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건강한 노동이야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만들고, 제대로 적용될 수 있게

지난 2019년 초, 이루어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은 원청에 대한 책임강화,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법의 대상 범위 확대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그럼에도 산재사망 사고는 여전하고, 사업주 과실이 명확하며 예방을 위한 조치를 수행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사고의 발생에도, 사업주나 법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늘어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산안법 전면 개정 이후 이뤄진 9건의 판결에서 총 4곳의 법인과 11명의 대표이사, 개인사업자, 현장 소장 등이 개정 산안법 적용을 받아 평균 8.3개월의 징역형을 받았고,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개인은 평균 340만원을 법인은 평균 525만원의 벌금을 냈다

우리가 의미 부여를 했던 개정 산안법은 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일까? 개정된 현행 산안법에는 안전조치와 보건조치를 사업주의 의무로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를 ‘사업주’로 한정하지 않아, 사업주가 직접 처벌되는 경우 보다 현장 책임자가 처벌을 받을 때가 여전히 많다.

경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책임자는 이윤을 위해 안전을 우선에 두지 않는다. 그런 흐름속에서 사업을 현장에 넘기고, 현장 담당자는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안전 설비 설치와 작동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도전에는 발주처 역시 관여하게 된다. 그러니 원청의 사업주, 기업 경영의 실질적 책임자, 발주처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법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산재 유가족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2400배를 하고 있다. 2020.12.29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산재 유가족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2400배를 하고 있다. 2020.12.29ⓒ김철수 기자

산재 유가족, 노동계, 시민사회가 국민의 뜻을 모아 제정에 나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산안법의 실효성을 견인하고, 향후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법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서 경영계 눈치를 보느라 핵심 조항들을 무력화했던 산안법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 타협해서는 안 되는 조항들이 있다.

우선 위험의 외주화의 다양한 방식을 규제 대상에 모두 포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청 사업주가 위험을 무릅쓰고 공기를 단축하고, 2인 1조 작업 규정을 무시하고, 안전에 비용을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원·하청의 위계는 현실적인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혹여, 도급의 일부 방식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면제하게 된다면, 기업은 하청업체에게 편법적 방식으로라도 규제를 받지 않는 형태의 계약을 맺자고 요구하며 법의 취지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양한 형태의 외주화에 대해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 동일한 기준으로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더불어 중대재해법 제정을 계기로 산안법을 보완하여 원·하청과 도급의 각 단계별 주체들에게 걸맞은 책임의 내용을 규정하고 제대로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에 따라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철저한 재해조사를 통해 모든 책임 주체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말단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해 명확한 사업주 과실이 확인된다면, 피해자가 1명 발생했다고 해서 법 적용을 받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산재사고가 주로 발생하는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도 법 적용은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 또 재발할 경우 형벌을 더욱 가중하는 장치를 두어,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칠 수 있게 해야 한다.

빨간 신호등 뒤로 보이는 국회 (자료사진) 2020.02.25
빨간 신호등 뒤로 보이는 국회 (자료사진) 2020.02.25ⓒ김철수 기자

법이 잘 마련된다 하더라도, 이를 잘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기업활동을 위한 정상 참작, 직접 원인 제공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벌금 최소화, 걸핏하면 집행유예 선고 등의 법 제정 정신을 무력화시키는 법원의 태도도 우려된다. 가벼운 처벌이 예상된다면 기업은 안전 보다는 발주처에서의 압박과 경영책임자의 이윤 추구를 우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형식적 권한만을 부여 받은 현장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장 노동자들의 조심과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방식 뿐이다. 이런 불안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코 산재 노동자의 사망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처벌이 예방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실제 책임 있는 자에게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예방 노력을 하려는 기업에게 산안법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적, 행정적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턱 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을 충원하는 일도 우선돼야 할 일이다.

산재 피해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제정될 중대재해법은 구의역 김 군, 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 방송노동자 이한빛 씨와 같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이 사회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단계에서는 법을 제대로 만들게 하는 것이, 앞으로는 만들어진 법이 실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직업환경의학전문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