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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이 자사 상품 불매운동에 나선 이유
아셈타워 앞에 진열된 오비맥주 상품들
아셈타워 앞에 진열된 오비맥주 상품들ⓒ민중의소리

카스, 버드와이저, 호가든, 한맥…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 앞 인도에 웬 맥주가 쌓였다. 모두 오비맥주(주)의 상품이다.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사랑받아온 ‘카스’ 시리즈부터, 최근 오비맥주가 ‘테라’의 대항마로 야심차게 출시한 ‘한맥’까지.

모두 ‘오랫동안 오비맥주 경인직매장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이 갖고 온 상품이다.

그런데 이 맥주들은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곳에 진열된 게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OB맥주, 마시지도 사지도 맙시다”라고 외치며, 이 맥주들을 모두 파란색 양동이에 쏟아부었다. 유리병으로 된 카스 맥주는 망치로 깨뜨린 뒤 양동이에 버렸다. 어느새 양동이 안에는 맥주 캔과 병이 볼품없이 깨지거나 쪼그라든 채 거품 가득한 맥주와 뒤범벅됐다.

그들은 왜 오비맥주 불매에 나선 것일까?

오비맥주 불매 퍼모먼스 벌이는 노동자들
오비맥주 불매 퍼모먼스 벌이는 노동자들ⓒ민중의소리
버려진 오비맥주
버려진 오비맥주ⓒ민중의소리

2월 노조 만들었더니
5월 31일 일자리 잃어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과 부천김포지역지부는 이날 오비맥주 본사가 입주해 있는 아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비맥주는 불법파견 사죄하고, 하청노동자 고용승계 대책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이날 아셈타워 앞에 모인 이들은 오비맥주 경인직매장에서 사무원, 지게차 기사, 트럭운전사 등으로 길게는 25년 동안 일해 온 오비맥주 하청노동자다.

이들은 지난해 5월 31일부로 느닷없이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사실 오비맥주 경인직매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30명은 지난해 2월 노조를 결성했다. 이들이 노조를 결성한 이유는 ‘오비맥주가 경인직매장 운영을 CJ대한통운에 위탁하고, CJ대한통운이 다시 도급업체에 재하청을 주고, 이에 따른 계속되는 도급업체 변경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떨고 직책수당·상여금 등이 깎이는 황당한 일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임금은 10년을 다녀도 20년을 다녀도 최저임금이었다. 수당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런 부당한 일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겠다고 용기 내서 지난해 2월 노조를 결성해, 상급단체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에 가입했다.

그런데 노조 가입 후 얼마 안 돼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근로계약 기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기존 도급업체인 A종합물류(이하, A)가 “도급업체가 바뀔 예정이니 사직서를 써 달라”고 했다. A 측은 “사직서를 쓰더라도 이전에 도급업체가 변경될 때처럼 고용승계가 이루어질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노동자들을 안심시켰다. 이전에도 여러 번 도급업체가 변경된 바 있고, 이 과정에서 관행처럼 고용승계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30명의 노동자들은 이 말을 믿고 사직서를 썼다.

6월부로 새로운 도급업체 B로지텍(이하, B)이 왔다. B는 노동자들과의 개별적인 면담 과정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노조에 따르면 B 관리자는 채용 면담 과정에서 “우리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조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B는 노조가 없는 노사화합을 자체 내에서 조정하는 회사다”, “노조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노조를 와해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등의 말로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7명가량만 B에 재취업했다. 그리고 이 7명은 노조를 탈퇴했다.

나머지 20여명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 탈퇴 없이 모두 고용승계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들은 모두 재취업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이다. B는 소장, 공병장, 창고장 등 경험이 필요한 인력 5명 이상을 준비하고 기존에 있던 인력을 모두 재취업시키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썼다. 부족한 지게차 인력 등은 B가 맡고 있는 부산직매장에서 데리고 왔다.

오비맥주 직매장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요구 기자회견
오비맥주 직매장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요구 기자회견ⓒ민중의소리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 관계자는 “최소 5명 이상은 준비된 상태로 B가 들어온 것으로 확인이 됐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노총 금속노련 관계자는 “B는 A가 경인직매장을 운영하기 전에 경인직매장을 운영하던 업체”라며 “B가 최소 5명 이상 인력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은 기존에 있던 인력(조합원)을 다 고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라고 짚었다.

B 등이 사실상 하청노동자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뒤 정황을 종합하자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 이전에 이미 경인직매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다른 직매장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급한 대로 인력 충원이 가능한 B가 새로운 도급업체로 선정됐고 → B가 기존(노조탈퇴를 거부하는) 인력은 재고용하지 않아도 문제없도록 5명 이상의 인력을 미리 준비한 채 5월 31일부로 새로운 도급업체로 들어온 것이다.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이 원청 오비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선 이유다.

생계 등의 이유로 완전히 떠난 노동자를 제외하고 18명은 싸우기 위해 남았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노동존중 사회’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런 식으로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이들 노동자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용노동부 부천지청 앞 등 길거리에서 농성을 한 지 이날로 268일째가 됐다. 박종현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 의장은 지난 15일부터 이들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고용노동부 부천지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금속노련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 직매장분회 시위
금속노련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 직매장분회 시위ⓒ민중의소리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 금속노련 및 부천김포지역지부는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승계 투쟁은 단지 오비맥주 경인직매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23개 오비맥주 직매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차 수백 명의 문제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 청소경비 등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수십만 취약계층 비정규 노동자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비맥주는 고용승계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당장 부천지청 앞에서 단식농성하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사죄하고, 고용승계의 현실적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교섭자리로 나와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는 오비맥주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오는 26일부터 경기도 부천 상동 이마트 앞 등 상가밀집 지역에서 조합원들과 오비맥주 불매운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또 오는 25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오비맥주 전국 23개 직매장에 대한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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