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주30시간 일하는 사회, 자본주의에서 가능할까

노동시간 감축은 과로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아침 6시인데, 밖은 아직도 깜깜합니다. 도시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만, 저는 아직 잠자리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글 쓰는 일로 몸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밤에는 반드시 잠을 자고 하루에 책상 앞에 10~12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언제 생각을 하고, 언제 일을 하고, 또 언제 독서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삶은 언제 살고요?(...) 저는 너무 지쳐서 고통스럽고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습니다.” *

이 글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그는 말년에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사회적 명성을 얻었지만, 몸과 마음이 매우 쇠약해졌고 유명세로 인한 과로가 지병을 악화시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출간한 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빈곤하고 불안정했던 삶을 벗어나게 해준 경제적 성공 덕에 행복했을까? 위의 편지글을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제대로 된 삶이 부재한 자신의 일상에 대해 격정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인은 폐결핵, 만성기관지염, 폐기종이었다. 실제 이런 질병들은 좋지 않은 생활 환경, 스트레스, 과로로 인해 악화되며, 그렇게 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뇌혈관 질환과 심혈관 질환은 장시간 노동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 질환이다. 신장 질환, 호흡기 질환 등의 질병 역시, 오랜 시간 일하고 충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리학적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치명적 질병들이다. 최근에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그로 인한 자살도 장시간 고된 노동의 결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로는 현재 우리에게도 멀리 있지 않다.

OECD 가입국들의 연간 노동시간 통계 (2020)ⓒ그림 = OECD DATA 홈페이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0년 기준 1,908시간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 중 하나다. 우리는 OECD 평균보다 연간 220시간 더 일한다. 그리고 과로사를 나타내는 영단어 ‘카로시(karoshi, かろうし)’를 만들어 낸 대표적 장시간 노동국가 일본보다 연간 3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라는 용어 대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근로자’라는 말이 법적으로도 일상적으로도 더 많이 쓰인다. 도대체 근면 성실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밤새 공부하는 학생들의 성실함을 칭찬하고, 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까지 일하는 ‘일 중독’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는 과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산업혁명 시기 유럽의 노동자들은 하루 20시간 남짓 일을 했고 19세기 초반까지도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많은 나라들이 130년 전에 쟁취하여 노동 시간의 표준으로 삼은 1일 8시간을 준수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엔 주 30시간 노동이 가능할 지 예측해보고 있다. 주 40시간 노동을 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근 주52시간제 도입을 비판하며 ‘경우에 따라 주120시간도 일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한 대선주자 발언은 세계적 트렌드에 역행하는 셈이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옆 인도에서 열린 '최저임금 개악저지 한국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8-05-23ⓒ임화영 기자

국가적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 노력을 한 대표적 사례로는 2015년부터 2년 간 스웨덴의 제2도시인 예테보리시(City of Gothenburg)에서 요양병원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이 기간에 예테보리시 스바르테달렌(Svartedalens)지역의 노인 요양병원 간호사들은 급여는 이전과 똑같이 받으면서 하루 6시간 근무했다. 실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하루 6시간만 일한 간호사들은 8시간 일한 간호사들보다 건강상태가 더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들은 일-생활 양립, 즉 워라밸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사실, 북유럽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핀란드에서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두 사람이 교대로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6+6 제도가 실험된 바 있다. 위에 언급된 예테보리시에서는 10여 년 전에도 공공부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 그외 스웨덴의 토요타 서비스센터, 인터넷 스타트업 기업인 Brath, 스톡홀름의 앱 개발회사인 Filimundus 등의 기업에서도 6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시도로 이뤄진 하루 두 시간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 측면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고 워라밸을 맞추는 데 기여했다. 기업 측면에서도 생산성 향상과 이직률 감소를 통한 비용 절감으로 이윤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사회들은 이러한 실험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직접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대단히(overwhelming) 성공한” 것으로 소개된 아이슬란드의 주 4일 근무제 실험 역시 눈길을 끈다. .*** 아이슬란드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은 정부 주도 하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1%인 2,500여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교사, 병원 종사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4년 간 참여한 대규모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들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이러한 노동시간 감축 실험에는 사회적 비용 등 아직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있어, 노동조건과 삶에 대한 장밋빛 미래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또 해당 국가에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실험 중단과 재시도가 반복하며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된 8시간 표준노동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일터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도 몇 개의 기업들에 국한된 일이지만 주 4일 노동제가 시행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과로사로 사망 전 동료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 앞에 택배 노동자가 앉아 있다. 2020.10.24ⓒ정의철 기자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노동시간 감축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여기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20명이 넘는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사망했다. 물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급속한 택배 물량 증가가 이들의 과로를 야기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택배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주52시간 이상 노동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들 뿐 아니라 표준계약서 작성도 하지 못한 채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밤샘 노동에 시달리는 다양한 업종의 프리랜서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모두 제도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상태다. 이들은 주 8시간 노동은커녕, 기본적인 노동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노동시간 감축 시도가 과로의 구조를 존속시킨 채, 그리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그대로 둔 채 달려나가듯 이뤄져선 안 된다. 내가 되찾은 소중한 삶의 여유와 휴식이 다른 누군가의 밤샘 노동과 과로로 인해 가능해지는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 『도스토예프스키2』, 콘스탄틴 모츨스키, 김현택 옮김, 책세상, 2000
** OECD DATA, https://data.oecd.org/emp/hours-worked.htm
*** “주4일 일해도 월급 그대로...이걸 입증한 아이슬란드 실험”. 중앙일보, 202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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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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