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 가격이 1만 원에 육박했던 계란 파동이 슬슬 마무리되는 모양이다. 명절 지나고 계란 한 판 가격은 8000원 대로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내는 중이다.
“모처럼 신기한 경험 했다”고 웃고 넘어가기 앞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계란은 매우 중요한 3대 완전식품 중 하나지만, 솔직히 말해 비싸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계란이 쌀이었다면? 이번 파동이 계란 파동이 아니라 쌀 파동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을까?
위기를 과장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고작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5일 <노컷뉴스>의 기사 제목은 “계란 과잉생산…가공 산업은 걸음마 단계, 정책 지원 시급”이었다. 불과 4개월 전 한국은 계란이 너무 넘쳐나 정책 지원까지 필요한 나라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넘쳐나는 계란이 조류인플루엔자(AI) 한 방에 품귀사태를 맞았다. 말 그대로 ‘대란(大亂)’이었다. 이게 뭘 뜻하는가? 계란 같은 농축산품은 공산품과 달라서 공급이 결코 일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농축산물은 기후변화나 전염병 같은 하나의 요인으로도 공급이 극심하게 흔들린다. 이번 계란 사태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아, 하얀 계란은 하얀 닭에서 나오는구나”라는 상식의 확대가 아니다. 우리의 식량안보가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 인식이다.
연초부터 식용유 가격도 20% 가량 급등했다고 한다. 설탕 가격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그런데 이건 한국 입장에서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니다. AI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기라도 하지, 식용유의 원료인 콩과 설탕의 원료인 원당 가격이 오른 이유는 한국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콩은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큰 홍수 탓에 가격이 급등했고 원당은 엘니뇨현상으로 최대 원당 생산국인 브라질과 인도, 태국 등의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잘못이야”라며 웃고 넘길 수 없는 게 식량 문제다. 누구 탓을 하건 국민들의 식량 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AI를 옮기고 다는 게 철새라면서 백날 철새 욕하고 다녀봐야 뭐가 달라지나?
계란 사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계란을 수입하기 전까지 한 달 넘게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 이번 사태가 계란이 아니라 쌀에서 일어났다면 지금 한국은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까?
자유무역을 지지하며 농업을 천대하는 자들은 “식량이 부족하면 외국에서 사오면 되지 뭐가 문제냐?”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런데 계란 하나 가지고도 수입을 하는데 한 달 가까이 이 난리를 쳤다. 그나마 미국과 호주가 계란을 팔아줘서 수입이 가능했다. 만약 쌀에서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는데, 주요 쌀 수출국들이 쌀 수출을 거부하면 우리는 그 사태를 감당할 능력이 있나?
한국은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안보 취약국이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인구가 5000만 명 남짓한 한국은 무려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2010년 현재 곡물 자급률은 27%에 불과하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미래의 전쟁이 총 쏘는 재래식 전쟁이 아니라 식량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농업 강국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충분한 식량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것이 국력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자 식량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대비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은 식량안보는 고사하고 당장 계란 파동조차 극복할 실력이 없다. 정부의 잘못이 매우 크지만, 농업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 전반의 인식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농업인구가 250만 명이면 최소한 국회의원 300명 중 15명은 농민을 대표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300명 국회의원 중 농민을 대표하는 이는 민주당 김현권 의원 한 명뿐이다. 그나마 김 의원조차 민주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김종인 비대위의 방해를 뚫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리를 따 낸 것이다. 강기갑, 윤금순, 김선동 같은 농민 의원들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적정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그 국가의 생존권 문제다. 그래서 ‘안보’라는 단어를 붙여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이번에 겪은 계란 파동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식량안보에 취약한지 절절히 실감할 수 있다. 한국 농업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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