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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오늘 죽었어” 고객 갑질·폭언·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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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 H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A 씨(20대 초반)는 먼저 온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한 고객은 자신을 먼저 챙기라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쳤다. 이에 A씨는 응대하고 있던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를 내는 고객에게 샘플을 전달했다. 이 고객은 샘플을 낚아채다 손톱으로 직원 손등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앞에 있던 손거울을 던졌다. 손거울은 직원을 비켜 벽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 벽장은 움푹 패였다. 이 사건으로 A 씨는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았고, 한 동안 백화점에서 근무하지 못했다. 이후 A씨는 고객이 가까이 오면, 순간 몸을 ‘움찔’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는 김명신 LVMH(루이 비통·모엣 헤네시) 노조 부위원장이 공개한 악성 고객 갑질 사례다. 이렇게 고객으로부터 폭행 등 갑질을 당하면 판매직 노동자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 즉시 업무를 중단할 수 있을까?

김 부위원장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렇지 않다'는 뜻을 표했다. 그는 "백화점 등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응대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개인적으로 고객을 고소하거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객의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사측에서 보호해주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숨죽여 울 수 밖에 없다. 이같은 현실을 지적하며, 판매직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민중의소리

폭언·욕설에 성희롱은 기본..물건 던지기도

고려대학교 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현장노동자 증언대회도 이어졌다.

"혼자 사냐? 어디서 사냐? 나중에 술 한잔 하자" "립스틱이 얼마냐? 근데 그 입술에 묻은 꿀은 누가 먹나?", "야 이 X아, 너 이리로 와. 넌 오늘 죽었어", "내가 이깟 샘플 때문에 그러냐. 이 X가지 없는 X아!","내가 너 누군지 알아봐서 백화점 일 다시는 못하게 컴플레인(complain)을 걸거야"

연구에 참여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이들은 고객의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노출돼 있다.

심지어 고객들이 제품이나 샘플, 돈까지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마다 판매직 노동자들은 '굴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화려하고 깨끗해 보이는 백화점과 면세점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에는 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2,806명의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고객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갑질을 경험했다.

지난 1년간 '업무 규정 상 불가능한 요구를 들어줘야 했던 경험'이 82.5%로 가장 많았다. '고객으로부터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차는 행위를 당한 경험'도 20.5%에 달했다.

그러나 면세점 혹은 백화점은 판매직 노동자들이 고객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미 쓴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때, 판매직 노동자들은 본사의 규정을 설명하며 정중하게 고객의 요청을 거부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고객이 컴플레인을 걸면, 백화점은 자사 이미지를 고려해 직원에게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 1년간 '본사 규정상 불가능한 교환 환불을 면세점 혹은 백화점에서 요구한 경우'는 21.1%로 나타났다. 또 고객과 갈등 상황에서 부당하게 사과를 강요받은 경험은 15.9%, 고객과 갈등 상황에서 노동자의 사비로 문제해결을 요구한 경우도 5.0%로 나타났다.

고객이 폭언할 때 매니저 또는 관리자로부터 업무 중단 또는 전환 등의 조치를 통해 보호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은 17.6%에 달했다. 고객의 폭력을 대비한 가이드라인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응답이 34.6%로 나타났다. 또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도움이 안된다'는 응답도 32.1%에 달했다.

갑질과 언어폭력에 노출된 노동현장 속에서 노동자들의 마음이 병들고 있다. 지난해 1년 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노동자들은 8.5%로 나타났다. 응답 노동자의 9.7%는 지난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있었다고 답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됐지만...
"원청 사업주의 협력업체 직원 보호·책임 의무 조항 없어"

판매직 노동자들과 같은 서비스직들의 감정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날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법 개정으로 이어져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피해를 예방하는 내용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18일 시행된다.

지난 4월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 2에 따르면, 사업주는 서비스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다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하고,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서비스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이같은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노동자가 이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법에도 헛점이 있다. 협력업체 등에서 파견된 판매직 노동자의 경우 자기 회사 소속의 공간에서 일하지 않고 원청 사업주가 가지고 있는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일한다. 하지만 원청사업주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보호하고 책임질 의무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연맹 측은 "서비스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원청 소속보다는 협력업체나 간접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원청사업주가 하청 노동자들 보호할 수 있는 의무조항을 넣어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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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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