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재기, 팔팔한 기운 넘치는 젊은 작가들의 ‘편력’
송원아트센터
우찬송, 찾아가는 대중미술 no.1, 단채널 영상, 00:02:40, 2013, 인스톨레이션 뷰ⓒ민중의소리

신선했다. 비엔날레에 온 느낌이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경향이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젊은 작가들이 노인처럼 원숙하고 보수적인 작품을 내놓았다면 실망이 컸겠다. 재물이나 명성보다 강한 무기는 이들이 젊다는 것. 곱고 점잖지 않아도 좋다.

전시 제목은 편력이다. 편력은 한곳에 정착하거나 정주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거나 여러 경험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

편력은 여성 편력, 직업 편력처럼 나쁘게 생각하면 끝이 없지만 달리 생각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씨앗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편력은 젊은 세대에게 요구대는 정신이다. 어떤 세력이나 어려움에 뜻을 굽히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모험심. 훗날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전시장에는 낭만과 재기, 팔팔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젊은 작가들의 마음속 결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젊었을 때 이들처럼 상상하고 창작하며 재밌게 살았나 생각이 들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직 늙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모두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전시장에 비치된 자료를 들고 찬찬히 작품을 둘러보길 권한다. 여러 작가의 작품과 그 속에 함의된 뜻을 단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다. 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관람이 되겠다.

권동현 작가는 재개발 지역에 들어가 강제 철거되는 건물의 벽에 남겨진 철거표식을 작품 <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시리즈로 가렸다. 그리고 폐허가 된 지역을 마치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꾸몄다. 곧 헐리게될 건물에 물감을 묻히는 행위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삶에 새겨진 아픔과 상처를 보듬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권 작가는 시멘트로 대충 만들어놓은 달동네 계단도 작게 재현했다. 이 또한 <위장무늬>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흔적이다.

김기범 작가는 <낭독방>을 만들었다. 낭독방 안에 들어가면 노래방처럼 시와 여러 형태의 배경소리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를 드는 순간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에 몸이 움찔하게 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어색함과 거부감이겠다.

김 작가는 또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쓰던 저격용 조준경으로 서울 풍경을 바라봤다. 국내에서 금지된 무기, 비극적 역사를 담은 총으로 비춰낸 풍경. 이 작품 또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그의 작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용인되지 않고, 헷갈림과 당혹스러움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투영했다.

김한울 작가는 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김 작가는 불쾌함을 자아내는 잔반들을 퇴식구에 가져가기 전에 새로 나온 음식처럼 보이도록 재구성했다. 그리고 식기를 작은 탑처럼 쌓아 작품의 느낌을 더욱 부각시켰다.

쓰레기와 다름 없는 잔반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노력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술관에서 고상하게 전시된 작품과는 또다른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김혜리 작가는 타인의 낙서를 예술로 만들었다. 물감을 수없이 겹쳐 뿌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배경을 만들고 낙서를 입혀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김 작가의 작품은 낙서를 예술로 변모하기 위한 무대인 셈이다.

작품 주제는 가족이다. 그녀는 가장 가깝고 친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가족의 의미를 묵직한 배경에 그려진 낙서로 은유해 냈다.

백경호 작가는 복잡한 구성과 기하학적 형태, 원색과 탁색의 조합, 원근법적 구도와 평면적 화법을 함께 적용해 추상적인 만화 이미지를 창조했다. 기본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넌센스 같은 배합이지만 이런 요소들을 눈이 불편하지 않도록 했다.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찬송 작가는 거대한 모형 햄버거를 작은 수레에 싣고 거리를 누볏다. 하지만 우 작가의 모습은 평범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중에도 일상과 섞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일종의 예술적 실험이다. 그러니까 엘리트 주의, 자본주의적 우상을 만들어내는 팝문화를 비판하고 고급 미술의 제도에서 벗어나 순수 예술이 존립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홍지훈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허무를 탄산음료를 담는 용기인 캔으로 표현했다. 탄산음료는 자본의 욕망이 잘 드러나고 대량소비되는 음료다. 또 나체로 아파트 옥상에서 철근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홍 작가는 이 작품을 제작기 위해 캔을 모으다 신고를 당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이 일을 겪은 뒤 그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추론했다. 출구 없는 욕망과 허무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겨내고픈 번뇌의 연속이겠다.

권동현, 김기범, 김한울, 김혜리, 백경호, 우찬송, 홍지훈 작가의 <편력>전이 오는 8월 24일까지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송원아트센터가 2007년부터 열어 온 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하고 동시대 미술계에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마련됐다.

송원아트센터
김기범, 낭독방, 설치_200×150×120cm, 2013, 낭독방 안, 인스톨레이션 뷰ⓒ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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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훈, 응급처치, 철제 프레임 구조물, 인공 조명, 소리, 영상 모니터, 가변설치, 180×240×260cm, 2013, 인스톨레이션 뷰ⓒ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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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NO FUTURE,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94×130.3cm_2013 / 두 개의 달,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2×224cm, 2013, 인스톨레이션 뷰ⓒ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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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현, 모각-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1, 콘크리트 설치, 35×7×8.5cm_2012, 인스톨레이션 뷰ⓒ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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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호, log out, 캔버스에 유채, 천, 130.3×162.2cm, 2013ⓒ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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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울, 잔반처리, 사진,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 01:07:02, 2013ⓒ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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