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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 성범죄 ‘피해자다움’ 무너뜨린 대법원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뉴시스

혼인 경험이 있는 고학력 여성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오히려 무고 혐의를 인정한 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재판장 안철상)는 지난달 27일 무고 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환송했다.

김 씨는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최 씨에게 2014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지위를 이용해 상습 성폭행당했다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최 씨에게 무고 혐의로 맞고소 당했다.

1·2심은 김 씨가 최 씨와의 내연관계가 밝혀지자 최 씨를 성범죄자로 허위 고소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2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부(재판장 심준보)는 지난 1월 김 씨에게 실형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은 성폭력 피해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에 갇힌 편견에서 비롯됐다. 법원은 김 씨가 최 씨와 합의한 성관계를 했다는 근거로 김 씨가 최 씨와 학교 외에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거나 산책 등 활동을 함께한 점, 최 씨 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점, 수시로 자신의 상황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표현한 점 등을 인정했다.

김 씨가 피해 사실에 대해 일부 진술을 변경한 사실은 허위 고소의 근거가 됐다. 김 씨는 고소 당시 최 씨가 폭행·협박해 강간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내연관계가 드러나자 ‘그루밍 성폭행’이라고 주장을 변경한 데 대해 법원은 “애초 고소 사실과 주요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그루밍 성폭력’에 대해 주로 아동·청소년 등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피해자가 당하는 범죄라며, 30대 후반으로 슬하에 10대인 아들 2명을 둔 성인이며 명문대를 졸업해 박사과정을 밟는 고학력 여성인 김 씨가 ‘학습화된 무기력’ 상태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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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하지만 대법원은 김 씨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허위 고소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김 씨와 최 씨의 관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2013년 2월부터 전문심리상담자격 수련생과 수련지도자,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에 있다가 2014년 3월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제자와 지도교수의 관계가 추가돼 ‘3중의 중첩된 관계’를 맺게 됐다”라고 짚었다.

이어 “박사과정 지도교수와 제자라는 위계적 관계에 더해 최 씨에게 김 씨의 내면 모든 고민과 상처를 고백하고 해결책을 상담받아온 점까지 고려하면, 김 씨는 관계에서 나오는 최 씨의 권위에 내키지 않더라도 복종하거나 신뢰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가 대외적으로 최 씨와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는 행위와 최 씨를 상습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행위는 양립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도교수이자 상담자이자 수련지도자인 최 씨에게 사회적·정서적으로 감화·예속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을 긍정하면, (김 씨의 행위를) 피해자로서 전형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거나, 서로 합의한 성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봤다.

이어 “자녀들이 피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걱정했으며, 전문상담사가 되기 위해 최 씨에게 7천만 원 이상의 돈을 줬는데, 신고하면 그 돈도 없던 돈으로 되며, 더는 상담 일도 할 수 없을뿐더러 박사과정도 밟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신고할 수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라며 “대외적으로 최 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짚었다.

김 씨가 일부 진술을 변경했다고 해도 의사에 반한 성폭력이라는 기본 취지가 같다면 허위 고소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일관된 입장과 태도를 보이며 고소 근거나 사정 자체가 허위라고 볼 수 없는 이상, 경우에 따라 피고인이 내린 주관적 법률평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허위사실을 고소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업무상 위력 간음죄와 더불어 강간미수 고소 역시 허위라고 판단한 원심 판단에 대해 재판부는 각 범죄사실을 하나하나 판단해야 한다며 “피고인은 신체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언제든지 신체접촉에 관한 동의를 번복하거나 거부할 자유를 가지므로, 이전에 합의한 성관계를 했는지는 고소 사실 허위 판별 기준이 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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