 만들지 않게 되겠죠. 아직은 아이가 만든 새로운 글자들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글을 어서 깨쳤으면 좋겠다는 마음 속 조바심과 충돌합니다. 칠판과 자석 글자의 쓸모는 나의 결정이 아닌 아이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다만 더이상 목말을 태우지 못할 정도로 자라난 미래의 어느 날에도, 우리가 함께 시간을 들여 칠판을 만든 이 날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해주기만 해도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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