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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지 못하는 의자, 사용 못하는 화장실” 판매직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것들

#1. 아이를 갖고 출산하는 10개월 동안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리가 붓고 배가 불러와도 매장에서 서 있었습니다. 휴게실이 부족해 임신한 상태에서도 계단에 담요를 깔고 앉아 쉬었습니다. 아이가 밑으로 쳐져 있어, 의사선생님이 아이가 내려가지 않도록 복대를 착용하도록 권고해, 임신 5개월부터는 복대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면세점 입점 매장에서 17년간 근무한 최상미 씨)

#2. 백화점에서 메이크업 브러쉬를 허리에 차고,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메이크업을 했습니다.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무릎·허리 통증은 물론, 발이 붓는 것은 기본이고 발가락이 휘고 굳은 살이 생겼습니다. 맨발로는 창피해서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까운 고객화장실은 고객 편의시설이라 직원들이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멀리 있는 직원용 화장실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에 물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13년간 일한 김수정 씨)

명품을 파는 면세점과 백화점의 외관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의자에 앉지 못 했고, 화장실에 제 때 갈 수 없었고, 휴게실에서 쉴 수 없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연구에는 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의 2,806명의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민중의소리

"고객용 화장실 쓰면 난리나요"

면세점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지난 1주일 근무 시간 중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는 답변은 59.8%을 차지했다. 화장실에 가지 못한 이유는 '매장에 인력이 없어서(62.4%)', '화장실이 멀어서(21.6%)', '칸 수 부족(24.1%)' 등으로 나타났다.

발표를 맡은 김승섭 교수는 "화장실에서 판매직 노동자들을 만나신 적이 있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백화점·면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가까운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 고객화장실을 이용하다 걸리면, 면세점·백화점 관리자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대기하는 자세로 있는 판매직원의 모습(왼쪽), 롯데백화점 근무 메뉴얼 (오른쪽)
백화점에서 대기하는 자세로 있는 판매직원의 모습(왼쪽), 롯데백화점 근무 메뉴얼 (오른쪽)ⓒ서비스연맹

면세점 혹은 백화점으로부터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이 77.4%에 달했다. 롯데백화점 근무 메뉴얼에는 화장실 등 고객시설물 사용금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직원용 화장실은 칸이 부족해 직원들끼리도 편히 있기엔 눈치가 보이는 형편이다. 서비스연맹에 따르면, 동화면세점 직원용 화장실의 경우, 3층과 5층에 있는 여성 직원 화장실은 각 2칸밖에 없고, 남성 직원 화장실은 건물 전체에 딱 한 곳 뿐이다.

백화점과 면세점엔 장시간 온냉방이 가동되고 유동 인구가 많아 건조하고 먼지도 심하다. 심한 건조증에 시달리면서도 근무 중에 화장실을 가야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노동자들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응답 노동자의 42.2%가 지난 1주일 간 근무 중에 목이 마른데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제 때에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방광염으로 의료기관에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는 20.6%로 조사됐다. 이는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의 3.2배에 달하는 높은 수치다.

방광염을 경험했다는 최상미 씨는 "방광염 약을 먹으면 몸에 수분을 가져가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며 "고객들과 계속 얘기를 해야 하는데 입이 말라 힘들지만 물을 마실 수 없다. 화장실 칸 수가 적어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화장실을 갈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은 생리대 역시 제 때에 교체 할 수 없었다. 지난 6개월 간 필요한 시점에 생리대 교체를 하지 못한 노동자는 39.9%에 달했고, 이로 인한 피부 질환, 염증 등이 앓은 경험도 17.2%로 나타났다.

김승섭 교수는 "'화장실에 가게 해 달라'는 건 18세기 산업혁명 때 나왔던 이야기"라면서, "그 뒤로 3세기나 지난 2018년에 값비싼 명품 화장품을 파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고 생리대를 갈지 못해 피부염으로 아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의자는 제 의자가 아니에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은 지난 1일 오후 3시부터 '의자 앉기'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은 지난 1일 오후 3시부터 '의자 앉기'에 돌입했다.ⓒ서비스연맹 제공

면세점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근무 중 앉을 의자가 없거나, 의자가 있어도 의자에 앉기 어려웠다. '직원용 의자가 없다'는 응답은 27.5%, '의자가 있지만 업무가 없을 때도 앉을 수 없다'는 응답은 37.4%로 조사됐다.

장시간 서 있는 이들은 혈액순환이 원할하지 않아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에 시달린다. 지난 1년 동안 하지정맥류로 진단 또는 치료받은 경우는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의 경우 15.3%로,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의 25.5배에 이르렀다. 족저근막염의 경우에도 15.8배 가량 높게 조사됐다.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근무 중 오래 서 있기 때문에 발이 붓는다. 그래서 이들은 임시방편으로 작업화인 유니화를 자신의 사이즈보다 크게 신는다.

휘어지고, 물집 투성인 서비스 노동자의 발 모습
휘어지고, 물집 투성인 서비스 노동자의 발 모습ⓒ서비스연맹 제공

또 발이 불편한 구두를 오랫동안 신다 보니 발 통증에 시달리고 엄지발가락 변형이 오는 무지외반증도 겪는다. 지난 1년 동안 무지외반증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가 6.7%에 달했다. 이는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0.1%)에 60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2011년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서비스업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휴게시설과 의자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현재 시행중이다. 2018년은 고용노동부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토록 한 지 10년째가 되는 해다. 현장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운 긴 시간이 지났지만, 노동환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희는 휴게실에서 쉴 수 없어요"

면세점·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휴게실 모습
면세점·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휴게실 모습ⓒ서비스연맹 제공

고객을 응대하는 이들에게 매장은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매장에선 앉을 수 없고,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대기 자세를 강요한다. 그래서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은 절박한 요구다.

지난 한 달 간 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58.1%에 달했다. 휴게실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휴게실 의자 수가 부족해서(65.7%)', '휴게실 면적이 좁아서(47.5%), '휴게실이 멀어서(26.3%) 등이었다.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은 점심 시간에야 쉴 수 있다. 하지만 식당과 휴게실이 먼 경우에는 휴식을 위해 점심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출근길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으로 해결하거나, 점심을 거르고 복도와 계단 등에서 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이들은 말했다.

판매직 노동자들이 휴게실 대신 쉬었던 장소로는 복도, 비상 계단 등이 있었다.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의 경우 지난 한 달 간 휴게실 대신 가장 많이 쉬었던 장소는 게이트 근처(44.1%)였다.

최상미 씨는 "매출이 천정부지로 올라 면세점에 입점하고 싶어하는 업체들이 많은데, 직원이 늘었다고 화장실과 휴게실을 늘리는 면세점은 없다"며 "어떤 면세점에서는 양치질은 지하 4층에서 하고 화장실은 지하 1층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고와 복도 등에서 쉬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직원들의 모습
창고와 복도 등에서 쉬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직원들의 모습ⓒ서비스연맹 제공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쉴 수 없는 노동환경에, 노동자들은 병 들어가고 있다. 지난 3개월 간 요통, 상지통, 하지통 등 근골격계 통증을 겪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은 75%를 넘어섰다.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의 경우 여성 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노동자 중 96.5%가 여성으로 집계됐다.

서서 일하는 업무의 특성 상, 유산을 경험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면세점 혹은 백화점에서 일한 이후 동료의 유산을 목격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49.8%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유산 경험을 묻는 질문에는 11.4%가 '그렇다'고 밝혔다. 심지어 유산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궁경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한 판매직 노동자들도 있었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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