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칼럼] 평창 덮친 코로나, 손발 묶인 한의과 공보의

동계올림픽의 도시답게 봄이 조금 늦게 찾아오는 이곳 평창군엔 아직 꽃이 한창이다. 이런 날씨면 근무 중인 보건지소 앞 초등학교가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 해야 하는데, 요새는 코로나19 때문에 조용하다. 평창군은 그간 확진자가 별로 나오지 않아 비교적 평화로웠는데, 지난 4월부터 확진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자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방 특성 상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선별진료소 운영과 예방접종, 역학조사 모두 평소의 10배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공중보건의로서 팔을 걷어붙이고 코로나19 방역 업무에 나서 바쁘게 일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음이 답답하다. 왜냐하면 나는 ‘의과 공중보건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받는 어르신 (자료사진). 2021.04.01.ⓒ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3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한의사, 치과의사도 코로나19 방역 업무에 투입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당시 진단 검사를 위한 ‘검체 채취 과정은 의사들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라는 입장과, ‘감염병 진단과 방역에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은 의료인의 의무이기 때문에 해도 된다’는 입장이 맞섰다.

당시 정부는 이 논쟁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다. 다만,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선 직역에 상관없이 의료 인력을 모두 투입해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직역 간 갈등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한의사·치과의사 투입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2~3차 대유행 당시 수도권 확산이 심각해지자 의과 공중보건의들만으론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자체가 늘어났다. 그런 지자체들에선 점차 한의과·치과 공보의도 의과 공보의와 구분 없이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대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약했던 강원도에서는 관련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올해 들어 지역 내 감염이 심해지자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강원도 중에서도 내가 있는 평창군은 진부면을 중심으로 4월 한 달 간 코로나19 확산세가 매우 거셌다. 거의 전 인구가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을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의과 공보의만 동원하려니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각 지소 공보의들은 주 5일 근무에서 4일을 출장 나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평창군 공보의들은 모든 공보의들을 코로나 업무에 투입해 달라고 군청 측에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평창군청 측은 자신들도 인력을 늘리고 싶은 상황이지만 강원도청에서 허가를 보류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평창군청 전경ⓒ사진 제공 = 평창군청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의과 공보의 정원이 한 명 줄고 그 자리가 치과 공보의로 대체 되었다. 강원도는 코로나 업무에 의과 공보의만 투입하고 있는데, 의과 공보의를 치과 공보의로 대체하면 코로나 방역 업무를 할 일손이 줄어들게 된다. 가뜩이나 심각한 의료 인력난이 더 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는 올해 전국적으로 신규 의과 공보의가 예년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가 진료 거부에 나섰고 적잖은 의대생들이 이에 동참하며 의사 국가고시 시험을 보지 않기로 한 여파다.

코로나로 조용해져 버린 지소 앞 초등학교를 바라본다. 아마도 저 학교의 학생들은 어른들이 힘을 합쳐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곧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이겨서 자신들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정치적 문제도 중요하고 직역 간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19는 국가, 성별, 나이, 인종, 종교를 막론하고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문제를 둘러싸고 다투면 피해를 보는 것은 보통의 시민들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감염병의 그늘에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니 직역 불문 모든 의료인과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로 논쟁을 미뤄도 늦지 않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대명제 아래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일할 때다. 부디 내년 봄엔 평창에서 코로나 걱정 없이 꽃 구경 나온 어르신들의 미소를 마스크 없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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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평창군 방림보건지소 한의사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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