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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일 칼럼] 호남의 촛불민심과 야당의 촛불인식

촛불은 열한 번째 광장을 메웠다. 특히 올해 들어 첫 번째 촛불은 세월호 1000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집회였다. 광주에서도 이번 주의 촛불은 세월호 1000일을 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시작한 촛불집회는 전 세계에 놀라움과 감동을 줬고 세계 시민들에게 한국 국민들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준 높은 한국의 민주시민, 저질의 정치수준”이라는 외국 언론의 평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민주시민혁명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촛불혁명이다.

그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 이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수많은 촛불과 절규가 우리 사회를 분노하게 했고 특히 가장 큰 이슈인 ‘대통령의 7시간’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여당의 의원의 망언처럼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도 시간이 좀 지나면 무관심해지고 망각해가는 현상이 많았다. 그러나 그간 “냄비근성”이니 “기억상실의 사회” 등이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다면 이제는 “잊지 않겠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습니다”와 “Remember 416”과 같은 다짐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퇴진하라”, “김기춘 우병우를 구속하라” 등의 구호에서 보듯이 짧지만 우리사회의 모순과 비리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현실을 보고 진단하는 의식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국민들의 염원과 절규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과 당사자들은 뻔뻔하게 반성은커녕 온갖 거짓으로 마치 국민과 정치권을 희롱이라도 하는 듯 하다. 전열을 가다듬고 재반격을 시도는 모습에 분노를 넘어 한심하기까지 한 현실이다.

뉴DJP연합이 호남 민심인가

게다가 촛불정국을 통해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부응해나가야 할 야당의 행보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물론 민주당의 행보도 마땅치 않지만, 특히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의 경우는 점입가경이다. 유력한 당대표 후보인 박지원 의원은 “뉴디제이피연합”을 운운하며 호남민과 촛불이 요구해온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요구는 깡그리 무시한 채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반민주적 인사들과의 연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궤변을 내뱉었다. 주승용 원내대표가 한 술 더 떠 차기 대선에서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문재인과는 연대하지 않겠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자 호남의 유권자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에만 눈이 어두워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이런 망언이 계속되면서 과연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겠는가. 민주당에 대한 실망으로 차악을 선택한 결과물인 국민의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민주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당의 색깔과 노선이 호남 유권자들에게는 실망과 분노를 안겼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그 반응은 고스란히 나타나, 국민의당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험악하다.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한 호남민의 지지도가 높아진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왼쪽)와 주승용 의원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악수하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왼쪽)와 주승용 의원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악수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철저한 적폐청산이 최우선 과제

시민들의 간절한 요구와 구호가 제도 속에서 반영되고 실현되려면 정치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제는 과거처럼 교언영색의 수식어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구시대적 정치인은 생존해나갈 수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왔다고 본다. 87년 6.29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촛불이 일시적으로 수면으로 가라앉아버리면 그 촛불의 열매를 따먹는 기회주의적인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확인하는 정치로 진화하고 있음을 이번 촛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들이 이를 수용하고 촛불의 민심에 부응해야 한다. 말로만 촛불을 바라보고 가겠다고 현혹하지 말고 정말 촛불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최근 촛불민심을 개헌과 연결짓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서 시민사회가 개헌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준엄하고 엄혹한 시기에 개헌을 왜 거론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의 부패기득권 세력이 전열을 가다듬고 끊임없이 촛불을 죽이기 위한 공작을 진행하고 있는 시점이다. 박근혜게이트에 연루된 각 분야의 적폐청산이 먼저 이루어 져야하고 개헌문제는 그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특히 지금 정치권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부패정권에 부역했거나 동조해왔던 사람들이 촛불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척결 대상이 된 당사자들이 개헌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뻔뻔하게 이 시국에 개헌을 이야기하는지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하다.

물론 지금 촛불정국에서 개헌을 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일부의 주장도 일견 타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절대적 명제는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현장에 확인한 것처럼 이 엄청난 에너지와 시민들의 열정을 건강한 민주주의의 자양분으로 승화시켜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이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동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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