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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1인시위 학생 “서남표 총장, 미국 명문대는 자살 많다고 하더라”

정혜규 기자 jhk@vop.co.kr

입력 2011-04-09 18:07:36 l 수정 2011-04-10 11:15:33

카이스트 1인시위 재학생

지난 4일부터 카이스트에서 1인시위를 연 이준혁(21)씨는 "학교측에서 학생들과 소통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은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난 4일부터 4일간 교내에서 서남표 총장에게 ‘교육정책 개선, 학생과의 소통 강화’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한 이준혁(21, 11학번)씨도 큰 충격을 받은 학생 중 한 명이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카이스트 재학생 장모(25)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1인 시위를 생각하게 됐다.

올해 들어 3명의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을 목격한 그는 학교측에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학생들과 소통을 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답변은 없었다. 추후 학교 관계자를 통해 확인하니 ‘문자를 받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측이 소통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이씨는 카이스트 학생 커뮤니티에 ‘학우들의 지지가 있으면 1인 시위를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3,000여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학생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씨는 지난 4일 총장실이 있는 대학본관 앞에서 ‘소통의 기회를 열어달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학교측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8일 ‘학생-총장 간담회’ 직전 만난 이씨는 “학교생활에 여유 자체가 없다”며 “낮에는 영어수업, 밤에는 ‘연습반’이라는 한글 수업을 듣다보면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들 여유가 없다보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채 학점 경쟁만 한다”며 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교육 정책들의 전면 전환을 촉구했다.

그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던 지난 7일 카이스트 10학번인 박모(19)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올해 들어 4번째 학생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씨는 일단 시위를 중단했다. 하지만 8일 열린 간담회 이후 학교측의 변화가 없을 경우 또다시 피켓을 들 수 있는 상황이다.

이준혁 제공

이준혁씨가 지난 7일 카이스트 대학본관 앞에서 학교측에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시위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하니까 충격이 컸다. 학교 프로그램도 제대로 참여를 못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했는데 학교측에선 개인의 의지 부족을 탓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경쟁은 있고, 이 경쟁을 이겨야 지도자가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답답했다.

학교가 변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소통을 해야 했다.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학교측에 소통을 하자고 문자와 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나중에 확인하니 ‘문자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학생의 소통요구를 학교측에서 거절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시위를 생각하게 됐다.”

- 시위 이후에 총장과 만났다고 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지난 5일 총장과 만났다. 영어수업, 차등 수업료제 등 학생들의 생각을 전달했다. 하지만 총장은 미국의 유명 대학을 거론하며 경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봤다. 미국의 명문대는 카이스트보다 학생 자살이 더 많다면서 개인 우울증 문제 정도로 생각했다. 총장이 변화를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변화 의지를 체감하진 못했다.”

- 학교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답답했나.

“생활에 여유가 없다. 학교생활을 어려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하는데 학생들이 여유가 없다보니 친구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학점 경쟁만 계속 한다. 카이스트의 목표가 무엇인가. 과학인재를 양성해서 인류에 공헌하는 것 아닌가. 어려운 이들을 돕고 같이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육을 해야하는 데, 학교 교육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난 이후에 1~2학년들은 일주일에 4번 정도 ‘연습반’이라고 해서 한글 수업을 반복한다. 학교에서 기초를 닦을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밤 9시, 10시까지 공부하다보면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다.

같이 입학한 친구 중에 입학사정관제로 들어온 친구가 있다. 국악을 잘하는 친구였는데 국악과 과학을 접목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이 친구의 재능을 살려주지 못했다. 수업 자체를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그 친구는 결국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했다. 가르치지 못할 거라면 왜 이 학생을 뽑았나. 차라리 전국 수능 점수로 학생을 나눠 1등부터 1000등을 입학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나.”

- 지난 7일 서남표 총장은 차등 수업료제 폐지 등을 포함해 일부 대책을 내놓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때 내놓은 정책들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환영한다. 서 총장이 언론과 국민의 질타에 ‘불끄기 식, 보여주기 식’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지금 질 수 있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총장과 학생 모두에게 하고 싶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살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근데 2~3명이 연이어 자살하니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학교 어딘가에는 문제가 있다. 자기만의 생활 공간인데 이 속에서 즐거움을 못찾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학교가 학생과 소통을 통해 정책을 바꿨으면 좋겠다.”

- 1인 시위는 이제 그만할 것인가?

“저는 고등학교 때 총학생회장을 한 경험이 있다. 이때 경험을 살려 학우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있으면 대변해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인 시위를 계속할지, 그만할지는 간담회 이후 학교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결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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