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재경행시 출신의 경제 관료를 제압해야 나라가 바뀐다

재경행시라는 것이 있다. ‘재정과 경제 분야 행정고시’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이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행정고시’라는 말 자체가 비공식 용어다. 공식적으로는 ‘5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행정고시라는 말에 훨씬 익숙하다. 이 용어가 폐지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언론에서는 버젓이 ‘행시 수석’ 어쩌고 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이런 언어 습관부터 매우 권위적이다. 왜 9급, 7급 공무원을 뽑는 시험은 다 ‘9급 공무원 시험’, ‘7급 공무원 시험’이라고 부르면서 5급을 뽑는 시험만 고등고시(高等考試)라고 부르느냔 말이다. 7급 이하 공무원은 고등(高等)하지 않고 저등(低等)한가? 진짜 웃기는 이야기 아닌가?

나는 평소 이 재경행시를 ‘재경 5급 공무원 시험’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도 부득이하게 재경행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나는 국가 개조를 위해 이 재경행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을 완전히 박살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박살이라는 표현이 좀 과하다면 ‘제압’이라고 해도 괜찮다. 그리고 이는 거꾸로 말하면 재경행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국가 개조는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재경행시가 뭔데 이렇게까지 말하나 싶은 분들이 있을까봐 이들의 위상에 대해 잠깐 짚어보려 한다. 2010년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든 예비 신랑 신부들의 등급표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이것도 인간을 고등(高等)인간과 저등(低等)인간으로 구분하는 실로 가증스러운 짓인데, 일단 내용을 살펴보자.

등급표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1등급은 딱 한 부류,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들이다. 그리고 2등급에는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 서울대 출신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 5대 로펌 변호사가 포함됐다. 3등급에는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비(非)서울대 출신 판검사, 비서울대 출신 행시 재경직 합격자, 대형 로펌 변호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놀랍지 않은가? 서울대 출신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가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 및 5대 로펌 변호사와 동급인 2등급이다. 그 시험에 패스하면 단번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계급으로 수직상승하는 것이다.

도대체 5급 공무원이 왜 이리 대단한가? 비밀은 두 가지다. 첫째, 이들은 재직 때 국가 경제를 휘두를 막강한 권한이 있다. 그 어떤 경제 정책도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것이 없다.

둘째, 이게 나는 더 위험한 일이라고 보는데, 이들은 퇴직 후에도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막강한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한다. 재경행시를 패스해 국장급까지 오른 인물 치고 그냥 곱게 은퇴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은퇴 뒤 반드시 민간기업의 어느 중요한 위치에 올라, 현직에 있는 행시 출신 후배들에 압력을 가하는 이익 집단 역할을 한다.

이들은 그 카르텔이 자기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명박 집권 시절 나는 우연히 재경행시 출신의 전직 장관과 현직 차관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동석했다. 그런데 전직 장관은 참여정부 출신이고, 현직 차관은 이명박 정권 소속 관료였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이질적 이념 집단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딴 거 없었다. 둘이 얼마나 친한지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식사시간 내내(제 3자인 내가 동석한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고) ‘현직 차관이 다음에 어느 자리로 가야 가장 이익인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획재정부ⓒ기타

참여정부 출신 장관이 이명박 정부 소속 차관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 살가운(!)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이들에게는 이념도, 민중도, 국가도 안중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선후배들끼리 어떻게 밀어주고 끌어주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이기적인 인간들

이 칼럼에서 숱하게 언급했지만 나는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는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명제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런 류의 주장 중 유일하게 하나 인정하는 것이 있다. 공공선택학파의 창시자로 불리며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 이론이다.

이 이론의 요지는 “정치 또한 다른 경제 활동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다”라는 것이다. 뷰캐넌에 따르면 정치인이나 관료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의 이익에 너무나 충실한 전형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그래서 뷰캐넌은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을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라고 부른다. 이기심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돈만 쫓는 기업가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뷰캐넌에 따르면 정치인의 유일한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국회의원은 국가와 민중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방법만 고민한다.

고위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뷰캐넌에 따르면 뇌물을 받지 않는 관료들조차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그래서 관료는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월급과 연금을 받는 일에만 몰두한다.

내가 뷰캐넌의 이 의견에 동의하는 이유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이기적인 인간, 즉 가장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가까운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경제 고위 관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 재경행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꽤 많이 만났는데, 단언컨대 그들 중 국가와 민중, 공공을 위해 고위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출발부터 개인의 출세였다.

“그게 왜 꼭 재경행시 출신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다른 분야에서 행정고시로 고위 공무원이 되는 사람 다 비슷한 거 아닌가?”라는 반론은 충분히 옳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해 재경행시로 출세를 노리는 이들의 이기심이 다른 분야 행시를 노리는 자들의 그것보다 월등히 강하다.

실제 여러 경제학 연구를 종합해보면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일수록 이기적이다. 2018년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명예교수가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잠시 살펴보자.

“최근 이 문제와 관련된 후속연구들을 뒤져보니 이미 결론이 거의 난 셈이 돼있더군요. 즉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결과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이기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경제부처를 장악한 재경행시 출신 고위 관료들에 대한 신뢰가 1도 없다. 설혹 그들이 펼치는 정책이 맞다 한들 그건 국가를 위해 선택한 길이 아니라 그게 자기에게 유리해서 선택한 길이다.

그래서 나는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다음 대선에서 재경행시 출신의 고위 관료들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선출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수십 년 동안 단단히 결속된 거대한 이익 카르텔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민주주의에 의해 부여된 권력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상기하며 칼럼을 마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재경행시 패스한 고위 경제 관료들에게 있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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