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교토의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조선인 1,300여 명이 살았던 곳입니다. 일제 식민지 강점과 전쟁 동원의 피해자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집단 합숙소이자 7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일본 군수기업의 토지 전매, 일본 정부의 방치 등으로 강제철거 위기까지 갔던 우토로는 가까스로 한국 정부의 지원과 민간 모금 등으로 안정을 찾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동포들의 흔적 또는 추억이 점차 지워지고 있습니다. 마을을 일구고 지킨 동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토로의 역사를 한국, 일본, 재일동포의 다음 세대에게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할 때입니다.
‘민중의소리’는 아름다운재단, 우토로역사관을위한시민모임의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 캠페인 ‘기억할게 우토로’에 맞춰 연재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낡은 우토로는 이제 사라지지만, 우토로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뮤지컬 배우인 재일교포 3세 정아미 씨(42)는 우토로에서 태어나 20여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경남 진주 출신의 그의 할아버지가 우토로 조선인 1세였다. 현재 우토로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강경남 할머니가 정 씨 할아버지의 형수 여동생라고 했다. 우토로에 살 때부터 노래를 좋아하던 정아미 씨는 조선대 음악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교토 조선가무단과 극단 새로운 교토 등에서 노래 강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극단 시키(四季)에서 무려 11년 간 활동한 베테랑이기도 하다.
정 씨는 10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우토로 기억을 하나 둘 꺼내보였다. 현재는 공터가 된 우토로 마을회관 ‘에루화’ 옆 부지가 정 씨가 살던 집이었다. 2003년 화재가 나면서 집은 소실됐다. 1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와 배추김치, 오이김치를 했던 기억도, 자주 해주시던 쑥떡도 떠올렸다. 먹고 살기 위해 헌옷으로 기저귀를 만들려 꿰매는 부업 일을 하면서도 우리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손주들에게 늘 말씀하셨던 할머니셨다. 당신의 자식과 손주, 재일동포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 마을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던 할머니의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어린시절, 우토로 마을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각종 김치와 반찬을 실은 트럭이 왔다. 같은 재일동포가 운영하던 것이었다. 트럭에선 늘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노래 소리가 들려왔고, 절로 흥얼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구경을 나갔던 소소한 일상이 그에겐 추억거리가 됐다.
그렇게 그에게 우토로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차별과 탄압을 받던 아픈 곳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당시엔) 조선학교에 함께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고, 일본으로 귀화한 친구들도 (마을에)살았다. 초급생 시절,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어떤 일본인이 ‘마늘 냄새가 독하다. 조선으로 돌아가라’라고 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과 종종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는 “91년 경이었는데, 집회에 장구를 들고 상고모자도 쓰고 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할매야 어째서 여기에 살고 있나’, ‘우토로에 사는 게 죄가 된다면 이곳으로 끌고 온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의 노래 가사였다”고 전했다. 그런 기억은 조선사람이라는 긍지로 남았다.


정 씨는 “뮤지컬 단체에서 11년 간 생활하면서도 정아미라는 본명을 썼다. 어릴 때부터 우토로의 조선사람, 정아미라고 당연한 조건 속에 살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본명으로 활동했다”며 “우토로에 살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비단 우토로 뿐 아니라 곳곳의 재일동포들은 온갖 차별을 당하며 살았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 동포들이 힘들었던 역사를 알린다는 의미에서, 우토로는 하나의 수단으로 남아야 한다”며 “(기념관이) 재일동포들이 겪어온, 그들이 끌고 왔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한국 내에서 평화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정아미 씨는 “저 스스로도 살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너무 부끄럽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데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고 그렇다. 과거 우토로 마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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