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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서커스하듯 일한다” 전차선 노동자들 50년만에 목소리내다
전차선 노동자들이 A형 삼각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
전차선 노동자들이 A형 삼각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건설노조

칠흑 같은 어둠 속 제대로 된 고정장치 없이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전기선을 보수하는 전국 전차선 노동자들이 50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국가기간망을 다루지만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위험의 외주화’ 구조에 놓여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는 16일 오전 11시 서울역 앞에서 ‘전기철도 일용직 노동자, 철도공단 위험의 외주화 실태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한 노동 현장을 고발했다.

전차선 노동자가 A형 삼각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
전차선 노동자가 A형 삼각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건설노조
A형 삼각 사다리를 세우기 위해 자갈밭에 굄목을 둔 모습.
A형 삼각 사다리를 세우기 위해 자갈밭에 굄목을 둔 모습.ⓒ건설노조

전차선 노동자들은 4.6m 높이 위의 전기선을 보수할 때 A형 삼각 사다리 하나에 의지한다. 사다리는 아웃트리거 같은 지지대가 없고 울퉁불퉁한 자갈밭의 철도길 위에 나무 막대와 굄목을 이리저리 놓고 수평을 맞추는 식이다. 노조는 “A형 삼각 사다리 사용을 금지하고 대체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네발 사다리.
지네발 사다리.ⓒ건설노조

전주(전봇대) 위의 전기선을 수리할 땐 ‘지네발 사다리’를 이용한다. 노동자들이 용접해서 만든 지네발 사다리는 정식 기구가 아니다. 전주에 고정되지 않고 흔들려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한다. 전차선 노동자들에게 필수 업무 위치임에도 그 위치에서 일할 안전 장비가 없는 것이다.

전차선 노동자가 10m가 넘는 높이의 ‘빔(beam)’ 구조물 위에서 안전고리 없이 헤드랜턴 하나로 작업하는 모습.
전차선 노동자가 10m가 넘는 높이의 ‘빔(beam)’ 구조물 위에서 안전고리 없이 헤드랜턴 하나로 작업하는 모습.ⓒ건설노조

10m가 넘는 높이의 ‘빔(beam)’이라는 구조물 위에 올라섰을 땐 잘못 디딜 경우를 대비하는 안전고리가 없다. 어두운 새벽에 머리에 헤드랜턴 하나 쓰고 빔 위를 서서 횡단한다. 노조는 “민간현장에서도 안전고리를 걸 수 있게끔 수평바를 설치한 후 이동하는데, 국가철도공단(철도공단) 현장에선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횡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다리 위에서 서커스 하듯 일하고, 빔 위를 곡예 하듯 넘나들고, 발판 없이 매달리며 일하고 있다”며 “정식 명칭도 없는 장비를 쓰고 원시적인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들은 밤에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전차선로를 새로 놓는 신설 작업 등은 낮에 하지만, 보수 작업은 열차가 오가는 선로에서 할 수 없어 열차가 멈추고 전기 공급도 중단된 밤 중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출발하기 전까지의 3~4시간 만에 일을 끝내야 한다.

위험한 현장에서 빨리 일을 마쳐야 하다보니 사고가 빈번하다. 올해에만 10건 발생했다. 그중 7건이 추락 사고다. 지난 14일 새벽 울산 철도 현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는 A형 사다리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해 현재 입원 중이다.

노조가 지난 11일부터 5일간 113명의 전차선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58.2%(64명)가 일하면서 1~3회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차선 사고 유형으로 93.6%(102명)가 추락을 꼽았으며 추락 사고는 A형 사다리와 전주, 빔 위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안전로프에 의지할 수 있는 장비인 ‘스카이’ 등 인증된 기계 장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국에 350여명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은 KTX·새마을·무궁화 열차 운행에 필요한 전차선을 설치·교체하고, 폭풍 등으로 전차선이 끊겼을 때 복구하는 등 국가 기간망을 다룬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 노동자다. 철도공단-원청-하도급-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로, 철도공단과 원·하청 모두 노동자 안전을 외면하는 ‘위험의 외주화’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열린 전기철도 일용직 노동자 철도공단 위험의 외주화 실태 폭로 기자회견에서 위험한 삼각 사다리 작업 등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020.09.16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열린 전기철도 일용직 노동자 철도공단 위험의 외주화 실태 폭로 기자회견에서 위험한 삼각 사다리 작업 등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020.09.16ⓒ김철수 기자

전차선 노동자들은 올해 1월 노조를 처음 만들었다. 지난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착공 이후부터 일해온 지 50년 만이다.

노조는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바람으로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일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대한민국 철도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청춘을 바쳐 일했다”며 “그럼에도 국토교통부, 철도공단, 그리고 공사를 시행하는 업체 모두 우리의 노동에 대한 존중은커녕 우리를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비용 절감 명목으로 로프 한 가닥에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먹고 살기 위해 온갖 갑질에도 말 한마디 못하며 노예처럼 일했다”며 “우리는 더 이상 이용만 당하며 살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정만 건설노조 전차선지부장은 “50년을 그림자로 살았다. 50년 동안 전차선지부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열차선 사고나 전선이 단선됐을 때, 열차가 가지 못할 때 조합원들이 보수하고 복구해왔다”며 “지금까지 안전에 대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국토교통부, 철도공단과 면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안전에 대해 공문 한 장 보내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한만호 건설노조 전차선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원시적인, 50년 된 노동 현장을 바꿔야 한다”며 “전국 철도망을 건설하고 보수하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장애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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