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 정권이 탄생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 재집권에 성공했다. 올해 초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학원 스캔들 등으로 크게 흔들렸던 아베 내각은 지지율까지 크게 하락하면서 체제 유지에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당심은 다시 그를 택했다. ‘아베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민심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로서 아베 총리는 오는 2021년 9월까지 임기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재팬패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거듭 북일정상회담 등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언급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포스트 아베’가 없다
지난 20일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출을 위한 선거가 실시됐다. 상대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지난해 4기 내각 출범 후 학원 스캔들, 문서조작 등으로 시끄러웠던 아베 총리를 향한 저격수를 자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국회의원표(405표)와 당원표(405표)를 합산, 553표로 과반수를 얻은 아베 총리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내년 11월 20일이면 일본 헌정 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총리로 등극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선거기간 동안 자신의 정권에서 경제가 회복세를 보였고, 농수산물의 수출 및 관광 진흥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는 실적을 재차 강조했다. 상대 후보를 비롯 야당의 각종 스캔들에 대한 공세는 먹히지 않았다. 실제 자민당 내부에선 지난 2012년부터 아베 노믹스로 경제 안정화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그의 행보에 높은 평가가 나온다. 물가 안정은 아직 달성못했지만 최근 실업률을 2.5%까지 내리고 고용율도 두 배 가까이 올렸기 때문이다.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기업 실적도 높아졌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왔다. 아베 총리 역시 최근 일본 경제에 대해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포스트 아베’가 없다는 인식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아사히 신문이 지난 8, 9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41%였다. 아베 총리가 ‘차기 총재로 적합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39%였고, 이시바 전 간사장이 적합하다고 한 사람은 27%였다. 자민당 지지층에선 아베 총리가 65%로 이시바 전 간사장(19%)보다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교도통신이 14, 15일 지방표를 가진 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아베 총리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무려 55.5%를 기록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의 표심이 아베 총리로 향해있다는 반증이었다.
당초 출마를 검토했던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과 노다 세이코 총무 장관이 돌연 출마를 포기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중의원 의원은 지난 전국 선거에서 자민당이 크게 승리한 후 “아베 총리를 대체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제1 야당의 ‘무력함’도 아베 총리가 재집권 하게 된 배경이라는 말도 나온다. 각종 스캔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도 ‘아베 총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는 것이어서 내각 전체를 뒤흔들 치명타는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당분간 ‘외치’에 무게…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국민들은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 변화에선 아베 총리가 적격이라고 보고 있다. 북핵, 미사일 문제를 비롯 중국의 해양 진출 등의 문제로 일본은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당분간 외치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특히 지난 12일 러시아에서 열린 제4차 ‘동방경제포럼(EEC)에서 한 그의 발언을 주목할 만 하다. 아베 총리는 당시 “일본은 지금 역사의 큰 전환점에 서 있다”며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초석을 쌓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을 비롯 중국, 러시아와도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 순위로 뒀다. 그는 “다시 총리가 됐을 때 중일 관계는 전후 사상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양국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어떻게든 중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통해 중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다”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일본 초청을 거듭 제안하기도 했다.
대북 관계에 대해선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납치 문제 해결이 목적이다. 그는 연설에서 “상호 불신이라는 껍질을 깨고 한 걸음 내딛어 마지막엔 김 위원장과 마주해야 한다”며 “현재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선 회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도 별도로 만나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북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일본의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아베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최근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한 북미정상회담의 합의가 완전히 신속하게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선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이 정체되어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어떠한 모멘텀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납치 문제를 언급했을지 주목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외무성 한 관계자는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 있지 않는 한 (한국도 북한에) 어떠한 협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가능한 국가’ 계획은 구체적…
정치적 소명이라는 개헌 박차 불가피

향후 아베 정권의 국내 정치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베 총리에겐 일종의 소신과도 같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군비 확충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신의 3선 연임은 곧 헌법 개정에 국민들이 강한 지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봤다. 이날 투개표 후 기자회견에서도 아베 총리는 "70년 이상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던 개헌을 통해 미래 세대로,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도전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일본의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패전한 후 1946년(쇼와 21년) 11월 3일에 공포되어 1947년 5월 3일부터 시행됐다. 전투력 보유를 금지하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 때문에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린다. 앞서 자민당이 공표한 개헌안은 전쟁 금지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 조항은 그대로 두고, 자위대 존재 근거를 명시한 내용이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개헌은 국민이 결정권을 갖는다”면서 ”국회의원이 개헌 발의를 소홀히 해 국민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책임 방기라는 치욕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아베 총리의 개헌 시도는 2007년인 1기 집권 시절 진행됐는데, 당시엔 그가 중도 퇴진하면서 개헌은 미수에 그쳤었다. 그러나 3선에 성공한 지금 개헌 환경은 훨씬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개헌이 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국민투표로 과반수가 찬성을 해야 가능하다. 야당이 국회의원 다수를 등에 업은 아베 총리의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최종 관문인 국민투표 밖에 없다. 현행 국민투표법에선 일반 선거와 달리 캠페인 비용이나 광고선전비에 규제가 없다. 때문에 입헌민주당 등 야당에선 텔레비전 광고 방송에 개헌 반대 내용을 넣으려 준비 중이다.
여전히 자위대의 교전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헌이 이뤄질 경우,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내 개헌 반대 세력들은 ‘북한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위협은 더욱 커질 것’,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젊고 경험이 없어서 위험하다’라는 아베 총리의 대북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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