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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해 있어도 배상하지 않겠다는 통신사, 용납할 수 있나”
서울 시내 휴대폰 대리점 모습. 2019.05.12.
서울 시내 휴대폰 대리점 모습. 2019.05.12.ⓒ뉴시스

통신은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이 국민과 밀접한 산업이다. 그만큼 통신과 관련한 이런저런 피해를 보기도 한다. 통신구에 불이 나 도심 일대에서 통신 기기가 먹통이 되기도 하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르다고 해 고가요금제에 가입했더니 막상 별다른 점이 없어 실망하기도 한다.

화가 나면서도, 시간 뺏기고 돈 들 거 생각하면 소송은 엄두도 못 낸다. 그렇게 배상은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이 지나간다. 소비자 피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기업은 대응 조치 없이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현재 정부는 ‘그냥 참고 넘어가는’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모든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5일 만난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변호사)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이 소비자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며 “소비자 손해배상에 따른 기업 책임이 커져, 무분별한 이익 추구에서 소비자에 대한 책임 강화로 옮겨갈 것”이라고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50명 이상이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함께 구제받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는 증권 분야에만 적용된다. 다른 산업에서 발생한 피해는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지난하고 복잡한 소송 절차와 변호사 선임 등 시간·비용 부담이 따라, 소비자가 법적 대응에 나서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 벌어진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 경우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미국과 독일에서는 광범위한 배상이 이뤄졌지만, 한국에는 차별적으로 배상이 이뤄졌다.

조 본부장은 기업에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아, 기업이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해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은 개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더라도, 이익이 남으면 강행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소비자 권익 증진과 기업 책임경영 제고를 위해, 지난달 28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에는 증권 관련 사건에만 적용하던 것을 분야 제한 없이 확대한다. 대량 생산·소비 과정에서 집단적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개별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통해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0.16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0.16ⓒ김철수 기자

“세금처럼 내는 통신비, 손해배상은 없어…반복되는 책임 회피 고리 끊어야”

어떤 산업보다 소비자 접촉면이 넓은 통신 산업은 소비자 손해배상이 상당히 취약한 분야다. 조 본부장은 “통신 요금이 세금처럼 징수되고 있다”며 “통신 불량 등 피해가 발생하면 많은 소비자가 분노를 느끼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발생 시 실제 소송을 제기하는 소비자 비율은 5%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권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소수가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해당 소비자만 배상받게 된다. 나머지 소비자가 본 피해는 통신사 이익으로 돌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통신 분야는 SKT·KT·LGU+ 3사가 독과점을 이루고 있다. 알뜰폰 시장이 커지고는 있지만, 점유율로 따지면 미미한 수준이다. 통신 3사 점유율이 5(SKT):3(KT):2(LGU+) 구조로 고착화됐다. 소비자가 통신 3사 외에 취할 선택지는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독과점 구조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더욱 강하게 요청되는 배경이 된다.

조 본부장은 반복되는 통신 소비자 피해를 목도하면서 집단소송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는 지난 2012년 통신 3사와 삼성전자·LG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가 담합해 단말기 출고가를 부풀리고 , 마치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할인을 받았다고 속아 휴대폰을 구매한 소비자가 피해를 봤으니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나 패소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신 3사에 300억원의 과징금을 내렸고 행정 소송에서도 제재 적법성이 확인됐으나, 소비자 손해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2014년에는 SKT 통신 장애로 피해를 본 택배기사·대리기사 등 20여명의 원고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3심 모두 패소했다. 콜을 받지 못해 발생한 영업상 피해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피해 입증이 충분치 않다는 등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 본부장은 “지금도 납득이 안 되는 판결들”이라며 “이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승소해도 소송에 참여한 일부만 배상을 받게 되면, 기업 책임 축소되고 비슷한 피해가 되풀이될 게 뻔했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제로 모든 피해자가 배상받도록 해 산업계가 경각심을 느끼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지난 2018년 11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불통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점검과 백업체계를 강화하고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택배기사 등 추가피해 보상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지난 2018년 11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불통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점검과 백업체계를 강화하고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택배기사 등 추가피해 보상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조 본부장 예견은 현실화했다. 4년 뒤인 2018년 KT 서울 아현국사(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마포구·용산구·서대문구·은평구 지역 3만여명의 소상공인이 주문전화·카드결제 장애 등 피해를 겪어야 했다. 장애 발생 시 작동할 백업체계를 갖추지 않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용 절감에 따른 수익 극대화가 대규모 사고로 번진 셈이다.

조 본부장은 “앞선 통신 장애 사고에서 기업이 제대로 책임을 지고 소비자에 배상이 이뤄졌다면, 사고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관련 업계에서 서비스 안정화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했을 것”이라며 “여전히 통신사는 통신 장애 방지를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다”라고 지적했다.

통신 소비자 피해는 5G 서비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통신 3사는 LTE 대비 20배 빠른 5G로 ‘초현실’ 세상이 펼쳐진다고 광고했지만, 상용화 1년 반이 지난 현재도 5G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치고 그마저도 망 구축이 미비한 실정이다. 5G 가입자는 비싼 요금제를 내면서도 주로 LTE를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는 20배 빠른 5G 서비스 제공을 위한 28㎓ 대역 전국망 구축은 계획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통신 3사를 과장 광고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는 한편, ‘5G 먹통’ 피해자들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민사소송은 판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려 우선 다른 절차들을 활용하고 있다.

조 본부장은 5G 가입자 손해배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그는 “5G 통신망 구축이 안 된 채 상용화를 했으면 LTE 요금을 받는 게 맞다. 일부 지역은 아예 5G가 터지지도 않는데 5G 요금을 받고 있다”며 “통신사는 LTE 요금과 5G 요금 차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개별적으로 소송 걸지 않아도 모든 5G 가입자가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0.16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0.16ⓒ김철수 기자

“무논리로 무작정 반대하는 재계, 잘못 저질러도 배상은 안 하겠다는 건가”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 재계는 거세게 반발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경제 단체는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내놨다. 소송이 남발하고 기업 경영이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조 본부장은 재계 주장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는 소송이 개별적·산발적으로 진행되는데,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중복되는 소송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악의적인 법률 브로커가 소송을 주도해 판결과 관계없이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추후에 우려한 상황이 나타나면 그때 제도 취지를 침해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지 고민할 부분”이라면서 “집단소송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내용인데, 재계는 본질을 외면한 채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반대만 한다”고 비판했다.

재계는 집단소송제 반대 논리로 법체계도 운운한다. 한국은 행정처분을 중시하는 대륙법을 기반으로 해, 민사적 구제 중심의 영미법 국가에서 도입하는 집단소송제는 법체계에 혼란을 준다는 주장이다. 조 변호사는 국가별로 법체계와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며 어떤 제도든 현실의 필요성을 고려해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법은 기본적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기업에 소송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법과 제도는 현실에 맞게 발전하기 마련이고 어떤 제도든 유익하다고 판단하면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가 침체된 시기에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면 국가적인 위험을 야기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변호사는 “제도가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실제 소송 제기가 얼마나 늘지, 기업 부담이 얼마나 커질지, 국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실치 않다”며 “국가 경제에 위험이 된다는 건 기업 관련 제도가 논의될 때마다 늘 나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업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면 금액이 많든 적든 배상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며 “집단소송제를 반대하는 건 기업 부담이 커지니 피해를 주더라도 배상은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입법 예고를 거친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국회로 제출돼 입법 절차를 밟게 된다. 국회 통과 여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조 변호사는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 건 여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 집단소송제 도입의 적기”라면서 “집단소송제는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라 수년간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고 과거 관련 법안도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시 없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4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이 이동통신요금 원가자료 공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 발언하고 있다. 이날 참여연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3사에 LTE(4세대 이동통신) 및 데이터전용요금제 산정근거를 공개할 것을 촉구 했다.
지난 2018년 4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이 이동통신요금 원가자료 공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 발언하고 있다. 이날 참여연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3사에 LTE(4세대 이동통신) 및 데이터전용요금제 산정근거를 공개할 것을 촉구 했다.ⓒ김철수 기자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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