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아계의 승진이 늦는 숨은 이유

패션과 뷰티 업계에 있는 아시아계 전문가들ⓒ사진=인터넷 캡쳐

편집자주: 48개국을 아우르고 있는 아시아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역사를 지닌 민족이 많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다양한 대륙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잘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채, 아시아계를 동질적인 하나의 집합체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그런 차이도 잘 감지하지 못하니, 아시아계의 개인적인 차이에는 더더욱 무디다. 직장 동료에게조차 아시아계를 '그 동양인'으로 인식하고 얼굴과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아시아계 전문직의 낮은 승진율의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The Cost of Being an ‘Interchangeable Asian’

마케팅, 학계, IT, 출판, 의료와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더니 다른 아시아계 직장 동료로 오인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다. (그녀는 직장동료가 없는 소설가다.) 나머지에게는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는 것이 일상사라고 한다. 범인은 대부분 백인들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이를 악의 없는 실수라 생각하면서 그 불편한 순간들을 털어버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과연 바람직한 대응일까? 무심히 이뤄지는 아시아계 얼굴 혼돈 현상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미국의 아시아계역사학, 사회학 및 심리학 학자들은 이 현상이 심각하고도 해롭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학자들은 아시아계 직장 동료의 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무의식적인 편견이 있다며, 이는 개인생활과 주류 매체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노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더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런 부주의가 차별의 한 형태라며, 미국 역사 초기부터 있었던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 그러니까 모두가 생김새와 행동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아시아계는 이름 없는 자동화된 기계 군단으로 승진을 위해 기억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미국의 주 별 아시아계 비율을 보여주는 지도다.ⓒ지도=인터넷 캡쳐

미세공격(micro-agres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적대적이거나 경멸적, 부정적인 편견과 특정 집단을 폄하하는 사소하고 간단하며 평범한 일상적인 모욕이 미세공격이다. 미세공격은 언어나 행동 혹은 환경으로 이뤄진다.

유색인종의 대부분은 소속집단에서 남과 동등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이런 미세공격을 많이 받는다. 백인은 유색인종을 인종별로 구분만 할 뿐, 개인의 능력이나 기여,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그걸 알아내고 인정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대접은 사람의 성공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미국 전체인구의 7%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가 승진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놀랍지 않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 남과 구별은 해야 승진할 게 아닌가. 아시아계 남성은 기술직의 50%를 차지하는 실리콘밸리에서조차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임원이 되지 못한다. 여성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9,200명의 전문직 아시아계 여성을 대상으로 했던 한 연구에서 36명만 경영진에 합류했다.

그놈이 그놈인 동양인

올해 초였다. 밴쿠버의 간호사 위니 쳉(28)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간 함께 환자를 돌봐왔던 의사가 자기를 ‘제인’이라고 불렀다. 제인은 함께 일하는 다른 아시아계 여성의 이름이다. 위니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를 직접 지적하는 건 너무 어색할 것이라 결정했다. 그런데 의사의 ‘실수’가 몇 시간동안 이어졌다. 환자들 앞에서까지 말이다. 위니는 그 의사 앞에서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다른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의사는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다른 동료가 그에게 잘못을 일러줬고 인도계인 의사는 굉장히 무안해 하면서 연신 사과했다. 몇 달 후에는 백인 동료가 위니를 ‘안젤라’라고 불렀다. 함께 일하는 두 번째 아시아계 여성과 그녀를 혼동한 것이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동료들이 위니를 그냥 ‘그 동양 여자’라고 인식한다는 소리였다.

그러다가 위니가 키 큰 백인 남성 신입의 훈련을 맡았다. 위니가 그를 동료들에게 소개해 줄 때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를 수십 명의 다른 백인 남성 동료들과 헛갈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위니는 씁쓸했다. “이런 경험은 직장생활 내내 축적된다. 함께 일하는 이들이 4년 간 함께 일했던 나의 이름은 제대로 모르면서 한 번만 들어도 이름을 기억하고,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여러 기회를 준다.”

1870년대 불황 때부터 미국에 처음으로 건너간 아시아계인 중국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급증했다. 이 그림은 중국인 배척법이 통과됐던 1882년에 그려진 캐리커처로, 중국인을 실업에 허덕이는 백인들의 직업을 뺏앗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그림=샌프란시스코 일러스트레이티드 와스프

모든 동양인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고정관념은 100여 년 전부터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할 아시아인들은 “해변의 모래 한 알, 바다의 물 한 방울들이 몰려와 이 나라를 뒤덮으려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후 일본, 한국, 베트남에서 전쟁을 할 때, 미군도 모든 동양인들 사악한 하나의 집합체로 보도록 훈련받았다. 적을 최대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동양인을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고착된 것이다.

백인이 백인 동료의 얼굴과 이름을 더 쉽게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종 간 편견(cross-racial bias)’이다. 사람들이 자기 인종의 얼굴을 더 쉽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인종과의 접촉이 많을수록 이런 편견이 줄어든다. 하지만 2014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백인의 75%는 유색인종 친구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의 한 조사에서는 미 국민의 42%가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름을 단 한 명도 대지 못했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교류가 주변사람이나 친구 사이에서만 제한적인 게 아니라는 얘기다.

투명인간인 동양인

지난달 30일의 일이었다. 한국계 배우 줄리 리(40)가 남자친구와 함께 로스앤젤레스(LA) 일대의 연극상인 ‘오베이션 어워즈’의 온라인 시상식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줄리는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수상 소감을 미리 녹화해 제출했고, 시상식은 후보들을 호명할 때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부를 때 줄리는 충격을 받았다. 화면에 다른 아시아계 여배우 모니카 홍의 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게다가 사회자가 줄리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다. 멈칫했던 줄리는 빵터졌다. “상황이 어색하거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 그런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차라리 웃는 게 더 안전하다. 웃는 게 예의바른 반응이다.” 줄리의 설명이었다. 소동을 일으킨 LA 극단의 연합기구인 LA 스테이지 얼라이언스는 이 사건으로 25개 극단이 탈퇴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한국계 미국 배우 줄리 리.ⓒ사진=인터넷 캡쳐

아시아계 배우들이 한 상을 놓고 경합하는 일은 물론이요, 한 무대에 같이 서는 일도 드물다. 대중문화에서 아시아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건 큰 문제다. 2018년 100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계가 주인공이었던 작품은 2개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무대나 스크린에서 아시아계를 거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도 아시아계의 얼굴을 구분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또 아시아계가 출연을 해도 조연일 때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들을 기억하기가 더 어렵다.

만화가 진 루엔 양이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할 때 아시아계 동료가 1명 있었는데,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할 것 없이 모두가 이 둘을 늘 혼동했다. 양이 선생님으로 일했던 17년 내내 말이다. 2006년 양의 ‘중국인으로 태어난 미국인’은 내셔널 북 어워드(전미도서상) 사상 결선에 진출한 첫 만화가 됐고, 권위있는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당시 친구들은 그에게 그의 만화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려는 제의가 헐리우드에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며 대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양은 소속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양은 한 하나의 제의도 받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아시아계 얼굴은 홍보하기도, 팔기도 어렵다.”

아시아계의 유리 천정

‘울어대는 오리가 총에 맞는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삐걱대는 바퀴가 기름을 얻는다’는 서양 속담과 정반대의 속담이다. 이 차이가 아시아계의 낮은 승진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얘기가 있다.

2018년 고용 자료에 따르면, 백인 남성이 임원이 될 확률은 아시아계 남성의 1.9배, 백인 여성이 임원이 될 확률은 아시아계 여성의 1,3배가 넘는다고 한다. 또, 2013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구글과 휴렛팩커드, 인텔, 링크드인, 야후의 5개 회사에서 일하는 백인 전문직과 아시아계 전문직의 숫자는 비슷했지만 백인들이 아시아계보다 임원이 될 확률은 1.5배가 넘는다. 아시아계는 중간 관리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원인에는 아시아계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리보다는 기술직을 선호한다는 잘못된 편견도 있지만 문화적 차이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연구자들이 인터뷰한 아시아계 전문직의 다수는 부모가 일을 잘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남아시아부터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문화는 민족에 따라 매우 다르다. 하지만 분란보다는 조화와 갈등 회피를 선호하는 것, 울어대는 오리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비슷하다.

2021년 3월 27일, 뉴욕의 한 아시아계 증오범죄 규탄 시위에서, 한 아시아계가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다"라는 펫말을 들고 있다.ⓒ사진=인터넷 캡쳐

미국에서 삐걱대는 바퀴가 되어야, 우는 아이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양인이 그렇게 변해야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거다. 반면 아시아계의 낮은 승진율은 구조적인 문제로, 개인에게 그 책임을 돌리지 말고 인사담당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간부들이 아시아계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알고, 이들에게 승진 기회를 동등하게 주지 않으면 파장이 일고 본인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돼야 아시아계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다.

이에 반박할 이도 많다. 아시아계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최소한 사람들이 이름을 잘못 부를 때에는 이를 고쳐줘야 한다고 말이다. 나와 인터뷰한 사람 중 압도적인 다수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백인 동료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를 때 가만히 있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교육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는 사람들처럼, 백인들이 자기 편견을 바로 잡을 기회가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이 이뤄지려면, 이름을 틀리게 말한 쪽에서 자기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은 최소한 인정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도 있다.

게임 개발자인 라우 박사가 예전 회사 동료들을 만났을 때 얘기다. 한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회사를 알고 있는데, 그들이 라우 박사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잠시 갸웃거린 라우 박사는 옛 동료가 자기와 다른 아시아계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라우 박사가 이를 지적하자 백인 동료는 당당하게 되물었다. “진짜 너 아니야?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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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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