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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책임지지 않는 어른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왜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책  ‘왜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책 ‘왜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반비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와 나이든 세대를 어떻게 여기는 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꼰대’다. 지위나 권력이 높은 쪽이 낮은 쪽에게 거들먹거리는 걸 뜻하는 ‘곤대짓’이란 단어가 1920년대 신문기사에도 등장하고, 1960년대에 쓰여진 소설에서도 ‘꼰대’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역사는 오래됐다. 늙은 사람을 지치아는 은어 정도로 쓰였던 이 단어는 요즘 들어 권위주의적인 기성세대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권위주의가 무너지면서 어른들이 사라졌다. 존경하고 배울만한 어른들은 사라지고, 고집과 아집으로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질서만을 강요하는 ‘꼰대’만 있다. 기성세대는 기성세대 나름대로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새로운 세대를 질타한다. 사실 기성세대,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가 소통하는 건 힘든 일이다. 세대 간의 갈등은 늘 있어왔다. 심지어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수메르 쐐기문자에도, 조선시대 문헌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실제 버릇없음을 의미하기 보다는 나이든 세대는 늘 가르치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나이든 세대의 가르침은 젊은 세대의 가슴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을 경험해왔던 많은 이들은 권위주의가 사라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권위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도 육아, 교육, 정치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권위주의가 사라지면서 꿈꾼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이제는 과거의 권위주의를 다시 그리워하는 흐름까지 생겨나고 있다. 권위가 무너진 지금 우리가 찾아야할 새로운 권위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왜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이다.

각종 육아·교육 지원 제도와 기술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교사의 번아웃은 줄지 않고, 과잉행동장애 또는 품행장애를 진단받는 소아·청소년과 학생들로부터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는 교사의 수는 증가한다. ‘인국공 사태’는 이른바 ‘시험’만이 공정한 경쟁을 담보한다는 왜곡된 평등의 감각과 연대의 실종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성장’을 이뤄내도 복지제도의 확대 대신 교육과 돌봄 서비스의 계속된 비용 인상을 맞닥뜨리게 될 뿐이다. 포퓰리즘 정치는 점차 일상의 더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사건과 현상 들이 일관되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가족, 학교, 종교, 기업, 의회와 같은 집단/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또한 이런 사례 각각 또는 몇 갈래는 밀레니얼, 포스트트루스 같은 신조어로 분석되기도 하며 친숙할 만큼 많이 다뤄진 것들이다. 그러나 저명한 정신분석가이자 심리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는 이 현대 삶의 양상들을 총체적으로 활용하고 분석하여, 개별 사안들의 배후를 관통하는 보다 더 큰 문제의식에 다다른다. ‘권위’라는 화두를 통해 모든 심리적, 사회적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과 또 그것들이 가리키는 곳을 파헤치며, 해법까지 제시한다.

이 책은 최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종다양한 심리사회적 징후를 꿰뚫는 개념으로 ‘권위’를 제시한다. 수많은 문제의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권위의 부재’라는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위가 사라져가는 것이 문제라니, 일순 갸웃할지 모른다. 권위적 체제가 흔히 독재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듯, 권위는 여전히 20세기의 전쟁과 광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위란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언급되는 것처럼 ‘권위주의’와 다르고 ‘권력(power)’과도 다르다.

저자는 권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주요한 기능에 대해, “권위란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사람은 부모, 자녀, 또래, 동료, 이성 등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되기에, 권위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살아가는 기본 문제들’, 공동체를 이루고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근간임은 물론이다. 권위주의적 질서나 권력에만 동조하는 ‘어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 교사, 상사, 정치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꼰대’로 비치는 게 두려워 권위자가 되기를 아예 회피하는 것 역시 문제다. 그 영향은 개인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도 미친다. 대표적인 권위의 모델인 양육과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아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로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양육자라면 “양육 과정에 확실한 권위자의 위치”에서 충분한 훈육을 단호하게 해내야 하며, 그래야 아이가 안정감과 자기 통제를 배울 수 있다(218~219쪽).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일명 ‘칭찬 육아’는 역설적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트려 문제의 소지를 키우기 쉽다. 아이가 자라 교실에서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권위의 자리를 기피하는 교사는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는 아이를 그대로 두는 등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게 되고, 방임과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반사회적 행동 등이 개선될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 어른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권위를 인정’받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이 책은 물론 권위의 상실이 문제라고 말하며 사회변화에 불만을 느끼는 보수우파처럼 옛 권위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미 분명하게 시효가 다 됐다고 말하는 권위는 전통적인 하향식(피라미드) 형태의 남성 전유물인 ‘가부장적 권위’이다. 이 가부장적 권위는 “권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위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실 근거가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권위는 그동안 인류의 절반 이상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을뿐더러, 현재의 사회변화를 더 이상 충분히 반영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권위 자체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80쪽) 우리가 권위 자체를 부정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양극화 심화, 기후위기 등의 정치경제적 위기 앞에서 포퓰리즘이나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처럼 피라미드형 순수 권력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전과는 다른 원천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수평적인 집단에 근거한 ‘수평적 권위’이며, 집단 구성원 상호 간의 사회적 통제에 의해 작동하는 권위이다. 수평적 조직 구조를 재편해 혁신에 성공한 브라질 대기업 ‘셈코’, 이런 조직 구조 혁신을 공공기관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벨기에 공공서비스 사회보장청, 또는 투표 참여자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 시간을 제공하는 ‘숙의적 여론조사’의 적용례 등 교육, 경제, 정치 영역을 포함해 사례를 풍부하게 다룬다. 또한 ‘아이들끼리 주최하는 파티에서 몇 시까지 놀아도 좋은가’라는 디테일한 사안에서부터 학부모 네트워크나 교사 네트워크가 양육·교육 이슈를 어떻게 ‘수평적 집단’으로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모델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개인에게 부과한 심리학·정신의학적 측면을 비롯한 너무 많은 짐을 해결하기 위해 각개전투를 치르고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도덕적 주장들, 책임, 자율, 연대 등의 주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위 모델의 변화는 공유경제 또는 숙의 민주주의 등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부모상(象), 교사상, 경영자상의 변화를 함께 견인한다. 이는 곧 내가 어떤 시민으로, 어른으로 관계 맺고 공동체에 속해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 깊이 연결된다.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개인으로서 맞닥뜨린 이런 문제를 ‘수평적 네트워크’로서 풀어보자고 제안하고 있는 책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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